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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Feb 14. 2024

퇴사자들이 찾는 남자

일상의 생각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회사 사람들과 사적으로 엮이는 일을 굉장히 싫어한다. 특히 퇴근 후 회사 사람들과 시간을 갖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하루종일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지냈는데, 왜 퇴근 후에도 그 얼굴들을 봐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인지 퇴사한 사람들이 나를 보러 왔노라며, 사무실을 방문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처음에 한 두 사람이라면 그냥 흔한 인사 치레라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까지 생각해 보면 거의 퇴사자의 절반 이상이 꼭 한 번은 다시 찾아온다. 오늘도 명절이 지났노라며 또 한 명의 퇴사자가 나를 찾아왔다.


차라리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던가, 청첩장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면 이해라도 할 텐데, 그냥 얼굴 보고 놀러 왔다고 하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같이 일하던 시절 내가 제법 모질게 굴었던 것 같은 인물들도 찾아오니, 정말 모르겠다. 또한 문제는 이런 날이면 어쩔 수 없이 강제 회식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를 보러 왔다고 하니 내가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난 정말 이런 상황이 싫다. 물론 잊지 않고 찾아와 줘서 반갑고 고마운데, 싫은 것은 싫은 거다. '일종의 복수인 건가?' 싶을 때도 있다.


나는 결코 싹싹한 인물은 아니다. 낯도 가리는 편이고, 특히나 회사에서는 웃을 일이 없으니 잘 웃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신입 직원들이 나를 무서워하거나 더러 불편해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나 역시 애써 그들과 친해지고 싶지 않은데, 왜 퇴사만 하면 이렇게 찾아와서 나를 찾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퇴사 시기에 따라 나를 부르는 호칭이나 직함도 제각각이다, ㅇㅇ씨, 주임님, 대리님, 팀장님 등등, 새삼 내가 얼마나 이곳에 오래 머물렀는지 실감되는 한편 내가 오래 고여있는 기분이라 썩 유쾌하지는 않다.


조금 고깝게 생각해 보자면, 그들이 떠난 자리에 여전히 오래 고여있는 나를 뒤돌아 보며, 위안을 삼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혹은 있을 것만 같은 사람' 듣기는 좋은데, 마치 정체되어 있는 인간을 말하는 것 같아서 당사자인 내 입장에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평가다. 만약 진짜로 이런 무례한 생각으로 찾아오는 인간이 있다면 그만 사양하고 싶다. 아니면 내가 아직 싱글이라 심심하고 한가해 보이나?, 이런 류의 생각을 계속하다가는 인간혐오에 빠질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여하튼, 이쯤 되니, 대표님도 나를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하시며, 내가 붙힘성이 굉장히 좋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듯하다. 가끔 회식자리에서 내게 "그냥 형이라고 불러도 돼"라고 하시는데, 아니 결코 그러고 싶지 않다. 물론 10년 가까이 함께 일한 대표님을 불편해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나에게도 나름의 지켜야 될 '선'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표님은 다소 서운해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위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회사 사람들과는 최대한 사적으로 엮이고 싶지 않다.


다시 생각해 보면, 각자 나름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이렇게 찾아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찾아준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데, 나는 최근 이래저래 여러 일들이 겹쳐 힘들기도 하고, 회식도 몹시 싫은 나머지, 심사가 다소 꼬였던 것 같다. 뭐 이렇게나마 투정 아닌 투정을 여기에 남겨 본다. 

기분 좋게 가지는 못하겠지만, 기분 좋은 척이라도 하며 회식에 참석해야겠다.


"하아, 역시 싫은 건 싫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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