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랑 저는 시간 대부분을 집에서 데이트를 했어요. 집에서 그를 보거나 산에서 그를 보았던 기억이 대부분이에요. 화려한 곳이나 유명한 맛집이나 핫플레이스는 둘 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둘 다 바람 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들리는 산이나 사람들이 우리의 귀를 잡아먹지 않는 조용한 집을 좋아하는 노부부 같은 연인이었답니다.
저는 원래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요. 우리 집은 나의 모든 애착의 집약이거든요. 하나하나 구해서 모은 인테리어 소품들과 제가 좋아하는 책이 가득 쌓여 있고 제 마음이 편안한 조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인센스 향과 즐기는 재즈를 들을 수 있게 만들어 뒀어요. 저는 애착이 아주 강한 사람이에요. 알고 나면 애인이 도망갈까봐 늘 안 들키려고 쿨한 척하지요. 그런 제가 자꾸만 도망가는 듯이 뒷걸음치는 그를 사랑했으니 사실 생명의 위협이었어요.
아무튼 우리 집은요, 집순이, 집돌이에게 최적화되어 있어요. 집으로 사람을 불러 맛있는 음식을 배 퉁퉁 뚜드릴 때까지 잔뜩 먹이고 잠을 아주 잘 자고 갈 수 있도록 폭신하고 좋은 향기가 나는 손님용 이부자리도 갖춰져 있죠. 놀러 온 사람들이 우리 집은 파리지옥이래요. 그리고 사육당하는 기분이래요. 그래도 다들 얼굴이 빤질빤질 윤이 나서는 집으로 돌아가요. 나는 그들이 하루 동안 돼지가 되고 하룻밤 꿈처럼 놀다 가는 것이 좋아요. 그래서 그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으로 초대했어요. 우리 집은 파리지옥이고 나는 그를 내 품에 넣어두고 싶었으니까요.
그가 처음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했던 말이 생각나요. 업장이냐고요. 가정집 같지 않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 말 많이 들어서 괜찮았어요. 게스트 하우스냐, 모델 하우스냐, 잠자는 척하는 공간 아니냐고요. 아주 수작업으로 공들여서 만든 나만의 공간이니 전 그런 말들이 싫지 않았어요. 그도 결국 어쩔 수 없이 파리지옥에 갇혔죠. 우리 집에서 많이 먹고 많이 웃고 많이 자고 무럭무럭 제 사랑으로 자라갔어요.
우리 집에는 보드게임도 잔뜩 있어요. 사람들을 불러 호스팅을 하다 보면서 주인도 쉴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면 놀거리가 필요해요. 저는 사람들을 많이 불러본 다년간의 경험이 있는 호스트에요. 그래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놀이들을 꺼내요. 그래야 정신없이 꿈처럼 놀다가 아주 대만족, 별점 다섯 개 주고 갈 수 있거든요. 그와도 단둘이 많은 게임을 했어요.
특히 우리가 즐겼던 것은 화투였어요. 맞고 말이에요. 명절 때 어른들이 치는 그것 말이에요. 애기들은 그림 맞추기만 하고 점수 계산을 못 하는 그거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과년한 사회학적 어른이니까 점당 백 원을 걸고 맞고를 쳤어요. 점 백 원이요, 엄청 커요. 백 원짜리 우습게 보고 맞고 치면 잘 못하다가는 크게 잃어요. 긴장을 아주 바짝 해야 해요. 근데 저는 항상 한 손에는 와인이나 맥주를 들고 있어서요, 항상 크게 잃었어요. 그는 차분하고 영리해요. 화투를 가르쳐 준 건 제가 가르쳐줬는데, 집에서 점 백 원으로 10만 원 단위로 정산을 해주기로 한 게임에서 3번이나 정산을 했어요. 약간 내가 져서 송금하는 데 마음이 이상해요.
근데 조금 억울했어요. 저는 술을 홀짝이고 있잖아요? 그럼 저는 심신미약자란 말이에요. 그러면 나중에 억울해서 심신미약자라고 고집부려요. 심신미약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느냐고 따지다가 한 번만 봐주십셔 사장님. 하고 그에게 빌어요. 돈이 없어서 비는 게 아니라 한 번만 봐주십셔 사장님. 하면 안돼. 돌아가. 안 봐줘. 하는 그런 놀이가 하고 싶어서 괜히 부하 놀이를 해봐요. 근데 그는 항상 싱겁게 봐줘요. 그러면 칫, 하고 김빠지지만, 볼이 발그레 해져요. 떼쓴다고 봐주고 왔다갔다하는 일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고 뭐였겠어요.
그와 헤어지고 메모장을 보다가 H –5,700원이라고 적혀있는 메모를 발견했어요. 이게 뭘까 하고 한참 보다가 그와 화투를 친 흔적이란 것을 찾았죠. 마지막에는 제가 조금 더 이겼었나 봐요. 그는 채무자예요. 저에게 빚이 있어요. 제가 준 사랑들에 대한 채무도 있지만 진짜 채무도 있더라고요. 정산하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어요. 여러모로 그는 참 나에게 빚이 많은 사람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남은 세월 내 마음대로 그에게 갑질하고 살기로 했어요. 나는 당당한 채권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