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에게 잘 고이고 잘 스며드는 것이 두루 슬픈 것들이어서 그를 사랑했던가 싶습니다.
저란 사람이 그냥 그런 사람 같아요. 애써 들여다봐야 보이고 작은 틈들이 눈에 밟히는 사람이거든요. 나는 구멍 난 것들을 기워서 다시 입고 흠집이 나 있는 것들을 모으는 것을 좋아해요. 구질구질 이라면 그렇겠고 골동품 애호가라면 좀 낫겠네요.
그도 절을 좀 하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함양에 있는 서암정사를 갔었어요. 비가 그친 뒤의 서암정사는 안개가 짙게 깔려있고 평일 이른 시간의 서암정사엔 방문객이 드물었어요. 깊은 지리산의 중턱에 있는 절은 조용한 우리를 더욱 정숙하게 만들었지요.
단청이 화려한 대웅전을 지나 계단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자연의 암반에 조각한 아름다운 불상이 있는 석굴 법당인 극락전이 나와요. 저는 그에게 천 원을 빌려 극락전으로 들어갔지요. 저는 가볍게 절을 하고 천원을 불전함에 넣었습니다. 절은 안 해도 불교 미술이 아름다우니 들어와서 보라는 저의 말에도 종교를 믿지 않는 그는 죽어도 사당에 들어오진 않았습니다. 저도 종교는 없는데 말이에요.
그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모든 것을 믿지 않았어요.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사는 사람이지요. 자신이 만든 규칙과 규범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 있나요. 대단한 자제력 아래에 두려움이 보이지요. 저는 그의 절제되고 정갈한 삶 위에 있는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에요. 그 아래에 있는 작은 아이를 아주 많이 사랑했지요. 그 사람이 얼마나 순수한지를 보았거든요. 그게 얼마나 그를 아름답게 만드는지 그는 죽어도 모를 거예요.
그는 저에게 왜 그렇게 모든 것에 의미 부여를 하는지 의아해했어요. 근데 제가 그렇게 의미 부여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틈을 보는 사람이어서 그 사람으로 시를 써왔거든요. 시를 써본 적이 있나요. 시상이 되어버린 마음을 가슴 속에 넣어서 호흡을 하면서 가만히 다시 꺼내어 앞에 두어보고, 또 바라보다가 갑자기 와락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쓰는 것이 저에게는 시였죠. 그리고 당신은 나의 모든 시여서 사랑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리고 전 당신 앞에서의 아득한 무력함이 좋았어요.
오늘은 오전에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봤어요. 영화는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는 주인공 파이의 이야기를 그려요. 파이는 소설 집필로 애를 먹던 한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죠. 뱅갈 호랑이와의 생존 여행을 그려낸 동화 같은 첫 번째 이야기와, 보험회사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들려준 잔인하고 현실적인 두 번째 이야기가 있어요. 두 이야기를 모두 들려준 파이는 작가에게 물어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냐고요. 작가는 첫 번째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든다고 말해요. 더 흥미롭기 때문이라고요.
삶은 같은 장면을 어떤 방식으로 느끼느냐에 따라 다른 결말을 보아요.
오늘은 부산에 비가와요. 비가 오니 그와 갔던 서암정사가 생각났어요. 신을 믿지 않아도 그가 절을 좀 하면서 살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을 해요. 믿음은 행동으로 발현되어 경험되는 일이니까요. 그가 절을 좀 하는 사람이었으면 사랑도 힘이 있다고 믿으며 좀 살았을 텐데 하고요. 하지만 그가 선택한 삶이니 그것 또한 존중하기로 해요. 사랑은 늘 존중 위에 있어야 하니까요.
아마 우리는 같이 사랑을 했지만, 다른 것을 기억할 것 같아요. 저는 신을 믿지 않아도 절을 하는 사람이고 그는 신을 믿지 않아서 사원에도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그가 없는 저의 삶이 안정적으로 행복해요. 그가 제 삶에 여전히 있었다면 저는 그와 함께하는 지옥을 살았겠지만, 그가 없는 제 삶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전 당신과의 지옥을 선택할 것 같아요. 그래야 파이처럼 뱅갈호랑이와의 웅장한 대서사를 삶에 그리며 살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