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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것을 보는 것도 싫거든요 정말로

by 송유성

그러니까 같은 꽃을 보고 있어도

감탄하지도 예뻐하지도 못하는 사람,

있기는 있다는 것을 조금 아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은 꽃이 피기까지 머금어야 했을 수분을 생각하느라

멀쩡할 수 없다는 것을

조금 아셨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지저귀는 새를 보며 동영상을 찍을 때

거친 호박잎을 싸 먹어야 했던 시절이 떠올라

가만히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당신은 계속 경외하고 감탄하고 놀라워하세요

그런 당신을 보며

몰래 알 수 없는 배덕감에 휩싸입니다

우리가 늘 우리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

당신이 아이처럼 잠들 때마다 알죠

순간의 연애를 하고 싶었던 건데

당신이 자꾸 내 속눈썹을 쓸어내리면

꿈결에도 목적지 없이

잘못을 사해달라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이 주방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미역국을 끓이면

와락 가서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어요

자꾸 오셔서

고소하지 말고

다정하지도 말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우리를 망쳐버리고만 싶죠


이제 와서 용서를 빌자니

용서라는 단어도 모르고 웃는 아이를 보는 것만 같고

고백 대신 머리를 감싸 쥡니다

가정교육이 없이 자란 사람은 포옹의 개념도 모릅니다


전장에서 내 목이 잘려 날아간다면

당신은 내 목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겠지만

나는 전쟁에도 나가지 않을 겁니다

마른 나무껍질을 벗겨 먹어도

사랑은 영영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당신은 애인 1, 2, 3 중에 마지막 숫자로 남길 겁니다

이름도 잊어버릴 것이니

내 이름도 그리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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