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를 만나면 가난이 보여요.
그가요, 자기는 국가에서 주는 탈지분유를 먹고 자랐댔는데요.
내가 보는 가난은 탈지분유 속 가난이 아니었어요.
마음의 가난이 보여요.
감정적 가난이 보여요.
그는 99프로의 이성과 1프로의 감정으로 사는 사람 같아요. 언젠가 그가 제게 말했어요. “전 제가 무너지면 아무도 없어요.” 하고요. 그래서 그는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술도 잘 안 먹었어요.
저는 그와 헤어지고 그가 아주 많이, 아주아주 많이 술을 먹기를 빌었는데요. 술이라도 많이 먹고 술이 이성을 이겨버려서 펑펑 울어 보길, 정말 쏟아지는 마음을 막지 못해 무너진 댐처럼 울어서 나도 살면서 사랑을,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손바닥으로 폭우 못 막는 것처럼 쏟아지는 마음도 한 번쯤 느껴보길 바랐어요. 하지만 그는 지나간 일에 마음을 쏟는 일도 낭비라고 여기는 사람인 걸 알아서 비는 내 손만 아프단 건 조금만 생각해도 알았지요.
그는 너무 가난해서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어요. 늘 질 좋은 양복과 좋은 재질의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그였지만, 제가 말하는 가난은 돈이 아니거든요. 누군가의 어여쁜 구석을 보고 사랑해 주고 발견하는 건 마음의 재산이 하는 일이거든요.
그래도 그는 나에게는 자기가 줄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줬어요. 저는 그걸 모르지 않아서 울면서 버텼던 것 같아요. 100억 가진 사람이 1억 주는 거랑 알사탕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알사탕 하나 주는 거랑은 다른 거잖아요. 그는 나에게 알사탕만 줬어도 나는 그의 전부를 준 것임을 알아서 행복했어요. 나는 누군가의 마음의 크기를 절대평가로 100점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가 작게 줘서 울었던 것이 아니에요. 그가 자꾸 혼자 살아서 울었어요. 그는 잘 몰라요. 내가 바라는 게 그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슬픔을 달라는 것이란 걸요. 내가 그를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를 어깨에 지고 가고 싶다는 것을요. 근데 그를 달라고 그가 오해해서 나를 떠나갔지요. 난 당신이 진 슬픔을 나누어 걷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근데 가난한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구김 같은 게 어쩔 수 없이 생겨요. 그것도 잘 알았는데요. 낙타에 달린 혹 두 개처럼 그에게 크게 달려 있는 것이 그런 것이고 그런 것들이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는 것도 저는 알았는데요. 그는 그런 혹이 없으면 못 살았어요. 낙타의 혹은 지방을 저장해서 에너지로 쓰는 일이었지만 그의 혹은 최소한의 인간답기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비참해지지 않기’, ‘나약해지지 않기’ 같은 마음이지요. 약해지면 인생이 흔들린다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그 무게가 자신이 날아가지 않도록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 무게로 정말 다른 행복으로 날 수 없게 한다는 것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 혹을 내가 자꾸 떼어 가려고 하니 내가 자신의 모든 걸 빼앗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아요. 저는 단지 함께 우리 행복해져요. 였는데 말이에요.
그는 아마 다시 등에 혹 두 개 지고 사막을 걸어갈 거예요. 사막에서 만난 수더분한 여자와 결혼도 할 것 같아요. 그는 가정적이고 좋은 아빠도 될 것 같아요. 가끔 오아시스도 찾겠지요. 근데 그래도 그는 영영 사막에서 살겠죠. 혹 두 개도 아마 못 내려놓을 거예요. 그런 그가 불쌍해서 나는 헤어지고 나서 계속 울어요. 누군가를 연민해서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이렇게 다칠 수 있다는 것을 그를 만나고 처음 알았어요.
나는 그의 어깨와 혹과 알사탕을 생각하면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 오늘도 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