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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대 실업자 부부의 취업 도전기(1)

고용복지센터를 가다.

by 정현미

작년 말 남편과 함께 고용복지센터를 찾았다.


그동안 번아웃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한답시고 과감히 선택한 자진 실업상태 속에서 나름 의미를 찾고자 열심히 헤매 다녔다.

여태 다녀보지 못한 곳을 찾아 여행도 하고, 나는 독서와 글쓰기에, 남편은 집안일과 오롯한 백수생활에 빠져 이제껏 놀지 못한 것을 몰아서 노는 아이들처럼 지금껏 생각조차 못했던 삶의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는 중이다.


신기하고 즐겁다가도 문득 고개를 드는 불안감에, 이 나이에 이래도 되나 하는 두려움이 급기야 작은 논쟁으로 불붙기도 하고, 늘 붙어있다 보니 사소한 일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며 우린 좌충우돌 백수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무익한 생활을 하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이 있다면 뭐니 뭐니 해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족과 함께한 나날들이었다. 기브 앤 테이크란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렇게 뭔가를 하나 내어 놓아야 또 다른 하나를 취할 수 있는, 철저한 교환가치만이 통용되는 세상에서 그래도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으니 거기에 든 대가는 우리가 감수하는 걸로 퉁치기로 했다.


그리고 계획했던 대로 몇 개의 예금을 깨서 1년 동안 알아서 빠져나가도록 지출통장에 넣어두었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수입과 지출을 짜 맞추려 애써 머리를 굴릴 일이 없어지자 숫자에 둔감해진 탓인지 돈 중심이 아닌, 경험과 가치를 따르는 삶에서 더 큰 만족감을 얻는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다. 이러다 도인, 아니면 알거지가 되는 건 아닐지...

하지만 이 또한 한시적이며, 기본적으로 경제적 바탕 없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기에, 새로운 한 해를 앞둔 그날, 우리 부부의 벌걸음은 고용복지 센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아이들 학비는 모아둔 돈으로 치르기로 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우리들 생활비만 벌고자 했다.

허황된 논리로 개인의 탐욕만을 부추기는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 돈으로 위로와 보상을 받는다는 착각에, 더 이상 하루하루 허덕이는 삶은 살지 않기로 한 이상, 우리 둘이 먹고 생활할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하나 더!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왕이면 의미 있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것이 우리가 실업을 선택한 진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내건 이 조건이 그리 만만찮은 조건이라는 걸

깨닫는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용센터에 들어선 순간 급현타가 몰려왔다.


우리의 이런저런 생각일랑 상관없이 우선 서류로 모든 걸 정리해야 했다. 실업자임을 확인받은 후 내일 배움 카드를 신청하고 실업자 교육 조건이 되는지 열심히 조서를 쓰듯 서류로 증명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무런 기술이나 자격증 하나 없이 중년을 맞은 우리에겐 당장 실업교육부터 절실한 상황이었다. 실업교육 대상자가 될지, 된다면 1 유형일지 2 유형일지는 보통 2달 정도의 심사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결정이 되면 문자와 전화로 연락이 갈 거라고 담당자는 두 부부 실업자를 안쓰러운 듯 쳐다보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재산이나 소득을 합산해 기준에 따라 1,2 유형으로 나뉘는데 중위소득 60% 이하는 제1유형으로 6개월간 생활지원비 5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반면, 2 유형은 생활비는 없고 훈련받는 일수에 따라 훈련비 18000원이 지원된다고 한다. 하지만 훈련에 드는 2~30%, 많게는 50%에 이르는 자비부담이 있어서 훈련비를 받는다 해도 겨우 상계가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새해를 맞아 무언인가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나이, 하지만 누군가에게 고용되기를 바라기에는 그 벽이 제법 두터운 나이인 50대, 늦기 전에 뭐라도 하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우리를 움직이게 했다. 그것이 당장 돈벌이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하나하나 찾고 배우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남은 여생의 업으로, 거기다 내 입에 들어가는 밥벌이로 활용될 수 있다면 더더욱 감사할 일이 아니겠는가?


비록 한시적이지만 숫자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1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가치 있는 삶이었다.

몸에 기름기를 빼고 소식할수록 정신이 명료해지듯이 삶의 기름기를 빼고 나니 그동안 시야를 흐렸던 온갖 군더더기가 사라지고 인생의 정수가 보이는 듯한 착각은 나의 오만일 지도 모른다.


50여 년을 흔들리는 사회 속에서 살았기에 나라고 왜 불안과 걱정이 없겠는가? 하지만 물질적인 욕심은 예전에 내려놓았기에 주어진 조건하에서 근검절약하며 살아보려 한다.

앞으로의 내 삶은 거추장스러운 곁가지는 하나씩 잘라내고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집중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어느 시인의 시 구절처럼 외치고 싶다.

내 인생에서도 오롯이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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