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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un 30. 2023

경계선에서 내려오다.

나의 목소리를 내다.


 대학 때,  '신중하다'는 말로 에둘렀 사실 비겁한 개인주의자였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내가 스스로 찾아간 곳은 대학 학보사 맞은편에 있는 영자신문사였다. 80년대에 활발했던 학생운동의 여운채 가시지 않았던 90년대 초, 대학교 안의 모든 신문사며 학생단체들이 이념서클에 다름 아님을 미처 알지 못했던 나는, 오직 영어를 더 많이 공부하겠다는 순수한 일념으로 영자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곧이어 선배들의 이념화(?) 교육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당시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후배였다. 고등학교 때,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며 학교생활 외는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선배들이 토로하던 이야기들은 마치 딴 세상 이야기인 듯 믿기지 않았고,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당장의 학비와 졸업 후 진로 걱정으로 버거운 상황에서, 도대체 그런 일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듯하다.


 집회와 시위 장소에서도 난 항상 몸을 사렸다.

 내가 온전히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는 손을 들어 구호 하나 외치는 것에도 인색했으며, 물과 섞일 수 없는 기름처럼 수많은 무리 속에서 혼자 부유하며 영혼 없이 그렇게 떠다녔다.


그렇게  주변인으로, 이도저도 아닌 경계인으로 2년을 지내다 신문사를 나오고, 어쩔 수 없이 합류하고자 했던 세속인들의 전처를 밟으며 그렇게 지금까지 흘러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에 대해 교과서 지식밖에 없었던, 멋모르는 갓 스물이었기에 이해되는 면도 없진 지만, 그땐 왜 그렇게  나를 움켜쥔 채, 세상에 대해선 무엇 하나 허하려 하지 않았을까?

 모든 걸 책을 통해서 습득한 나는, 예의 이론가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인, 현실을 외면한 채 날이 빳빳이 선 잣대로 도덕과 윤리를 칼같이 재단해서인지, 아마 마음으로 온전히 설득당하지 않고 주변 분위기에 휩쓸여 행동하는 걸, 어리석은, 혹은 위선이라고 생각했는 지도 모른다.


 당시, 가난했던  집안과 나 자신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었는지, 마음속으로는 왠지 노동착취와 부정으로 부를 축척한 것 같은 부자들, 혹은 금수저들을 경멸했지만 공정하지 못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과도한 방어기제로, 어쭙잖은 정의와 도덕심을 들이대며 그렇게 나라는 존재의 정당성을 스스로 납득하도록 속으로만 그렇게 몸부림쳤는 지도 모른다.

 마음속 깊이 유독 날이  검 하나를 숨기고 있었던 나지만 행여 그 칼끝이 나를 향할까 두려워, 부조리한 세상에서 외면당하는 타인들에 대해서 조차 철저히 침묵했는 지도 모른다.


 긴긴 밥벌이의 고단한 시절을 지나,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 요즈음, 나에게서 또다시 그런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어떠한 비난이나 피해를 받지 않을 정도의 애매모호한 경계선위에 선 채, 그나마 남아있던 도덕성과 정의감조차 희미해지고, 여차하면 은근슬쩍 가렸던 몸을 뺄 타이밍을 재고 있는 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정치편향으로 건강한 토론 문화가 사라진 우리네 현실에서, 어느 한쪽에서라도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불의에도 침묵하도록 그렇게 길들여져 가고 있는 나를 보며 문득 '비겁'이란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점점 더 혼탁해지는 현 세태지만, 누구 하나 밖으로 나가라고 등 떠미는 사람도, 억지로 생각을 주입한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그 까칠한 선배도 없는데, 자꾸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뭘까? 그나마 작금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천한 글로나마 푸는 수밖에 없는데, 그 또한 자꾸 망설이는 나를 본다.

 지나치게 정치색을 띠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쩌지? 나도 모르게 안전한 가이드라인을 정해 선을 넘지 않으려는 자기 검열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특정 당파에 편중된 것이 아니라, 내 생각에 옳은  옳고, 그른 것 그르다고 목소리라도 내 것 같았다.

그래도 대학 교육까지 받은, 나름 지식인인데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 같은 나약한 목소리들이 하나둘씩 모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아니 조금 덜 나빠진다면 반대 편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쯤은 각오해야   같았다.


 난 이제 그만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그 경계선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20대  차마 들 수 없었던 오른 손에 힘이 느껴지는 날, 나의 생각을 번쯤은 크게 외쳐보기로 했다. 글이라는 나만의 구호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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