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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Nov 09. 2024

나의 동네 탐방기(1)

설렁탕을 향한 머나먼 여정

 모처럼 더위가 한 풀 꺾였던 10월 초 어느 토요일, 우린 간단히 아침을 떼운후 서둘러 외출채비를 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을 훌쩍 넘긴 때였다.

 그동안 짐정리하랴  몇몇 지인들을 초대해 집들이하랴,  개인사로 바쁘기도 했거니와 곧이어 닥친 학원생들의  중간고사를 치러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벌여놓았던 일들이 하나 둘 마무리될 때 즈음, 마침 유난히 길었던 더위가 잠깐 물러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때다 싶어 아직은 낯선 동네 인근 지역을 한 번 탐방해 볼 요량으로 귀찮다는 남편을 꼬드겨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이사로 집과 직장이 가까워진 건 좋았지만 반대급부로 평상시의 활동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걷는 게 운동의 전부인 나는 아무리 도보로  출퇴근을 한다 해도 걸음수가 턱없이 모자랐다. 시간이 허락되는 날이면 늦은 저녁에라도 동네를 한 바퀴 돌긴 지만 불규칙적인 데다 기껏 봤자 3000보 남짓, 하루의 걸음수가 겨우  5~6 천보 될까 말까였고 그마저도 밑도는 날이 허다했다.

 

 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늘 걸음에 고팠다. 평일은 일 때문에 녹록지 않다 하더라도 주말만이라도 1만 걸음 정도 걷고 싶었다. 그러려면 큰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이 좁은 동네를 벗어나 인근 지역까지 왕복해서 걸어야 겨우 만보에 근접할 수 있었다.

 이미 여러 번 돌면서 우리 동네의  지리와 생김새는 어느 정도 익혔으니 이젠 원정을 나설 차례였다.




 이곳 북면은 예로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창원 시내에 살 때 아이들과도 몇 번 들렀고 여행 삼아 하루를 묵기도 했었다.

 온천이 유명하다 보니 그 주변으로 맛집들도 즐비했다. 그때는 관광객 수준이라 전 날 검색해서 온천과 숙소, 맛집들을 급하게 찾아다니느라 시간이 지나면 딱히 기억에 남는 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웃주민이 되고 보니 사정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이따금씩 들르다 보니 전체적인 동네 지도가 머리에 하나씩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우연히 들른 국밥집도 유명한 맛집에 등재되어 있었고, 낙지를 유난히 좋아해서 찾은 인근의 낙지 전문점은 이제는 자주 찾는 단골집이 되었다.

 지난번엔 주말마다  맛집 탐방을 하자며 작심하고 찾아본 순대전문점에서 순대전골을 먹어보기도 했다.

다음엔 순댓국과 순대구이도 먹어보자며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을 나서는데 맞은편 설렁탕집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다음엔 너로 정했어.

다음날 학원에서 원생으로부터 자기 가족이 즐겨 찾는 최애 음식집이라는 말을 듣자 더더욱 구미가 당겼다.



 

 우리 집에서 설렁탕집까지는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였다. 지난번에 먹었던 순대집 바로 건너편이었고 어쩌다 보니 지름길도 알게 되어 우린 도보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그곳으로 직접 걸어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오는 걸로 계획을 잡았다.

 

 지름길로 들어서기까지는 좋았다. 어느새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길가의 가로수들이 하나 둘 떨어뜨리는 낙엽을 것도 상쾌했고,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는 바람에서  묻어오는 선선함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제격이었다.

 

 하지만 도로를 벗어나 지름길로 통하는 커브를 돌자 우린 난감해지고 말았다. 겨우 차 두 대가 비켜서 지나갈 정도의 아스팔트가 구불구불한 곡선을 이루며 이어져 있었다.     양쪽은 높은 언덕과 감밭이 펼쳐져 있었고 드문드문 공사가 한창인 현장이 보일 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었다. '이 커브만 돌면 인도가 나오려나...' 아스팔트 갓길을 서툰 곡예사처럼 위태위태하게 걸으며 가졌던 기대는 커브를 하나씩 돌 때마다 실망으로 바뀌었고, 그늘이라는 방패막이 사라진 차도에서는 가을을 시기하듯 내려쬐는 햇살 때문에 10월임에도 불구하고 등줄기에서 땀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나마 기대가 컸던 갈림길에선 또 다른 아스팔트의 연속일 뿐이었고, 하나둘씩 늘어나는 공장 건물 외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어느새 30분 이상을 걸어온 우리는 더 이상 돌이킬 수도 없는 삭막한 여정을 꾸역꾸역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쉴 새 없이 지나치자동차들 사이로 버스가 드문드문 보였다.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 구원의 노선을 품고 달리는 버스들이었다.

 난감해하고 있던 나는 이런 생지옥으로 끌고 온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지금이라도 버스를 탈까 남편의 의중을 떠보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며 묵묵히 앞장서서 걷는 그를 묵묵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날씨는 이미 초여름으로 귀하고 있었고 모자를 쓴 나와 달리 선크림 하나 바르지 않은 남편의 기미 낀 얼굴이 걱정스러웠다.




 주말이라 그런지 설렁탕집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점심을 먹는 사람들 꽤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찬물을 두어 들이키며 몸에 배여든 땀을 식힌 후에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단조로운 메뉴들 중에서 나는 일반을, 남편은 얼큰 설렁탕을 시켰다. 유명세치고는 평범한 맛이었다.  남편은 힘이 들었는지 육개장 같은 설렁탕에 밥을 두 공기나 말아먹었다. 양도 많고 맛도 자극적인 남편 것을 몇 숟갈 떠먹다 보니 내가 시킨 허여멀건 일반 설렁탕 맛을 덜 느낀 건지, 이열치열의 부작용으로 미각이 마비된 건지 특별한 맛으로 기억되지는 않았다.


 낮은 아직 한여름을 내어 놓지 못한 채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고,  우린 식당을 나오기 전에 다음 일정을 짰다. 차를 마시기로 했는데 땡볕이라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식당 바로 앞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집 근처로 이동하기로 했다.

 

 곧이어 도착한 버스는 마치 해리포터를 마법학교에 실어 나르던 기차처럼 우리에게 마법의 시간을 선사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온 도로를 그대로 되짚으며 쌩 달리는가 싶더니 1시간을 5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적을 일으켰다. 걸어올 땐 오직 목적지만 생각하고 강렬한 햇볕과

다투느라 멋대가리도 없이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바깥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감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차가 넘쳐나는 시대, 아름답고 멋진 길도 많은데 구태여 저런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미련하고 고지식한 부인을 만나 별 경험을 다한다며 남편이 너스레를 떨었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궁금했던 새로운 길을 몸소 겪으며 알게 된 게 뿌듯하기도 했다. 방금 전의 일이지만 그것도 지나갔다고 어느새 마음 한켠에 추억으로 자리매김하려나 보다.

 

 오늘은 고생 많이 한 남편에게 근사한 차를 한 잔 사주어야겠다. 이사할 때부터 봐두었던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

 '여보, 2차로 가벼운 등산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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