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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Sep 11. 2022

명절 후에 남겨진 것들

명절 차례상을 바꾸다.


 9월 들어 이전보다 일찍 다가온 추석 준비로 바빴다. 방문하는 친척이라곤 시동생 가족이 전부였지만  하루 밤 묵을 손님 맞을 준비와 차례상 장보기로 일주일 내내 몸보다 마음이 더 어수선했다.


  이번 추석 준비는 남편과 오롯이 같이 했는데 주로 내가 집안 청소 및 장보기를 계획해서 진두지휘하면 남편은 그에 따라 실행하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따라다니며 짐을 날랐다.

함께했기에 그나마  준비기간도 짧고 음식재료를 다듬는 일손도 덜었지만 오히려 장보는 손은 더 커져버렸다.

남편은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에게 맛난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장을 보며 이것저것 계획에 없던 것을 주문했고 나는 츤데레마냥 핀잔을 주면서도 두 개중 한 개 꼴로 장바구니에 담는 것을 눈감아 주었다.




 코로나 전에는 명절 전날 점심시간쯤 도착하는 시동생 가족과 점심, 저녁, 다음날 차례 후 아침까지 함께  었다.

설거지는 시동생과 남편이 해줘서 한시름 덜긴 했지만 두 가족 합해서 8명의 식사와 다과를 차려내면서 차례상까지 준비하다 보면 정말 그날은 화장실 한 번 갈 생각도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일을 한참이나 줄인 나의 경우도 그러할진대 이전 분들은 어떠셨을까? 맏며느리는 하늘이 내린다는 옛말에서 수많은 여인들의 눈물과 고뇌, 희생 등을 하늘의 뜻인양 받아들여야 했던 그들의 무력함과 절망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만나지 못했던 코로나 기간 동안 꾀가 생긴 건지 체력이 저하되어서인지 명절 음식 준비보다 한층 더 품이 가는 식사 준비를 한 끼라도 줄일 요량으로 언제 갈까요를 묻는 동서의 전화에다 대고  딱 감으며 이번에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 출발하라고 언질을 줬다.

3시쯤 도착한 동서와 남은 음식 준비를 거의 다 마치고 이것저것 따로 준비한 메뉴로 저녁을 차렸다. 이번엔 통영 사는 지인이 보내준 크고 싱싱한 바닷장어를 굽는 바람에 저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저녁 성찬을 즐길 수 있었다.




 준비한 포도주도 곁들이며 모두거나해진 분위기에서 난 명절 차례상에 대한  내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피력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안 먹고 버려지는 음식에 정성을 다하기보다 차라리 제사상을 간단히 하고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돌아가신 부모님들 또한 힘겨운 노동으로 서로에게 잔뜩 날이 선 제사상을 받는 것보다 서로 반기고 즐거워하는 자식들 보는 것이 더 마음 편하시리라. 마침 얼마 전 나온 성균관의 표준 상차림을 들먹이며 우린 논의가 되어버린 대화를 이어갔다.


 남편은 잔뜩 예민해진 채 제사를 준비하는 나를 옆에서  지켜본 터라 지지를 보내는 입장이었지만 시동생은 많이 착잡해했다. 그 또한 시대 분위기를 모르는 바 아니었기에 동의하면서도 어머니 혼자 세 남매를 키우시며 고생하셨던 것이 가슴에 사무쳤는지 생전 못다 한 효도에다 왠지 사후까지 불효를 저지르는 건 아닌지 저어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우린 저마다 갖고 있는 그 마음들이 진정 고인을 위한 것이 아닌  남은 자들의 면피용 위로임을  잘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서로 소통하고 합의하여  모두가 즐거운 명절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 조금은 무게감을 갖고 논의해야 할 때임을 이미 각자의 마음에서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다음 설날 차례상부터는 합의한 대로 바꿔보기로 했다. 기준은 앞서 언급한 성균관표 표준 차례상으로 하고 그때그때 특별식을 준비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 가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물론 우리 집안의 합의는 기존의 가치관을 마치 하늘 같은 조상의 뜻인양 절대시 하던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고, 또 그만큼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었음을 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급변하는 시대, 더 이상 어떠한 감언이설로도 윗대부터 그렇게 해왔으니 너희도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는 논리를 포장할 수는 없다.

어쩌면 명절이나 제삿날 노동의 강도는 예전에 비해 수월해진 반면 세월이 갈수록 유독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더 이상 옳다고 여겨지지 않는 가치를 소위 더 오래 살았다는 사람들에 의해 강제되는 데서 오는 가치관의 충돌에 기인함이 아닐까 유추해본다. 이젠 더 이상 합리적 이유를 들어 대화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무엇이든 입 닥치고 따르라는 식의 논리는 통하지 않는 사회에  진입하고 만 것이다.


 지금의 4,50대는 10년 후, 이전의 5,60대와는 다르리라.


 문득 얼마 전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세대 간의 차이가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요즈음, 어쩌면 그 간극을 메우는 열쇠는 우리 세대의 손안에 쥐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두 세대를 모두 경험하고 어찌 되었던 그들과 연을 이으며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먼저 인식하고 각성한 것부터 일상생활에서 하나씩 하나씩 실천해나가야 할 때이다.

그리하여 진정 이전 세대의 아픔을 보듬으며 이후 세대에 길을 터주어야 할 점이 도래했음을  우린 이미 온몸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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