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미 Sep 26. 2022

도서관 가는 길

도서관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다

 오늘은 2주마다 돌아오는 책 반납일이라 남편과 함께 도서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즐겨 찾는 경남 대표 도서관은 집에서 대여섯 정거장쯤 떨어져 는데 우린 주로 운동삼아 걸어서 다닌다. 여름 동안은 날이 뜨거워 차로 이동하다가 9월 들어 날이 제법 선선해지자 우린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자주 다니는 길이다 보니 집에서 도서관까지 는 몇 가지 루트를 아내기도 했는데, 가을치곤 아직 오후 햇살의 기승이 만만찮은 오늘, 우린 나무가 우거진 뒷산 등산로로 하는 길을 택했다.



 제법 묵직한 책을 가방 2개로 나누어 남편에게 짐 지우고 마실 삼아 야트막한 뒷산을 관통하는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앞서거니 서거니 서로 실없는 농담도 주고받으며 도서관으로 향하는 숲 속 길은 상쾌했다.



 이제 완연한 가을 날씨라 때때로 바람이 흔들어 놓는 나뭇잎 사각거리는 소리가 마치 내 귀를 간지럽히듯 친근하게 느껴졌고 심술 가득한 햇살도 울창한 나무숲에선 전혀 기를 쓰지 못하는 터라 숲이 주는 청량감은 시원함을 너머 살짝 한기를 느끼게 했다.


 산을 내려오그새 심술이 농익은 독기로 변한 태양은 양산을 꿰뚫을 듯 햇살을 쏘아댔고 계절은 어느새 여름으로 회귀한 듯 두서너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기로 이글거리는 마의 구간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늘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녹여버린 듯 우린 허옇게 맨살을 드러낸 도로 위 걸으며 햇살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우리의 유일한 무기인 양산을 방패 삼아 소극적인 방어에 나서긴 했지만 우리집중 공약한 듯 쏟아내는 열기에 겨드랑이 사이로 흐르는 땀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훈의 상징인양 어느새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히서둘러 도서관의 출입문을 연 순간 기대해 마지않았던 예의 그 시원함은 느낄 수 없었다. 9월 들어 서늘한 가을 날씨로 도서관의 모든 에어컨이 작동을 멈추고 있었다.



 당황한 우린 연신 손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가며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서둘러 책을 반납하고 서너 권의 책을 다시 대출받은 후 실외로 나와 애타게 그늘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빈자리를 찾아 은은히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얼굴에 묻은 여름의 흔적들을 지우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곤 잠시 말 그대로 공활한 가을 하늘을 감상하다 각자 자신만의 책 읽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찾아온 천국, 한들한들 땀을 식혀주는 바람과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머금은 공기, 눈 안으로 스며들 것 같은 푸르고 깊은 하늘과 손에 쥐어진 책...


 그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힘들고 지쳐도 쉽게 멈출 수 없었던 생활들...

지금 생각해보면 자본주의하의 삶에 길들여져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결코 을 수 없었던 욕망을 뒤쫓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만두기까지 힘든 과정이었지만 막상 모든 걸 내려놓고 보니 그 또한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또 그렇게 살아지는가 싶었다.


 문득문득 엄습해오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서로에 대한 다른 기대치로 인한 갈등은 어차피 누구나 살면서 풀어가야 할 숙제인 것을...


 가끔씩 일렁이는 마음을 다잡으며 큰 기대나 서두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7~80대의 나에게 주어 질 시간을 한 살이라도 더 젊은 지금 앞당겨 가불 받았다 생각하며 그렇게 살자 했다.

너무 늦으면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시간을 지금 미리 꺼내 쓰고 있는 거라고...

나이 들어 조금 더 나은 형편을 끌어안고 살기보다 지금 아껴 쓰며 마음먹은 대로 한 번 살아보자 했다.

진정 내일 죽는다 해도 아무런 후회 없이 웃으며 눈감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자 했다.


 난 오늘 도서관 앞 그네에 앉아 나의 삶을 한 번 돌아본다.

흔들흔들 책을 읽으며...

흔들리는 그네가 재미있듯 흔들리는 나의 삶도 나름 재미있어지기를 바라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 후에 남겨진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