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정현미 Sep 06. 2022

나는 명절이 싫다.

명절과 제사에 대한 나의 생각

 추석이 일주일도 안 남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명절을 한 달 앞둔 날부터 마음이 부산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막상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온 신경이 그날에 가 있어 괜한 일에 짜증을 부리고 화를 냈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편 몫이었다.

그 시기엔 모든 일의 원인 제공자가 장남인 남편 때문인 것 같아 차례상을 물리고 시동생 가족을 배웅하기 전까진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철천지 원수 같은 남편에 대한 원망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결혼 전 명절은 덤으로 주어진 휴가며 축제였다.

 아빠가 셋째라 제사도 없었던 우리 집은 그래도 명절이면 여느 집처럼 기름 냄새를 폴폴 풍기며 음식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제사는 없었지만 엄만 제사 음식을 그대로 본떠 음식을 장만했고 딸에게 음식 준비란 약속이 없을 때나 거드는 하나의 선택사항이었지 결코 강요받은 적은 없었다. 나는 주로 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거나 소일하는 걸로 명절을 보냈고 명절은 당연히 그런 거라는 믿음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하지만 결혼은 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특히 홀시어머니에, 남매 중 장남인 남편과 결혼함으로써  명절을 포함한 일주일 정도의 기간을 오롯이 시댁에 반납해야 했다. 명절 며칠 전부터 시댁을 방문해 시어머니와 마트와 재래시장을 몇 차례 돌며 제사장을 봐야 했고  불려놓은 쌀을 가져가 줄을 서가며 떡집에서 떡을 했으며  지하철을 타고  부전시장을 방문해 생선을 생물로 떠서는 집에서 손질하고 사나흘  말리는 과정을 시어머니 옆에서 따라다니며 시중들어야 했다.


 그때는 그랬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집와서 어른이 시키는 일엔  하나 달지 못하고 그대로 따랐다. 암암리에 그렇게 교육받은  나는 어머님이 시키는 대로, 음식을 장만하고 제사를 지내고 친척들을 대접하며 또 집집마다 인사를 드리러 다녔다.

시어머니는 좋은 분이셨고 큰아들과 맏며느리를 대동하고 다니시는데 뿌듯함느끼고 계신 터라 더욱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뭔가 답답했고 가슴속 저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울컥하는 감정에 혼자 눈물을 삼키곤 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20년이 다되어간다.

시부모님 제사를 따로 지낸 지 10년, 처음엔 시어머니에게 배운 그대로 따라 하느라  설, 추석을 포함해 1년에 4번 있는 제사를 지내자면 제법 품이 많이 들었다. 하물며 그때는 바깥 일로 바쁜 시기라 명절 스트레스가 더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찾아오던 친척들도 분, 두 분 뜸해졌다. 그 사이 유명을 달리하신 제 부모님 제사 모시기에 바빠 자연히 발길이 끊겼고, 우린 논의 하에 어머님 기제사를 모신 지 11년째 되는 해에 시아버님 제사와 합치게 되었다. 

이제 찾아오는 이도 출가외인인 아가씨마저 제외하면 시동생 가족밖에 없었음식도 버리는 게 많아 양도 줄였다.

하지만 제사음식이라는 게 양을 줄여도 가짓수를 다 맞추다 보면 이리저리 일은 줄지 않고, 막상 먹으려고  차려놓으면 마땅히 손이 가는 게 없어  주메뉴를 따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난 내대에서 제사를 정리하고자 한다.

삶이 고단하고 배고픈 시절엔  가까운 친지와 음식을 나누는 의미라도 있었지만 더 이상 산 자들의 면피용으로라도 타 집안 자식인 며느리 손을 빌려 과도한 격식을 강요하는 일은 이제 내 세대에서 멈추고 싶다.

나 조차도 고인들을 위해 산 자들의 수고로움과 다툼을 반기지 않는데 우리 자식 대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얼마 전 방학이라 집에 들른 큰아들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엄마의 의중을 꿰뚫었는지 자신도 형식적인 명절 제사는 반대한다고, 아니 하지 않겠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사실 내가 결혼 이후 힘들어하면서도 20년 넘게 제사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이유는 형제간의 왕래 문제 때문이었다. 결혼 후 각자의 가족을 꾸리고 생업으로 바쁜 시절, 제사라도 없으면 형제지간에 어디 얼굴이라도 한 번 보겠는가? 나 하나 편하자고 형제간의 천륜을 끊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의미를 부여하며 제사를 이어오고 있었다.


 우리 아들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살아있을 때는 어떻게든 부모를 구심점으로 모이다가 돌아가시고 나면 뿔뿔이 흩어져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는 걸 주위에서도 종종 본다. 아들의 경우는 그 결과가 실로 명약 관학 하다.

저마다 각자의 삶으로 바쁘겠지만 적어도 일 년에 서너 번은 서로 얼굴을 보고 지냈으면 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작은 소망이다.


 하지만 그 형식이 꼭 제사일 필요는 없다.

이제라도 기꺼이 부모를 추모하는 즐거운 리를 꼭 만들어 주고 싶다. 부모의 기일이나 생일, 혹은 서로 조율한 날짜에 만나서 부모와 함께했던 추억을 나누며 따뜻한  한 끼 나누는 기념일을 유산으로라도 남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지금이라도

 함께 공유할 추억을 쌓아야 할 때이다.

만날 때마다 혹은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을 때도 따뜻한 말 한마디, 감사하는 마음, 사랑한다는 표현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할 때이다.


 난 죽어서 밥 한 그릇 더 얻어먹는 것보다 살아있을 때 사랑하는 이들과 많은 경험을 나누고 마음껏 사랑하며 또한 사랑받고 싶다.

그러므로 진정 지금이야말로 명절과 제사에 대해 솔직한 담론을 펼칠 때이다.

작가의 이전글 태풍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