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

녀석의 흔적

by 반야심경

청소기를 돌기기 전 눈치를 본다.

근데 눈치줄 고양이가 없다.

청소기 소리에 휘둥그레 눈을 뜨던 그 녀석이 없다.

그 녀석은 없는데 눈치 보는 나만 있다.


밥통, 물통, 간식, 고양이 모래, 숨숨집, 스크레쳐, 장난감.

무용해진 것들이 너무 많다.


내 눈치를 보며 녀석의 스크래처를 치워야겠지라고 묻는 남편을 보자 참았던 눈물이 펑하고 터졌다.

'오빠, 아직은. 아직은 안 되겠어.'


무엇부터 치워야 할까.

치우는 내 마음은 괜찮을까.

치워진 녀석의 물품들을 바라보는 남편은 괜찮을까.

슬픔의 크기도, 애도하는 방식과 속도도 서로 다르기에 고민이 되었다.


녀석의 흔적은 천천히 치울 생각이다.

우리의 마음이 허락될 때.


괜스레 녀석의 물그릇에 물을 채운다.

목마를라 우리 냐옹이.


11월 13일 쓰고

11월 21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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