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에 대하여

사건에 대응하기

by 친절한다정씨



내 딸을 의존적으로 만든 건 혹시 나 자신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이 말하듯, 내가 오냐오냐 받아주고 참아왔던 탓일까.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알았다. 그것은 단순한 핑계일 뿐이라는 걸. 어쩌면 나는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이 뒤섞인 상태에서 내린 판단은 늘 착오와 무리수를 남겼고, 그 결과는 예상치 못한 파장을 불러왔다. 그날 이후 나는 금요일 밤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많은 잘못된 선택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탓하고, 괴로워하고, 혐오하기에 이르렀다. ‘나 때문에 겨우겨우 추스른 딸의 마음에 또다시 상처를 남긴 건 아닐까’라는 생각은 나를 미칠 듯 괴롭혔다.

싸움과 미움, 용서 없는 시간들 속에서 힘든 건 어른들만이 아니었다. 그런 어른들을 위태롭게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나를 향한 비난은 견딜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자기희생적으로 자랐고, 나를 먼저 돌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늘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아이들을 향한 공격적인 분노만큼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어린 존재에게 차별적이고 비난적인 화를 쏟아내는 어른은 곁에 두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삶은 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른과 아이가 원치 않게 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한다. 타인이 타인에게 공정하지 못한 이유로 화를 내고 공격하는 건, 결국 그 사람이 가진 우월감과 권위적인 사고방식이 드러나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그런 장면이 지난 금요일, 우리 앞에 나타났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딸은 울었고, 월요일이 되어 학교에 가면서도 “그날 담임쌤의 벼락같은 화가 내 탓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는 딸에게 말했다.

“어른들도 감정이 파도처럼 휩쓸려서 순식간에 화를 내기도 하고, 감정을 다루는 게 미숙해 실수하기도 해. 어른이라고 해서 모두가 성숙하고 올바른 건 아니란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배우는 과정에 있는 거야. 그러니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네가 다 고쳐줄 수도, 다 받아줄 수도 없어. 그러니 네 마음을 더 돌보고, 네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행동을 해보자.

엄마도 가끔 미숙해서 실수하곤 해. 하지만 결국 풀리고, 화해하기도 하고, 다시 가까워지기도 하지. 영원히 단절되거나 사라지는 건 없어.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아이가 내 말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하리라는 걸 안다. 그래도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괜찮을 거라는 것을.
상처와 상실, 헤어짐 뒤에는 반드시 성장이 따른다는 것을.
그래서 결국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딸에게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말을 전하고,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정작 나는 숨어버렸다. 사람들과 마주하기가 두려웠던 건 나였다.

비록 딸은 울면서도 용감히 학교로 갔는데, 나는 숨어서 울었다. 아이에게 부담을 더 지운 것 같아 감정이 북받쳐 흘린 눈물이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찌질할까.”
마흔하나의 나이에도 여전히 들이받을 용기도, 뒤집어엎을 힘도 없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무엇의 결핍이 나를 이렇게 겁쟁이로 만드는 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비록 피해 다니고 숨을지언정, 나는 가장 약한 아이들이나 만만한 사람들을 향해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자들과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둘 수 있다.

이것도 용기라면 용기다.
내가 선택한 가치관이고, 나만의 기준이다.

그 누구도 내 자유 의지를 빼앗거나 속박할 자격은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로부터 끝없이 저항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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