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경고

일상에 대한 감사

by 친절한다정씨



친할머니는 내가 여섯 살 즈음 돌아가셨다.
그때만 해도 장례는 집에서 치렀고, 집 가까운 산 아래 무덤에 묻히셨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죽음이다.

어려서였을까. 그땐 죽음이 뭔지도 몰랐고, 눈물을 흘리는 어른들이나
집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그저 낯설기만 했다.
그저 기억나는 건 단 하나.
"윤수 머리 깎아주라."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남기셨던 유언이다.
이상하게도 그 말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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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죽음은, 지독한 주정뱅이였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먼 친척 삼촌이었다.
술로 망가진 삶을 스스로 정리한 그는
농약을 마시고 얼마 못 가 세상을 떠났다.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 즈음이었을까.
그 삼촌은 우리 집에 종종 술기운을 이끌고 찾아오곤 했기에
익숙했고, 정이 들었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돌아가신 후에도 길에서 환영처럼,
혹은 닮은 사람을 몇 번이고 마주쳤다.

집 안에서도, 그가 늘 앉아 있던 자리에서
지금도 여전히 거기 있을 것 같은 기분을
한동안 떨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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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도, 내 기억을 후벼 팔 만큼
크고 작은 부고들이 몇 년에 한 번씩 날아들었다.

유독 내 친구들 주변에서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시는 일이 많았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심지어 최근 몇 년은 거의 해마다
장례식장을 찾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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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각기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

자전거를 타며 웃으며 인사하던 친구의 할아버지는
그날 자전거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긴 병 끝에 지친 몸을 내려놓은 친구의 아버지,
딸의 결혼 후 혼자 지내시다 조용히 눈을 감으신 또 다른 아버지,
오직 일만 하시다 잠시 쉬려던 찰나,
코로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오랜 신장 투석 끝에 생을 마감한 또 다른 어머니…
그리고 그제, 친한 친구의 아버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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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갑작스레 날아드는 죽음은
마치 위대한 경고 같다.
언제든,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순식간에 찾아올 수 있다는 잔인한 예고처럼.

예측 가능한 죽음조차 감당하기 어려운데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죽음은
속수무책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파고들어
상처를 남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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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흔을 넘긴 나이에 접하는 부고는
단순한 소식이 아니다.
이제는 그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언제든 우리 가족에게도, 나에게도
그 차례가 올 수 있다는 불길한 상상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머문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번에도 우리 가족은 무사했구나’ 하며 안도했지만
요즘은 그 안도가 아니라,
**"다음은 나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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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밤,
깊어지는 생각에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가슴 깊이 밀고 들어온 경고는
잠들지 않고 나를 흔든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닫는다.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라는 걸.”

별일 없이 흘러간 오늘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는다.
무탈하게 지나간 하루를
더는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로.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이 경고를
이제는 정말 잊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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