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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사장님 Oct 31. 2023

마음이 급해졌어, 돈을 많이 벌어보고 싶어

나이 마흔에 돈공부를 시작하다.

결혼 후 5년간 외벌이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일주일 전까지 일을 했고, 아이가 태어나 내가 출산휴가, 육아휴직 시기에는 남편이 일을 했다. 다시 내가 복직을 하자, 남편은 자격증 시험 준비를 위해 안동 산속 고시원으로 떠났다. 혼자 회사를 다녔고, 아이를 키웠다. 남편이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고 취직을 하기 전까지 결혼 후 5년간 한 명이 일하면 한 명이 아이를 키우거나, 공부를 하거나 그렇게 외벌이 생활을 했다.

맞벌이 생활 2년간은 '이렇게 둘이 같이 벌면 평생 크게 돈 걱정 하지 않고 살겠다' 싶었다. 수입이 두 배, 세배가 되었으니 '먹고 살만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입학을 했다. 코로나시기라며 11시 50분에 하교를 했다. 여기저기 맡겨가며 키워낸 딸아이가 하교하면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가방도 들어주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면 아이와 친구들까지 모두 요구르트도 사주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예쁜 그릇에 과일을 담아 간식을 챙겨주고 싶었다. 그렇게 휴직을 했고, 퇴사를 했다. 모두 '먹고살만해졌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남편의 여동생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시누이의 치료를 위해 시부모님 모두 서울로 올라오셨다.

시댁식구 3명 모두가 수입이 없어졌다.


엄마가 일을 하다가 손을 다쳤다.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늘 노후가 걱정이신 시어머니는 어디 가서 청소일이라도 하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셨다. 마음이 아팠다.

늘 노후가 걱정인 엄마는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마음이 아팠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곤란한 상황에서 당신을 구해 줄 수는 있다.
- 클레어 푸드 루스


마음이 급해졌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졌다.

나이 마흔에 돈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청소일을 하고 싶다던 시어머니에게 조그마한 반찬가게를 차려드렸다. 지하 반찬가게에서 하루종일 홀로 일하시는 시어머니 가게로는 스스로 노후를 준비할 수 없다고 판단을 했다. 이대로는 시어머니 건강만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당시 읽었던 부의 추월차선(엠제이 드마코 지음)에 의하면 시어머니의 삶은 서행차선, 아니 인도에서 걷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시어머니와 엄마의 노후는 이미 시작되었기에.


인생의 중심을 소비가 아닌 생산에 두어라.
사업을 시작하고 세상에 가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하라.
사업을 통해 무제한적이고 통제 가능한 부의 변수를 활용하라.
- 부의 추월차선, 엠제이 드마코


 나의 워킹맘 시절을 떠올리면, 매일매일이 아이 밥 걱정이었다. 준비된 음식이 없어 어쩔 수 없이 3분 짜장의 봉지를 뜯을 때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항상 건강한 식재료로 건강하게 만든 음식을 편하게 주문하고,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일을 하고 들어와 준비된 음식으로 여유롭게 저녁을 차리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이미지화했다. 분명히 다른 엄마들도 그러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고 판단했고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감사한 회사를 그만두며 받은 퇴직금으로 시어머니 반찬가게를 인수했다. 1층 넓은 공간으로 이사를 했고, 직원을 뽑았고, 상품개수를 늘렸으며, 판매채널을 늘리고, 손님이 쉽게 주문할 수 있도록 주문방식을 온라인화 했다. 그리고 손님 한 명 한 명에 정성을 기울였다. 손님들이 시어머니와 우리 엄마의 노후를 책임져줄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손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었고, 그만큼 정성을 들였다. 손님 한 명이 두 명을 소개하고, 두 명이 4명을 소개하며 빠르게 입소문이 퍼졌다. 입소문이 한번 나자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주문을 한 달에 한 번만 받는데 주문서가 오픈되면 1분도 안돼서 품절이 되었다. 품절사태가 이어지자 손님들은 더 열광을 했다.


우리 가게는 엄마들에게 아이들과 함께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선물했고, 손님들은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의 노후를 책임져주었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돈 공부를 시작하였을까라는 후회가 든다. 우리를 키워내느라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 엄마와 시어머니가 노후를 걱정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그녀들, 이제 이젠 나만 믿어요.

그래서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돈공부를 한다.





나이 마흔에 시작한 엄마의 돈공부 이야기를 블로그에도 작성하고 있습니다.

나이 마흔 즈음해서 돈공부를 하고 싶은 엄마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https://blog.naver.com/mjk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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