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는 사장님 Oct 30. 2023

쿠팡맨이던 남편이 대형로펌 변리사가 되다.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

2013년 3월 16일, 결혼을 했다.  

2013년 5월 31일, 남편이 퇴사를 했다.

남편의 월급을 고스란히 쥐어본 것은 고작 3개월이었다.


친구와 스타트업을 한다는 남편은 한국의 스티브잡스가 될 생각에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 커다란 꿈의 풍선을 터뜨려버릴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너는 네 인생, 나는 내 인생 아니던가.

너는 너, 나는 나이기에 8년의 긴 연예생활 끝에 결혼의 골까지 인하지 않았나.


그 시절, 남편은 출근하는 나를 바래다주고, 친구와 함께 일하는 사무실로 출근을 했고 퇴근하는 나를 데리러 회사 앞에 왔다. 우리는 투룸 빌라의 작은 신혼집에 들어가기 전 마트에서 두부 한모, 스팸 한 캔, 소주 한 병을 샀다. 두부와 스팸으로 만든 두부김치에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하면 내일 당장이라도 우리 남편이 스티브잡스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남편이 큰돈을 번다면 나는 내 이름으로 사회복지법인을 세우겠다며 喜喜樂樂(희희낙락) 했다.


그러나, 남편이 스티브잡스가 되기 전 아이가 태어났다.


남편은 스티브잡스가 될 꿈을 접고 다시 취업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서른 중반의 남성은 취업시장에서 인기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출산 휴가와 휴직을 하게 되어 남편은 당장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사장에서 트럭에 뭍은 흙을 털어주는 전문용어로 '똥털이'라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쿠팡맨도 하고, 학원 강사생활을 하며 공부하던 남편은 결국 1년 반의 수험생활을 마치고 변리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지금은 대형로펌변리사로 일을 한다.





남편이 공사장 똥털이로 일을 할 때의 일이다.

남편은 처음 해본 똥털이 일을 잘 해내고 싶어 집에서도 나무 막대기로 연습을 하곤 했다. 나무 막대기를 어깨 힘이 아니라 반동을 이용해서 휘두르면 좀 더 편하게, 많이 휘두를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매일 공사장에서 이렇게도 휘두르고 저렇게도 휘두르며 경험을 쌓고 일의 핵심에 닿아 갈 때쯤, 새벽의 추운 공기 속에서 믹스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아껴먹고 있는 남편에게, 공사소장님께서 "이번 공사 끝나면 다른 공사현장에 같이 가서 일하자. 지금처럼만 열심히 일하면 굶어 죽지 않게 살게는 해줄게"라고 제안을 해주셨단다. 남편은 집에 어린 자식이 있어 다른 지역 공사장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소장님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만약 자신이 그 공사장을 따라갔다면 자신은 한국의 건축업 재벌이 되어 있을 수 있었단다.  


남편이 쿠팡맨으로 일을 할 때의 일이다.

쿠팡맨은 배달 지역별로 팀이 묶여 있는데, 그 팀에 배정된 배달개수를 당일에 모두 완료해야 되기에 팀원 중 본인의 배달을 모두 끝낸 사람이 있으면 아직 배달을 마치지 못한 사람의 배달을 도와주라는 리더의 지시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의 배달 일을 일찍 마치고 다른 사람의 배달을 도와주는 사람을 '에이스'라고 지칭한단다. 남편은 매일 밤, 배달 지역 지도를 외웠다. 지도를 외워 버린 그는 최적의 배달동선을 짜 쿠팡맨으로 일한 지 한 달 만에 '에이스'가 되었다. '에이스'가 되자 더 신이 나서 배달을 돌리던 남편은 지금까지도 배달음식을 시키면 지하주차장에서 배달기사님을 기다렸다가 음식을 받아온다. '배달기사'님의 시간은 금이기 때문에.


얼마 전 읽은 최인아 님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에도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

최인아 작가님의 후배의 이야기이다. 제일기획에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는데 입사 후 매일 하는 일이 복사였단다. 좋은 학력으로 좋은 회사에 입사한 똘똘한 젊은 직원이 매일 복사만 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는가. 누구나 그렇지만, 그 신입직원 역시도 빨리 성과를 내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복사하려고 취직했나라고 생각하며 빨리 퇴사하는 경우들도 많은데 그 직원은 달랐단다. 그 신입직원은 제일기획 회사 내에서 가장 복사를 잘하는 직원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회사 각 층 각 복사기를 다 사용하고 가장 빨리, 잘되는 복사기를 찾아내서 실제 복사를 제일 잘하는 직원이 되었단다. 그래서 그 직원은 지금 어떠한가? 매우 잘 나가는 광고인이 되셨다고 한다.

퇴사를 하고 시어머니가 하시던 반찬가게를 인수해야 되는 상황이 왔다. 음식을 만들어 본 적도 없고, 맛을 내기란 더욱이 힘든 나인데 내가 반찬가게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지만 그 이면엔 화장하고 머리하고 출근하던 내가 동네 반찬가게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더욱이 반찬을 배달할 때 그 생각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내 안에 잘해보고 싶은 마음, 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매일 새벽 시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가서 물건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정성 들여 음식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손님들께 보내드리고, 원산지 표기도 국내산 어디 지역이다까지 쓰며 깐깐히 했다. 또 마케팅 책을 읽고 가게 홍보 글을 썼으며,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입소문이 난 우리 가게는 매출이 10배가 늘어났고, 일 하시는 분들이 많아져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생겼다.



최인아 작가님이 유퀴즈에 나와서 하신 말씀 중에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 "태도가 경쟁력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땐 아 고달픈 내 인생이라며 인생의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한탄에서 멈추는 순간, 인생은 더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던, 어느 곳에 있던 현재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매일 충실하게 잘 보낸 사람만이 결국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자기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아이 밥 잘 차려주고, 방바닥도 열심히 닦아보겠노라 다짐을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가슴뛰는 삶을 사는 내가 되길 바라며 세부 한 달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