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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사장님 Nov 20. 2023

아이의 하얀 얼굴에 가난이 묻어있다.

가난한 집에도 행복이 깃드는가?

 싸늘한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어디에 엉덩이를 두고 앉아야 하나?' 가은이 엄마는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보라색 극세사이불을 발로 치우며 내 엉덩이만큼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극세사 이불이 덮여 있었지만, 바닥의 냉기는 여전하다.


아동복지시설에서 일했을 때의 일이다.

가은이는 초등학교 4학년으로 하얀 얼굴에 큰 눈이 참 예쁜 아이였다. 겨울철이 되면 가은이의 하얀 얼굴은 붉은색을 띠고 하얀 각질이 일었다. 가은이는 아빠, 엄마, 오빠와 함께 반지하 방 2개와 부엌이 있는 곳에 살았다. 사회복지사였던 나는 가은이가 잘 지내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 달에 두서너 번씩 가은이 집을 찾았다. 반갑게 맞이해 주는 가은이. 큰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면 왠지 그 눈에서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은이 엄마는 나를 앉혀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월세가 밀려 집주인이 나라가라고 한다. 이 집에서 쫓겨나면 애들을 데리고 어디에 가서 사느냐. 온수가 나오지 않아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여 애들을 씻기고 있다. 가스도 곧 끊길 것 같다. 남편은 돈을 안 가지고 온다. 매일 술만 처먹는다. 가은이 오빠가 오토바이를 훔쳐서 경찰서에 갔다 왔다. 합의금이 필요하다. 애들은 지 아빠를 닮아서 꼴 보기도 싫다. 애들만 없었어도 집을 나갔을 거다. 가은이 엄마는 점점 목소리가 커진다.


가은이에게 다른 방으로 가 있어도 된다고 했다. 잠깐 놀이터에 가서 놀다 와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가은이는 엄마 옆에 꼭 붙어 있는다. 엄마가 떼어내도 엄마에게 기대려 한다. 엄마의 얼굴을 살피느라 가은이의 큰 눈이 바쁘다.


가은이 아빠가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온다. 가은이 엄마의 목소리는 악다구니로 변한다.

"저 인간이 또 술을 처먹었네"

"애새끼들하고 지 마누라는 이 추위에 집에서 덜덜 떨고 있는데 술 사쳐먹을 돈이 있냐"

"니 새끼 감방 안 보내려면 오토바이 합의금 가져와라"


"저 여편네가 사회복지사 선생이 와 있는데 서방보고 저 새끼라네"

"저번에 가져다준 백만 원은 어디에 썼냐? 돈을 벌어다 주면 뭐 하냐 여편네가 헤퍼서 돈이 남아나질 않는다"

"씨발 집구석에 들어올 맛이 안 나네"

가은이 아빠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가은이 엄마에게 도움 줄 수 있는 서비스를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아이들 앞에서 절대로 욕하면서 큰 소리로 싸우지 마시라 당부한다. 가은이에게도 오늘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선생님한테 꼭 전화하라고 당부한다. 가은이를 반지하 집에 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그날도 무척이나 무거웠다.


 



 가난은 걱정이고 두려움이다. 우리는 돈 쓸 데는 많은데 돈 들어올 데가 없을 때 가까이 있는 사람을 잡게 되어 있다. 그 사람을 원망하게 되어 있다. 가난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가난으로 인한 걱정과 걱정으로 인해 벌어지는 다툼 같은 것이 문제이다. 가난은 정신과 두뇌 그리고 영혼까지 우울하게 만든다. 인생에 독을 뿜어댄다. 가난은 땔나무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난은 땔나무를 살 돈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며 걱정하는 것이다. 가난은 바로 그런 걱정이다. 가난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두려워한다. 참으로 끔찍한 두려움이다. 축구황제 펠레가 한 말이다 < 재정의 P24. 한근태>




 가난은 창피한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 했던가? 마음부자가 진짜 부자라고 했던가? 모두 개소리다. 아이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가난에서 자고, 일어나고, 씻고,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간다. 그 겨울 아이의 조그마한 몸이 가난을 모두 겪어 내고 있었다. 아이의 하얀 얼굴에는 가난이 묻어 있었다. 아이 엄마는 가난으로 아빠를 잡고 아이들을 잡았다. 아이들을 원망했다. 악다구니를 쓰며 뽑아내는 독기로 아이들의 영혼까지 우울하게 만들었다.


가난한 집에도 행복이 깃드는가?









날씨가 추워진다. 가은이가 생각난다. 이제 중학생이 되었겠다. 잘 지내고 있니?


 딸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 3학년이 된다.   

 내 아이를 조금 키워냈으니, 다시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나이 마흔에 진한 진로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를 키우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지금이 경제적으로도 더 여유롭고 아이와 함께하기에 좋기도 하다가, 아이들을 돕는 예전의 일을 다시 하고 싶기도 하고요. 무엇이 맞는 것인지 몰라 매일이 고민이고 방황 중입니다.


블로그에서도 만나요♡

https://m.blog.naver.com/mjk3341


사진 픽사베이, 내 사진첩

아이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가명을 쓰고 가족관계 등을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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