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도시락을 먹을까 봐 전전긍긍하던 어린 시절이었다. 새 학기의 최대 고민은 급식친구 만들기. 혼자 급식실에 가는 건 끔찍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와의 다툼엔 반드시 점심시간 전에 사과했다. 같이 급식실에 가야 하기 때문에.
혼밥을 시작한 때는 대학교 3학년. 친한 친구들이 휴학을 하고 혼자 남겨진 대학교 3학년 시절, 그마저도 학교식당에서 먹지 않고 스쿨버스를 타고 나와 지하철역 앞 김밥천국에서 김밥을 사 먹곤 했다. 얼른 먹고 얼른 일어나던 혼밥 초기시절. 그 시절 혼밥은 외로웠다.
사회 초년생 시절, 동기와 사수가 챙겨주던 나의 밥. 혹여 친한 동기가 휴가를 내는 날에는 점심을 먹지 않고 지나가기도 했다. 사회생활은 꽃은 바로 점심시간 아니던가? '오늘 뭐 먹지?로 시작하여 이어지는 회사의 불합리한 상황, 험담이 조직관계를 공고하게 해 줬다. 단순히 밥 먹는 행위가 아니라 조직 생활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혼밥을 한다는 것은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것과 같았다.
혼밥예찬이 시작된 건 아이가 태어나서부터다. 모유수유를 했던 나는 매일 허기짐의 연속이었는데 내 입에 음식물을 갖다 대는 그 순간, 아이는 울어댔다. 그 시절 단 하나의 소원은 '밥 좀 편히 먹자'였다. 대인배라고 부르던 남편을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빨리 먹고 빨리 아이를 안고 나가야 내가 편히 밥을 먹을 수 있는데 남편은 나와 밥 먹는 속도를 같이 했다. 답답했다. 울먹이며 "나 밥 좀 먹게 빨리 먹고 아이 안고 나가줘"라고 말 한 이후 밥상에 평화가 찾아왔다. 당시 살고자 일주일에 한 번씩 혼자 밥 먹으러 나갔다. 설레는 혼밥의 첫날은 함흥냉면집이었다. 더운 여름냉면의 시원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호로록호로록 먹을 때, 천상의 맛을 느꼈다. 살얼음 낀 냉면 육수까지 모두 마신 후 아이를 잘 돌봐야지라는 경건한 다짐이 생겨났다.
회사 생활 15년 차, 관리자가 된 나의 점심 식사는 후배 직원들이 챙겼다. 그렇게 마련되는 점심식사자리는 나는 나대로, 후배직원은 후배직원대로 불편한 기색이었다. 식사 메뉴 정할 때 내 의견이 우선되는 게 불편했다. 내가 음식이라도 흘리는 날이면 후배직원은 엉덩이도 가볍게 일어나 "이모, 여기 물티슈 좀 주세요"라며 부지런을 떨었다. 고마웠지만 불편했던 점심시간을 끊어 내었다. 후배직원에게 상사 욕도 좀 하고 편하게 식사하라고 전하고 점심시간을 옮겨 혼밥을 먹었다. 상사랍시고 예의 차려야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니 소화도 잘되었다. 회사 생활에서 혼밥 먹는 점심시간은 내 유일한 쉼의 시간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말 걸지 않고, 아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그 고요함이 좋다. 내가 뭘 먹고 싶은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 먹는 자유로움이 좋다. 온갖 생각을 멈추고 단지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혼밥을 먹고 나면 가족들이 생각난다. '이 음식점에 같이 와야지' 라든가 '이 음식 집에서 해줘야겠다' 라던지. 가족애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기에 또 좋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