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췌장암 말기에도 일을 하셨던 나의 아버지. 고된 노동일을 잊느라 술을 그렇게도 많이 드셨던 것일까? 어린 나는 무서운 아버지를 피하기 바빴으나 어른이 된 나는 아버지의 삶이 궁금하다. 나의 아버지가 바라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이제야 아빠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췌장암으로 죽음에 이르러서야 끝난 ‘가족 먹여 살리기’에서의 해방은 어떤 느낌이셨을까? 해방감을 맛보셨을까?
중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충북 괴산에서 혼자 서울로 올라와 전기 기술을 배우며 현장에서 쪽잠을 잤다던 어린 아버지는 무능한 본인 아버지 밑 8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뜨거운 사우디에서 땀에 젖은 메리야스를 손으로 쥐어짜 다시 입어가며 일을 하셨단다. 2년간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우디에서 전기일을 하셨던 젊은 날의 아버지는 그 돈으로 가난으로 인해 흩어져 살고 있는 부모와 8형제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서울 사당동에 마련하였다.
(마흔이 된 나는 여기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당동의 집은 누구 명의였을까? 아버지의 평생 자랑이었던 그 오일 머니는 도대체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여하튼 50년간 고된 노동일을 하며 부모와 형제, 마누라와 딸들 총 13명을 먹여 살렸지만 영리하지 못했던 나의 아버지는 그 누구에게도 고마움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어려서부터 공사현장에서 쪽잠을 자며 선배들에게 두들겨 맞아가며 전기기술을 배웠으나, 주도를 배우지 못한 탓이다. 아버지의 술주사는 본인의 부모와 형제가 살던 서울 사당동에서 처자식과 함께 살던 서울 신림동으로 옮겨왔다. 아버지는 술주사 딱 하나의 이유로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예로부터 술은 어른에게 배우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버지는 어른한테 못 배운 티가 평생을 걸쳐났다)
추운 겨울,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각, 공복에 소주 한잔 걸치고 두꺼운 내복 위에 황색 골덴바지를 입고 남색 점퍼를 입은 후 자고 있는 처자식이라는 책임감을 입고 나서야 흰색포터에 시동을 걸었던 아버지의 새벽을 생각해 본다. 높은 곳에서 고압 전기를 만지는 일을 하던 아버지는 50년간 그 일을 했지만 술을 먹어야만 높은 곳에서 고압 전기일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자신이 올라가 있는 높이가 무서워서. 자신의 몸을 관통하던 고압전기가 두려워서.
고압 전기일을 하던 아버지의 몸에선 전기가 흘렀다. 아버지의 살결이 닿으면 찌릿한 전기가 통했던 그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사는 내내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미워했던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15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온 나는 ‘먹고살기가 왜 이리 힘이 드는가’. ‘겨우 내 몸 하나와 딸내미 하나 건사하며 사는 게 이렇게도 힘든 일인가’를 생각하며 항상 그렇듯 퇴사가 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을 때 문득 아버지가 생각 났다. 이렇게나 힘든 일을 50년 넘게 하신 나의 아버지가 불쌍해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도 미워했던 아버지를 50년간 가족들을 먹여 살린 것 하나로 면죄부를 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생각한다. 높은 곳에서 온몸에 고압전기가 흐르는 것을 덜 느끼기 위해 아침부터 소주를 마시고 50년을 일하신 나의 아버지는 틀렸다. 사랑하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소주를 먹고 고압전기일을 하실 일이 아니었다. 소주를 먹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어야만 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김샌님이 되는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 줄 수 있는 일을 하셔야만 했다. 그게 ‘가족 먹여 살리기’가 가진 숭고로운 가치에 더 가깝기 때문에.
퇴사를 하였지만 여전히 가족 먹여 살리기의 숭고한 가치를 지켜가고 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기에 감사하다. 등교하는 아이의 하루를 응원하며 ‘사랑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즐거운 하루 되렴’ 인사를 한다. 그리고 가게로 출근을 한다. 아이가 하교하는 1시경에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다 하교하는 아이의 가방을 들어주고 학교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며 내는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를 듣는다. 놀이터에서 놀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친구들과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수다를 떤다. 집으로 돌아와 고구마도 삶아주고, 잔기지 떡도 구워주고, 바나나우유도 만들어주며 급식으로 채우지 못한 배를 채워 준다. 아이를 학원차에 태워 보내고 다시 가게로 출근하여 가게 일을 정리한다. 아이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와 함께 저녁 먹고 숙제를 봐주며 책을 읽고 잠자리에 든다. 꿈에 그리던 완벽한 하루다. 뒤늦게 야근하고 회식하다 쩔어서 들어온 남편 빼고. 남편은 오늘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야근을 하고 회식에서 소주도 먹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씻지도 않고 소파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그놈의 '가족 먹여 살리기'는 언제나 끝나려나. 이쯤하면 '가족 먹여 살리기'는 소주를 먹기위한 남자들의 만능치트키인가라는 매우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사진출처 : 진로화이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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