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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손만두
by
맵다 쓰다
Jun 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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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이 신문지가 깔린 한평 남짓한 공간 위 도마와
나무
밀대..
이런 게 준비되면 의미하는 것은 2가지이다.
오늘은 만두 빚는 날, 그리고
온
가족이 동참해야한다는 것이다.
일간지 두께의 반죽이 종잇장처럼 후둘거려질때까지 덧밀가루를 뿌려 밀고 또 미는 지루한 시간을 거친다.
반죽이 얇아지는 모습을 무아지경으로 구경하다 보면 '나도 한번?' 하는 마음이 든다.
볼 때는 쉬워 보여 겁 없이 도전해보지만 막상 해보면 안다. 균일한 두께의 관건인 힘 분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작은 주전자 뚜껑으로 찍어내서 만두피가 겹치지 않게 덧가루를 살살 뿌려 켜켜이 쌓는다. 여기저기 흩날리는 밀가루 덕에 과정보다 더 힘든 뒤처리를 남긴다.
이렇게 만두피를 만드는 것은 만두 빚는 시간
의 절 반을 차지할만큼 수고가 많이 들고 번거롭다.
수고를 감수하고도 이어지던 우리 집표 100% 수제 만두의 역사는 90년대 중간쯤 깨졌다.
어쩌다 사 본 '○○만두피'때문이였다.
포장만 뜯어내면 두께부터 크기까지 균일한 냉동만두피는 100%수제표 만두 타이틀을 내려놓을만큼 편하고 매력적였다.
"원래 만두는 속이
진짜지!"
다른 건 양보해도 가족들이 좋아하는 취향의 만두소만은 타협이 안됐다.
적당히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는 김치, 다진 분홍빛 고기, 말갛게 씻어서 다져진 양파와 당근, 쫑쫑 썰은 부추,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몰랐던 숙주, 꼭 짜서 물기라
곤 찾을 수 없는 베보자기에서 나온 두부..
하나씩 준비된 재료가 모인 모습
을 옆에서 지켜보면 정갈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오늘만은
각각의 음식이 아니라 같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날이다.
한 곳으로 모든 재료가 쏟아지면
재료 고유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형체도 없이 질퍽한 느낌의 미완의 덩어리가 된다.
무엇이 될지 모르는 모습이다.
철벅이는 소리를 내면서 내가 너인 듯 네가 나인 듯 잘 섞이
고 평소에는 쓸 일도 없었던 장미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진 큰 유리 볼 안에 가득히 담겨서 올려진다.
주욱 늘어선 쟁반의 대열,
숟가락이 무심하게 찔러진 채 산처럼 쌓인 만두소,
뽀얀 덧가루를 입은 만두피..
작은 물그릇 하나와 위생장갑..
"준비 다 됐어!"
엄마의 말을 신호탄 삼아 선수들이 입장한다.
동그란 상을 둘러쌓고 펼쳐지는 만두 빚기의 시간이다.
속을 한 숟갈 떠서 만두피 중앙에 올려놓는다.
반으로 접어도 속이 삐져나오지 않으려면 적당한 양을 정중앙에 놔야 한다.
적당한 양이 얼마만큼인지 서너 개는 만들어봐야 손이 알아듣는다.
과한 욕심으로 속이 삐죽 튀어나오게도 해보고 소심하게 덜어내 누르면 푹 꺼지는 홀쭉한 만두도 만들어봐야 최적의 평균값이 입력된다.
엄마와 아빠, 나 그리고 오빠의 8개 손이 각자 바삐 움직인다. 하지만 눈이 향하는 곳은 한 곳.
바로 아빠의 만두이다. 6개의 눈동자는 자기 것과 아빠의 만두를 번갈아가면서 훔쳐보기 바쁘다.
평균값을 내는 과정도 없이 처음부터 꼭 들어맞는 계산력.
망설임 없
는 숟가락이 동그란 만두피 정중앙에 안착한다.
분홍 만두소의 적당한 양은 접었을 때를 고려해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들어찬다.
검지에 물 한번 묻혀 쭉 그어주면 물이 과해 만두피가 풀어지지도 마르지도 않게 딱 붙을 만큼만 묻힌다.
한쪽 끝부터 공기가 들어올 틈도 없이 눌러가면 찰떡같이 만들어지는 반달.
반달의 양끝을 가지런히 모으면 아기 엉덩이처럼 봉긋하게 솟아오른다.
만개하기 전 장미꽃 같기도 한 만두의 자태..
첫 번째 만두와 마지막 것의 모양이 한치 다름이 없이 찍어낸 듯 같다.
속을 덜어냈다 더 넣었다 하는 나를 보고 "그냥 아무케나(아무렇게나) 만들어~ 맛만 있음 되지" 하고 엄마가 말하면서 '아무케나 식'으로 만두를 빚어서 올려놓자, 만두를 잘 못 빚어서 예쁜 딸이 안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아빠에게서 날아온다.
외모에 한참 예민한 십 대 딸에게서 레이저 눈총을 매번 받으면서도 늘 같은 레퍼토리..
하지만 엄마의 자유로운 만두 모양도, 예쁜 딸이 아니란 것도 크게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긴 하다.
남자들은 큭큭대고 여자들은 입이 삐죽거려지는 시간이 더해지면서 쟁반 위 만두가 채워진다.
그렇게 삐뚤어진 만두, 속이 삐져나온 만두, 찍어낸 듯 정갈한 만두, 다양한 모양이 하나하나 만들어지고 쟁반에 달라붙지 않게 뿌려둔 밀가루가 여기저기 묻는 것처럼 웃음도 투정도 같이 묻어서 빚어진다.
한숨이 나오게 높은 산의 만두소
가 나지막한 동산으로 변해간다.
열서너 개쯤 만들고 나면 슬슬 재미도 없어지고 허리도 아파온다. 하나 둘 자리를 뜨지만 언제나 마지막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빠는 식구들
이 다 빠져나간 만두판에서 더 집중해서 진시황릉 병정처럼 열과 오를 맞춘 만두를 생산해낸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으로 표현한 적 없는 그냥 보통의 무뚝뚝한 아버지
였
다.
좋아하는 술을 한잔하고 들어오실 때면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과자나 어디서 저녁을 먹었는지 짐작되는 것들이 손에 들려 있었다.
배달이나 포장이 흔하지 않았을 시절이였다.
조금 식은 찐만두, 찌그러진 붕어빵, 경양식집 피자부터 설익게 구워진 군밤, 껍질이 벗겨져 구워진 은행까지..
명절이 오면 우리 집은 늘 만두를 빚었다.
다른 집 떡국과는 다른 떡만둣국, 할머니의 이북 입맛을 닮은 아빠는 만두를 좋아했다.
꼭 설날이 아니라도 가끔 아빠는 "우리 만두 빚어먹을까?"하고 웃으면서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귀찮다는 대답을 무사통과하기 위한 부드러운 제스처를 더해서 말이다.
평소에 설거지 한번 하는 법 없고 물 한 컵도 엄마를 시키는 아빠지만 이상하게 만두만은 직접 빚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준비와 과정이 있는 귀찮은 만두 만들기를 먼저 제안하는 건 언제나 아빠였다.
어릴 때는 내가 노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아빠는 만두 만드는 게
재미있나보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한 가정을 꾸리는 부모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
때는 보이지않았던 마음이 보인다.
만두를 만드는 게 재밌어서도 아니고 아빠가 만두를 좋아해서도 아
니였을 것 같다.
다 같이 재료를 준비하고 동그란 상에 둘러앉아 한참을 만들어야 끝나는 과정, 그 시간을 좋아하신 것 같다.
도란도란 이야기가 넘치는 가족은 아니였지만 특별히 말할거리가 없어도 딴 말이 필요 없이 니 만두, 내 만두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가고 한 그릇씩 받아든 만둣국이 가족들 입으로 쏙쏙 들어가는 모습까지 말이다.
데치고 포장하는 귀찮은 과정을 거쳐 냉동실 가득 채워놓으면 우리에게 추억을 채운 듯 뿌듯하셨을까...
4살에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께 배우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다.
그런 의도였다면 성공적이다. 어릴 때 그 추억은
각각의 재료를 하나로 감싸 어우러지면 예상치못한 맛이 되는 만두처럼 늘 나를 따라다니며 따뜻하고 든든하게 속을 채워줬다.
어디서든 직접 만든 만두를 먹게 되면 아빠가 떠오른다.
아빠와 함께 만든 만두의 맛은 흐려졌지만 반듯한 모양은 그때의 웃음소리와 함께 선명하게 남아있
기때문이다.
이제는 다시 맛볼 수 없는 아빠의 단정한 손만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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