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식사시간이 지나고야 정작 자신의 끼니를 챙긴다. 더운 증기, 물 마를 틈 없는 바닥, 센 화구 앞에서 바짝 긴장한 시간을 폭풍처럼 보내고 자신의 식탁을 마주한다.
노동강도가 센 일인 만큼 허기가 몰려온다.
저마다 그득하게 밥과 반찬이 올라가는데 옥순의 저녁상엔 또, 파프리카 2개가 고작이다.
달큰한 과일이나 되는 양, 와그작 와그작 소리 내며 맛나게 먹는 모습에 동료들은 그 나이에 얼마나 더 이뻐지려고 그러냐고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옥순은 자기 관리가 철저한 여자였다. 그 나이라면 다들 가지고 있는 두툼한 아랫배도 없고 철저하게 건강을 관리해서인지 6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탄탄한 체격을 가졌다.
당연히 건강에 특별한 이상도 없다. 하지만 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9시간을 내도록 서서 일하고도 한 시간씩 걷기 운동을 한다고 했다.
사실, 그녀에게는 나와 동갑인 아들이 하나 있다. 여느 자식 같았으면 나처럼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일을 할 나이였겠지만 아들은 보호시설에 있었다.
자폐라고 불리는 중증 발달장애를 가져서인데 주말마다 집에 데려온다고 했다.
어느 주말 저녁 같은 동네에서 살던 그녀를 산책로에서 마주쳤다. 옆에는 손에 깍지를 꼭 잡은 아들과 함께였다.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할지, 아이 같은 눈망울에 안녕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반가운 눈빛을 보내며 그녀의 아들에게도 가볍게 목례를 했다.
반가워하는 내 표정에 신이 났는지 내 손을 부여잡으려는 것을 옥순은 제지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큰 키에 좋은 체격, 선한 눈매가 그녀를 똑 닮은 아들을 꼭 잡고 둘은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부모가 되고 보니, 부모의 마음을 알겠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누군가를 나라는 존재보다 더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게 부모란 것을 몰랐다.
언어의 온도를 읽다가 애지(愛之) 욕기생(欲其生)이란 말이 나온다.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로 이기주 작가는 풀이하고 있다.
이 말은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문장이다.
애지(愛之) 욕기생(欲其生), 오지(惡之) 욕 기사(欲其死)
자장이 덕(德)을 갖추고 미혹됨을 분별하는 방법을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진실한 마음과 신뢰를 가진 사람을 가까이하고, 의로움을 따르는 것이 바로 덕을 갖추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그가 잘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면 죽기를 바란다. 그가 잘 살기를 바라고서 또한 죽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미혹됨이다.
모든 부모들이 애지 욕기생의 마음으로 자식을 보겠지만,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은 그 이상이다.
반드시, 자식을 위해 내가 잘 살아내야 한다는 처절한 의무를 가진다.
그 사람이 살고자 하게 하는 것을 넘어 내가 더 잘 살아내게 만드는 힘은 얼마나 깊은 사랑일까..
지금도 파프리카를 볼 때면 자주 그때가 떠오르곤 한다.
너를 잘 살게 하기 위해 나를 살리게 하는 파프리카. 너는 나이가 들어도 나는 너를 건사할 만큼 건강한 어미가 되어주게 할 파프리카.
그 파프리카 2알에 들어있던 의미를 떠올릴 때면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옥순의 행복을 조용히 빌어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