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그게 뭔 대수라고~ 너희 바쁜데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어머니는 자주 이 말을 하신다. 그럼 생일이 중요하지 뭐가 중요하냐고 전화로 실랑이를 벌인다. 결혼하고 제일 처음 맞은 시부모님 생신에 생일상을 딱 한 번씩 차려드렸다. 아이가 줄줄이 태어나고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생일은 언젠가부터 외식하는 날이 되었다. 먼 곳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생신을 가족과 함께 하는 건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시는 게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다. 또 시작이시다. 진짜 안가면 서운하실거면서 왜 안해도 될 말을 하실까? 결혼 십 년 차가 넘어가니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오히려 투정처럼 좋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나와 실랑이를 벌이는 그 시간도 자식내외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게 아닐까?
아이들이 있으면 가족이 모였을 때 더 생기가 넘친다.아이들 덕에 웃을 일이 많아진다. 케이크에 초를 불고 맛있는 것을 먹는 별 거 아닌 일상도 기쁘게 느껴지게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생신 선물을 따로 준비했다. 유치원 때야 색종이로 접은 하트, 얼굴이 그려진 카드정도였는데 친구생일 파티에 다녀오더니 선물이 없으면 서운하다고 했다.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그곳, 천 원이면 웬만한 건 다 가질 수 있고 오천이면서 세상도 얻을 것 같은 곳은 생신선물 준비에 없으면 안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산 선물 목록을 대략 떠올려보자면 립밤, 꽃향기 나는 핸드크림, 물빠짐이 좋은 수영가방, 손거울, 양말, 장갑, 티비볼때 안고 보라고 인형쿠션까지 다양하다. 죽은 화분도 살려내는 금손 고여사 님을 위해서 모종꽃삽을 사서 포장해온 둘째 때문에 웃음바다가 된 적도 있다.
비록 천 원, 이천 원에 큰 쓸모도 없는 선물이지만 곱게 포장을 해서 카드를 쓴다. 카드에는 꼭 이런 말이 쓰여있다.
선물이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시면 좋겠어요.
티브이장아래 서랍에 쓰지 않고 곱게 들어있는 모종꽃삽을 볼 때마다 왜 쓰지 않냐고 아이들은 궁금해한다. 선물이 무엇이든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조건 마음에 드실 거라는 걸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는 이름을 처음 안겨준 아기들이 벌써 이만큼 자라 나를 위해 편지를 쓰고 선물을 골라서 찾아온다면 어떤 마음일까 상상해 본다.
할머니의 생신 2025년 6월 8일
오늘은 할머니의 생신이다. 그래서 아침 12시 12분에 집을 나섰다. 할머니 집에 들렀다가 식당에 갔다. 연잎밥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연잎밥집에 줄이 서 있는 거다. 엄마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우리 앞에 3팀이나 있었다. 언니는 배가 고프다고 하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엄마가 여쭤보고 새로 생긴 초밥집에 가기로 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는지 추웠다. 초밥을 다 먹고 할머니집에 가서 케이크도 먹고 생일선물도 드렸다. 티브이도 게임도 실컷 하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집에 노는 내내 꿀꿀꿀 울울잠도 잤다. 할머니는 행복하셨을까?
할머니는 행복하셨을까?라고 끝마친 일기에 궁금해서 아이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행복하셨을 것 같아?
응. 선물도 많이 받고 맛있는 것도 먹었잖아.
선물과 맛있는 것보다 우리와 함께했으니 행복하셨을 거다. 어머님 말씀처럼 매년 돌아오는 생일은 대수가 아닌데 함께 먹고 티브이 앞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함께 보낸 게 대단한 것이다. 가족에게 큰 일은 그런 시간을 많이 쌓아가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