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마당 밟고 싶다.
프롤로그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
아버지가 병환으로 고향집을 비우신 지 벌써 칠 개월 지나가 고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 믿었지요.
“곧 나아지시겠지”, “조금만 지나면 다시 웃으며 마당에 서 계시겠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시골집 마당에 서면, 바람이 스치고 낙엽이 살랑이는 모습 속에서
아버지의 손길과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느낍니다.
겨울날 베란다 창가에 남겨진 아버지의 하트 모양을 볼 때면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면서도 아련해집니다.
그동안 저는 매주 주말과 휴일마다 시골집을 찾았습니다.
마당을 다듬고, 마사토를 깔고, 잡초를 뽑으며 다래넝쿨을 손질했습니다.
겉으로는 보기엔 조용한 일상이었지만, 그 안에는 말할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과 묵직한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께서 마당에 깔아 두셨던 비닐을 걷어냈습니다.
그 아래에는 다져지지 않은 고르지 못한 흙이 있었고,
저는 그 땅을 다시 고르고 평평하게 다져 마사토를 깔았습니다.
삽질을 하고 흙을 옮기며 어느새 6시간이 훌쩍 지나갔지요.
손은 거칠어지고, 손톱 사이에 흙이 깊숙이 파고들었고,
무릎은 저릿저릿했고, 저녁에는 온몸에 열이 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고된 노동이 결코 싫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마다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일을 끝까지 마쳐야만 마음이 놓이셨고,
꼼꼼히 뒷정리까지 하시곤 했지요.
그 모습을 보며 한때는 답답하게 여겼던 제가
이제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버지를 꼭 닮아 있었던 거지요.
그 모습을 본 소연이는 “엄마, 이제 그만하세요. 너무 힘들어요.”
하며 냉녹차를 정성스럽게 타서 내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그 차가운 유리잔을 잡는 순간,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마사토 작업을 마친 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던 빵빵이가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킁킁거리며 마당 곳곳을 살피는 모습이 마치
“잘 깔았는지 내가 직접 확인할게”라는 듯했지요.
그 장면을 보니 아버지께서 마루에 누워 빵빵이를 팔베개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빵빵이, 할아버지 옆에 있어야지” 하시던 다정한 목소리가
아직도 마음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요즘 빵빵이는 종종 마당 끝에 앉아 조용히 “응응, 끙끙” 소리를 냅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빵빵이도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는 거겠지요.
이 모든 순간들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우리 가족을 묶어 주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부재해도 가족의 마음은 굳건히 이어져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그 마당을 지키며, 작은 변화 속에서 아버지의 온기를 느낍니다.
며칠 전, 마당 다래나무 위에 멧비둘기 한 마리가 찾아왔습니다.
처음엔 잠시 머무는 줄 알았지만, 그 새는 둥지를 틀고 알을 품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본 후 아버지께 전했지요.
“내 평생 그런 건 처음 본다.”
아버지의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놀라움과 감탄,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멧비둘기는 평화와 희망의 상징입니다.
사람 사는 집에 찾아와 둥지를 트는 건 복된 기운이 깃든 징조라 옛사람들은 믿었지요.
저는 그 믿음을 굳게 지니고 싶습니다.
그 새는 단순한 새가 아니라 우리 가족과 아버지께
조용한 기적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러 온 존재라고 믿습니다.
다래나무 위에서 알을 품는 그 모습을 보며,
아버지의 삶과 마음이 겹쳐졌습니다.
말없이 견디고, 고통 속에서도 가족을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굳은 의지와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제 그 새처럼 아버지의 회복을 믿고 마음속에 조심스레 품겠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괜찮습니다.
다시 아버지께서 마당을 걸으시고,
다래나무 아래서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웃으시는 날을
반드시 맞이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날이 오면, 이 멧비둘기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 조용한 날갯짓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남긴
소중한 선물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하며 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어렴풋이 아버지의 미소가 떠오릅니다.
별빛은 차갑지만, 마음속에 담긴 아버지의 사랑은 따뜻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사랑이 저를 지탱하게 해 줍니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그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듣고,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께 전할 말들을 되새깁니다.
언젠가 다시 함께 그 의자에 앉아,
웃으며 이야기할 그날을 기다립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옵니다.
힘들고 지친 날, 문득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이 그립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그 깊은 사랑이 오늘도 제 마음을 감싸줍니다.
아버지, 저희 가족은 서로를 믿고, 서로를 위하며
이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며
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이 편지가 아버지께 닿기를,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 사랑과 희망 속에서 조금 더 힘을 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언제나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막내딸 순옥이가.
에필로그
**응모작을 병상에 계신 아버지께 큰 글씨로 프린트해 먼저 보여드렸습니다.
콧줄을 끼신 채, 하루 세 번 겨우 뉴케어로 버티고 계신 아버지께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읽으셨습니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한 문장에 오래 머무르시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좋다'
'잘 썼다'
'고맙다'
아버지가 울컥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건네신 세 단어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사랑과 위로와 응원이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그 순간의 떨림은 내 가슴에 깊이 새겨져, 지금도 글을 쓸 때마다 나를 지탱해 주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이 글은 제 가족 이야기이자, 아버지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색칠한 희망의 빛
아버지는 평생 깔끔한 성격으로 살아오셨습니다.
무엇 하나 비뚤어지거나 흐트러지는 걸 그냥 두지 않으셨지요. 집안의 농기계나 연장, 서랍 속 서류, 작은 라이터나 담배까지도 늘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논두렁을 손보실 때도 각지게 다듬어 잡초 하나 없이 반듯하게 만들곤 하셨습니다. 그런 정갈함은 일상이자 아버지의 성품이었습니다.
그림 색칠공부를 하실 때에도 그 모습은 드러났습니다.
색 하나 번지지 않게 칸마다 정성스레 채워 넣으시며,
비어 있는 곳 없이 완벽하게 마무리하시는 모습에서 예전 농사일을 하실 때의 꼼꼼한 손길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아버지는 여든여덟의 중증 환자로,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그 손끝에 남은 습관과 마음은 여전합니다.
아버지가 색칠한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작은 붓질 하나에도 삶의 시간과 깊은 마음이 담겨 있어, 마치 희망과 의지를 다시 그려내고 계신 듯 느껴집니다.
작은 색들이 모여 큰 빛을 이루듯, 그 그림 속에는 여전히 단단하고도 따뜻한 아버지의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