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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누이 03화

오누이와 고향, 햇살 속의 추억

사계절 속 오누이의 성장 이야기

by 최순옥
프롤로그

어릴 적 오빠와 나는 고향의 햇살 속에서 늘 함께였다.

누구에게나 밝게 인사하며 모범을 보이던 오빠, 장난과 모험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주던 순간들.

그 기억들은 지금도 마음속에서 따뜻하게 빛나며, 내 삶의 길목마다 조용한 힘이 되어준다.

이 글은 오누이와 고향, 그리고 햇살 속의 추억을 담은 이야기다.

임진강변에서 만난 노란 금궤국 그리고 귀여운 고양이 야옹~
본문

내 오빠는 어려서부터 언제나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던 아이였다.

학교에서도, 골목길에서도, 누구를 만나든 정중했고, 작은 일에도 책임감이 강했다.

나는 그런 오빠를 바라보며, 단순히 형제 이상의 배움과 안전을 느꼈다.


특히 8살 무렵, 연천 군사지역 부대에서 처음 뵌 군인 간부에게도 오빠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러나 그분은 술기운에 장난 삼아 오빠 뺨을 때렸다.

오빠 눈에는 순간 눈물이 고였지만 울지 않았다.

늦은 저녁 부모님이 돌아오셨을 때, 오빠의 볼이 붉게 부어오른 것을 보시고 이유를 물으셨다.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빛이 달라지고 크게 화를 내셨지만, 엄마가 뜨겁게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진정시키셨다.

오빠는 끝내 말을 아꼈고, 내게도 “부모님 속상하시니 절대 말하지 말라”며 입단속을 했다.


그날의 침묵 속에서 나는 오빠가 단순히 다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슬픔과 아픔까지 꾹 삼켜내는 강인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우리 고향집에는 대령 부부가 세 들어 살았다.

대령 부인은 엄마를 무척 따르셨고, 나는 그분을 자연스레 ‘이모’라 불렀다.

언니와 나는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무렵, 멋쟁이 이모 손에 귀를 뚫고 귀걸이를 하고 등교했다.

작은 금빛 장식이 햇살을 받으면 반짝였고, 바람이 불 때마다 설렘이 일렁였다.

조회 시간, 교장 선생님은 “꼬뚤이도 달라!” 하시며 우리에게 규칙을 지키라 하셨다.

긴장과 두근거림 속 발걸음은 가을볕에 반짝이는 낙엽처럼 떨리고 빛났다.


고향 마당에는 가을볕이 나지막이 내려앉아, 마른풀과 흙냄새가 은은하게 섞였다.

대문 앞 사과나무에는 붉게 익은 열매가 매달렸고, 바람이 불면 낙엽과 작은 열매가 바스락 소리를 냈다.

마당 한편 볕집에는 볏단이 차곡차곡 쌓였고, 풍로의 바람개비는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 속에서 오빠의 웃음은 햇살처럼 마당 전체를 환하게 밝혔다.


서울에서 온 이모는 시골살이에 서툴렀다.

곤로 사용법도 익숙지 않아 석유를 흘리기 일쑤였고, 아궁이에 왕겨를 넣어도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추억속의 풍로-바람불며 붉꽃을 선물한다.

급히 석유를 붓는 순간, 확 하고 불꽃이 치솟았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살짝 그을린 채 놀란 이모는 엄마 품에 안겨 울었다.

뜨거운 연기와 타는 냄새, 순간의 놀람은 두려움이었지만, 어린 우리에게는 아찔한 모험이었다.


여름이면 임진강변으로 나가 물놀이를 했다.

맑고 투명한 물 위로 햇살이 반짝였고, 풀과 흙냄새가 뒤섞인 바람이 시원하게 스며들었다.

나는 물살에 떠내려갈 뻔했지만, 재빠르게 오빠가 손을 잡아주었다.

어릴적 추억 임진강변에서 개복숭아 게임을 하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나는 물 냄새, 오빠 손의 따뜻한 체온, 두근거리던 심장 소리까지 지금도 선명하다.


막내 이모는 오빠보다 4살 많았지만, 친구처럼 또 남매처럼 늘 다정했다.

그날 오빠는 막내 이모와 개복숭아 내기를 했다.

누가 먼저 강물 속 과일을 건져 올리나 장난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깔깔 웃었다.

햇볕에 반짝이는 머리칼, 개울가에 튀는 물방울, 웃음소리는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그날 남긴 발자국과 젖은 손바닥, 장난스레 뛰놀던 모습은 어린 시절 가장 순수하고 따뜻한 풍경이었다.


오누이로서 우리는 늘 함께였다.

오빠의 작은 성취에도 몰래 기뻐했고, 위험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주며 자라났다.

봄이면 마당에 피어나는 민들레와 개나리, 여름이면 매미 소리와 시원한 계곡물,

가을이면 황금빛 논밭 사이를 달리며 바람과 햇살을 온몸으로 느꼈고,

겨울이면 얼어붙은 연못 위에서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에필로그

돌이켜보면, 오누이라는 존재는 단순한 혈연을 넘어 삶의 힘이 되어주는 특별한 존재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우리의 이야기.

어릴 적 오빠의 공손한 인사, 고향집과 마당, 귀걸이 장난, 아궁이 불꽃, 임진강과 개복숭아 장난,

이모와 함께 뛰놀던 햇살 가득한 순간까지,

모든 장면이 지금도 마음속에서 따뜻하게 빛나며 내 삶을 지켜준다.


오빠, 그리고 나. 오누이.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우리의 이야기.

우리 마음속 햇살은 언제나 고향의 마당과 논밭, 강가 사이를 부드럽게 감싸며

삶의 길목마다 조용히 힘이 되어준다.


프롤로그의 마무리

2025년 9월 13일, 엄마 제사를 소소하게 지냈다.

15일 5시에 아버지를 뵙고, 14일에는 엄마가 좋아하셨던 핑크빛 꽃과 배를 들고 산소에 다녀와 보고 드렸다.

어머니가 좋아하신 핑크색 꽃 -미니사과

시골집 오이와 토마토, 논에 익어가는 벼 사진도 보여드리니 아버지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논에는 푸른 잎 사이로 황금빛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바람이 불면 물결처럼 출렁이며 은은한 바람 냄새를 실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벼 이삭 사이로 잠자리들이 날아다니고, 멀리 산자락과 하늘빛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풍경을 이루었다.


아버지는 사진을 바라보며 들녘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풍요를 함께 느끼시는 듯,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미소가 번졌다.

고향집으로 벼는 익어가는 중

아버지는 “수고했다. 엄마는 핑크색을 좋아했지. 꽃 사진 아주 예쁘다”며

“우리 막내딸 최고다” 하시며 엄지 척, 손하트, 양팔 벌려 안아주셨다.


그리고 옆방에 세 들어 살던 대령분을 기억하시냐 여쭸더니, 아버지는 잠시 눈을 감으시더니 “이원복 대령, 내 동갑 친구 같다. 부인 이름은 정순재, 기억난다”며 조용히 미소를 지으셨다.

대령은 아주 높은 간부였지만 늘 겸손했고, 부인 역시 엄마를 잘 따르며 우리 삼남매를 각별히 아껴주셨다. 덕분에 어린 시절의 집 안에는 늘 따뜻한 정이 흐르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밥상머리에는 소박한 반찬 하나에도 함께 나누는 기쁨이 있었다. 작은 마당에는 아이들의 발자국과 장난 스러

웃음이 가득했고, 어른들은 하루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지탱해 주었다.

그 시절 집 안에는 언제나 따스한 온기와 사람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


막내이모의 안부 소식을 전해드리자, 아버지 얼굴에는 그 시절을 떠올리는 듯 따스한 회색빛 미소가 번졌다. 아버지에게 철부지 같던 막내처제는 자식 같은 존재였고, 그 애틋한 정이 세월을 건너 지금도 아버지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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