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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누이 05화

밤송이 아래, 아버지의 빈자리

밤도둑이 스며든 고향집의 담장 너머

by 최순옥
프롤로그

울타리 너머로 밤이 익어가던 계절, 그 밤송이들은 언제나 아버지의 손길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밤송이속에 밤 한알 정중앙에 스티커 밤처럼 예쁘다

아버지는 밤 하나, 풀 한 포기 허투루 두지 않으셨고, 마치 집과 삶을 지키듯 매일같이 손질을 하셨다. 그 정성 속에서 우리는 계절을 맞이했고, 아버지는 늘 든든한 울타리 같은 분이셨다.


수확의 계절이 오면 아버지는 더없이 분주하셨다. 새벽부터 뒤뜰마당을 쓸고, 낮에는 밤송이를 고르고, 해가 저물면 다시 울타리를 둘러보곤 하셨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니 집은 기둥이 뽑힌 듯 휑했다.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은 나였지만, 그 부재가 얼마나 클지, 아버지는 또 얼마나 이곳을 그리워하실지 생각하면 가슴이 저렸다.


오누이와 어린 시절의 추억

부모님이 결혼해 처음 터를 잡으신 곳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오빠가 5학년 때였다. 새집을 짓는 기념으로 부모님은 밤나무와 대추나무를 비롯한 여러 과실수를 정성껏 심으셨다. 그 나무들은 우리와 함께 자라며 사계절의 추억을 품어주었다. 봄이면 오빠와 함께 꽃을 따다 엄마에게 드리곤 했고, 여름이면 나무 그늘 아래서 숨바꼭질을 하며 깔깔대던 웃음이 가득했다.

가을에는 아버지 곁에서 밤송이를 주워 담던 기억이 선명하고, 겨울이면 가지 사이로 흩날리던 눈발이 우리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그렇게 그 나무들은 단순한 과실수가 아니라, 우리 오누이의 어린 날과 부모님의 사랑을 함께 품은 가족의 나무였다.

고향의 향기- 밤송이, 밤 ,여주, 단호박
본문

작년에도 울타리 너머 들어와 밤을 주워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워가지 말라 하면 욕을 하고, 심지어 밤송이를 던지고 가기도 했다. 24년 전부터 아버지는 밤을 감시하듯 지키셨다.

울타리에 철조망도 치고, CCTV 촬영 안내문까지 코팅해 붙이곤 하셨다. 그만큼 아버지의 삶과 애착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더 기가 막혔다. 대낮에 집 안까지 들어온 아주머니는 불량한 태도로 당당했다. 어디서 왔냐고 묻자, 태연하게 “다른 면에서 왔다. 7년 전부터 여기 들어왔다”라고 대꾸했다. 앞치마에는 커다란 주머니가 세 개나 달려 있었고, 그 속에는 알알이 굵은 밤이 수십 개씩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고향집 담을 넘어 밤을 줍고 달아났다

나는 화를 내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신고해! 불러봐! 불러보라니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잘못한 이는 분명 그녀였는데, 왜 나는 이렇게 무력하게 서 있어야 하는 걸까. 아버지가 계셨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고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소리를 듣자, 분노가 치밀었다. 이제야 알았다. 담을 넘어 들어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구나.


저녁이 다 되도록 뒤뜰마당은 엉망이었다.

쓰레기처럼 흩어진 빈밤송이가 300개 넘게 널려 있었다. 그것을 하나하나 치우다 보니, 발은 가시에 찔려 절뚝거리고 얼굴과 목은 모기에 수십 방이나 물렸다.

아버지가 다듬어놓던 깨끗한 뒤뜰마당은 흔적조차 없었고, 내 솜씨는 그저 허접하게 느껴졌다. 그 광경이 더 서럽게 다가왔다.

밤송이를 주워 담으며 눈물이 쏟아졌다. 가시에 찔린 고통보다 더 아리고 깊은 건, 아버지의 빈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이었다.


오늘 오후, 겨우 3킬로 정도를 줍던 중 누군가 현관문을 두들겼다.

판부리 농토 주인 아주머니께 건네준 밤

나가보니, 일산에 거주하면서 동네 판부리에 농토를 가진 분이었다. 그분은 작년부터 지나다니며 뒤뜰마당 밤이 탐스럽다고 눈여겨보셨다고 했다.

이번에는 추석에 어머니 제사에 올릴 밤을 사러 오신 것이었다.

나는 수확한 3킬로와 음료수를 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고맙다며 내년에 다시 와서 한 말, 8킬로를 사겠다고 약속하셨다.

“좋은 땅에서 자란 밤은 제사상에 올리면 더 빛이 납니다”라는 말에, 괜스레 가슴이 따뜻해졌다.

오전에 담을 넘어와 불량한 태도로 소리치던 아주머니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그분의 포근한 말투와 따뜻한 태도 속에서, 마치 엄마의 얼굴 같은 안도감이 느껴졌다.


에필로그

밤송이를 치우며 손끝에 남은 따가움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빈자리, 그리움,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삶의 무게였다.

수확의 계절이 다가왔지만, 아버지의 손길 없는 집은 낯설고 쓸쓸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후회와 죄책감 속에 살았고, 이제는 아버지를 지켜드리며 또 다른 두려움과 서러움 속에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오전의 서러움과 오후의 따스한 만남은 나에게 다짐이 되었다.

아버지가 지켜온 뒤뜰마당을 이제 내가 지켜야 하고, 아버지가 일구신 삶의 질서를 내가 이어가야 한다는 것. 작은 씨앗 하나도 귀하게 여기던 아버지의 눈빛을 떠올리며, 나 역시 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밤송이 가시에 찔린 작은 통증 속에서,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배우고 있었다. 쓰라리고 서러운 눈물 속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감당하며 내 몫의 삶을 걸어가고 있었다.

고향 수확의 계절이다 수수는 고개를 숙이고 인사로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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