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오누이 07화

1987년 가을, 군복무 중 오빠가 막내에게 띄운 편지

사랑하는 막내 순옥에게

by 최순옥
프롤로그

고향집 마루 끝에서

가끔 고향집 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그 시절 우리가 함께한 날들이 바람결처럼 스쳐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여름이면 매미가 지쳐 울고, 겨울이면 장독대 위에 소복이 눈이 쌓였던 고향집이었다.


그 마루 끝, 밤나무 아래서 우리는 자랐다.

오빠와 언니, 그리고 나.

어머니께 야단을 들으면 오빠와 나는 잘못했다고, 바로 잘하겠다고 빌곤 했다.

하지만 고집 센 언니는 단 한 번도 굽히지 않았다.

“난 잘못한 게 없다” 하며 꿋꿋이 버티다가, 화난 어머니가 언니를 꼬집어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

결국 오빠와 나는 덩달아 더 혼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언니의 고집과 의연함이 어린 우리에게는 든든한 방패였던 것 같다.

장난치다 같이 혼나던 날들,

추운 날에도 웃으며 뛰놀던 마당,

들판에서 감자 캐시던 어머니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

묵묵히 일터로 향하시던 아버지의 굽은 어깨,

그리고 군 복무 중 막내에게 띄운 오빠의 한 통의 편지.

이 글은

그 한 통의 편지를 꺼내어 다시 써본,

내 마음의 기록이었다.


편지 원문

1987년 9월 15일, 막내 순옥이에게

막내 보아라

준섭오빠의 편지 1,2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창문의 커튼이 되었구나.

부모님 모두 안녕하시고 집안에 별일 없겠지?

고향 그리운 큰집에도 할아버지, 큰아버지, 큰어머니 그리고 모두들 안녕하시겠지?

오빠는 순옥이가 염려해 주어 몸 건강히 군 복무에 충실하고 있다.

순옥이 역시 잘 있나 보아라.

글월 속의 한 낱말, 한 낱말들이 이 오빠의 가슴속을 파고들어 힘과 용기를 주었구나.

우리 인간은 고난과 어려움을 맛보며, 그것을 극복해 나가며

즐거움과 삶의 환희를 느껴가며 서서히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가고

사랑이 되어서, 어려움도 그리운 추억으로 남으리라.

하우스 안에서만 살게 된다면, 연약한 한 마리 닭이 되어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지 못할 것이고

지금의 어려움은 내일의 기쁨의 씨앗이다.

어두움이 있으면 밝음이 찾아오고, 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듯이,

이 모든 것이 세상의 윤리요 이치인 듯싶다.

“우리 인간은 뿌리만큼 자란다”라고 하니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노력한 만큼 성과는 돌아온다.

순옥이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준섭오빠의 편지3,, 모두다 잘 될거야.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인이 한 분 되어보려 노력해 보아라.

고향 그리움과 그리운 것은 없다.

내가 태어나서 여태껏 살아온 땅 들에는 곡식이 익어가고

산에는 밤송이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장독대에는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겠지.

버스가 안 들어와 걸어서 학교를 가야 했고,

백여 평이나 되는 밭에 궁핍을 이끌어 심어놓은 콩은 못 먹고 팔아야 했고,

뜨거운 들판에서 일도 해 보았다.

이 모든 것이 그 시절 그 한때에는 힘들고 어려움이었지만

지금은 한 폭의 그림으로 구수한 고향을 색채로 장식했었던 것 같다.

이 군생활이 어렵고 힘들다 하여도

사람의 살아가는 데 있어 인생의 한 단계가 있으며

이다음에 어른이 되어 추억으로서 멋지고 알차게 꽃 피울 군생활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순옥이도 주위의 환경을 그대로 비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안에서 하나하나 이득이 되는 것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슬픔을 기쁨으로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날씨 싸늘한데 감기 조심하고 몸 건강히 잘 있어라.

아버지 어머니 몸 건강하십시오.

순옥아, 형수님께 무안 인사 여쭙고

동생 철화가 군에 갔다면 주소 부탁한다.

경숙이, 규성이 모두 많이 자랐겠구나.


안녕.

1987년 9월 15일

육군 이등병 오빠가


에필로그

대보름날, 잡채와 웃음, 그리고 화투의 기억

그해 대보름날, 동네 집집마다 돌며 맛난 음식을 나누던

날이 생각났다.

대보름 달

잡채, 호박전, 나물, 전병, 그리고 갖가지 반찬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우리는 배불리 먹고 나서, 어른들 틈에서 조용히 화투를 치는 소리를 들으며 웃었던 것 같다.

특히 용환이네 집에는 잡채와 호박전, 전병까지 음식이 정말 다양했다.

우린 아주 신나게 보름 행사를 즐겼다.


그런데 다음날, 용환이네 어머니는 “전쟁”이라며 한바탕 난리를 치셨다.

용환이네 아저씨 생신상을 차려야 하는데, 전날 우리가 음식들을 싹 비워버렸던 것이다.

온 동네가 웃음과 소란으로 가득했던, 잊지 못할 보름이었다.


용환이 아저씨는 늘 나를 예뻐해 주셨다.

동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주머니에서 몰래 초콜릿을 꺼내 주셨던 기억도 난다.

음식을 가리는 나는, 고기 못 먹고, 비린 것도 못 먹는

편식이 심한 깍쟁이였지만, 그런 나를 늘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그날 밤, 화투판에서 흥이 오른 어른들은 고향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이들은 밤나무 아래에서 뛰놀며 밤을 새웠다.

그 소박한 하루가 우리 가족에게는 작은 잔치이자 축제였던 것 같다.

화려한 화투


에필로그 마무리

마당 끝, 밤나무 아래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마당 끝 밤나무 아래의 시간은 아직도 내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그곳에서 오빠는 편지를 썼고, 나는 웃었으며,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우리를 보살피셨던 것 같다.

순희 언니, 준섭오빠의 친구 철화오빠, 큰집조카 경숙이, 규성이… 그 시절 모두가 한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리움은 아직도 밤나무 아래에서 우수수 떨어진다.

추억의 밤수확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