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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누이 09화

가방 속 마음, 솥밥 누룽지, 그리고 가족의 기억

오빠의 낡은 책가방 속 추억

by 최순옥
프롤로그


바쁘지만 따뜻했던 우리 집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농사일로 바쁘셨다.

우리는 어린 오누이였지만,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어 솔방울을 주워다 땔감을 만들거나, 부엌에서 밥을 지었다.

검은 솥냄비에서 나는 연기에 눈물과 콧물이 섞이기도 했지만, 그 순간조차 우리는 서로를 챙기며 하루를 살아갔다.

그 속에서 가족의 사랑과 마음을 배워갔다.

작은 손길 하나, 서로를 챙기는 마음 하나가 우리를 하루하루 단단하게 만들었다.


본문


오빠의 성실함과 솥밥 누룽지. 낡은 가방과 오빠의 배려

그 시절의 고소한 만 누룽지

오빠는 늘 조용하고 성실했다.

중학교에서도 전교 1등, 선생님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낡은 교복 가방 밑이 뚫려 책이 삐져나왔다.

하지만 오빠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엄마가 힘들게 일하시는 걸 알기에 걱정시킬까 봐, 낚싯줄로 구멍을 조심스레 꿰매고 가방을 꼭 끌어안고 학교를 다녔다.

며칠 뒤, 옆집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말했다.

“준섭이 가방 좀 새로 사줘요, 책이 다 튀어나오더라고요.”

엄마는 저녁에 일터에서 돌아오시자 조용히 물으셨다.

“왜 말을 안 했어?”

오빠는 잠시 고개를 숙이다가 말했다.

“엄마 힘드신데, 걱정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다음날, 엄마는 새 가방을 사 오셨다.

오빠는 말없이 받아 들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감사함과 미안함,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랑이 고요히 스며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오빠를 기억한다.

낡은 가방보다 더 반짝이던 마음의 단단함을.


버스와 나이롱 다리

학교를 마치면 우리는 버스를 탔다.

안내 언니는 푸샵을 하며 아이들을 밀어 넣었고, 우리 집은 늘 원당리 마지막 정차였다.

전동리 국민학교 꼬마는 항상 김밥 한 줄을 손에 쥐고 탔다.

고소한 냄새가 차 안을 가득 메웠지만, 옷에 기름 냄새가 배일까 조심스레 한쪽으로 몸을 비켰다.

그래서 꼬마 옆자리는 늘 여유로웠다.

하교 후에는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그 길에는 ‘나이롱 다리’가 있었다.

나이롱다리

북한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차가운 물줄기, 여름이면 오빠, 언니와 함께 물놀이를 하곤 했다.

한 번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갈 뻔했고, 귀로 물이 들어가 오빠가 따뜻한 돌을 대어 물기를 빼주던 기억도 있다.


다리를 건널 땐 언제나 긴장이 흘렀다.

군 초소 옆이라 군인 아저씨들의 시선도 느껴졌고, 무엇보다 다리 아래가 너무 높았다.

난 고소공포증이 심해 난간을 잡고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은주와 현숙이가 양손을 꼭 잡아주었지만, 다리는 후들거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고, 발끝이 불안하게 땅을 찾았다. 그래도 두 사람의 손길에 힘을 얻어 겨우 한 걸음씩 옮겼고,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붙들고 맞은편 땅에 닿았다. 숨을 고르며 뒤돌아보니, 그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격려가 가득했다.

군인 아저씨는 건빵 한 봉지를 건네주셨지만, 마음 한편에는 긴장과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솥밥 누룽지와 가족의 손길

밥이 누룽지로 남으면 오빠는 설탕을 살짝 뿌려 내 입에 넣어주곤 했다.

그 맛은 세상에서 가장 고소하고 달콤했다.

또 부모님이 밥을 푸고 남은 누룽지는 끓여 아버지께 떠드리곤 했다.

그 구수한 숭늉은 지금 먹는 솥밥 누룽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오늘은 추석이다.

콧줄과 소변줄로 겨우 뉴케어만 드시는 아버지께

제가 만든 두부 송편과 누룽지 숭늉을 드리는 것이 소원이다.

떡을 얼마나 좋아하시던 아버지인지,

한 입 드실 때 얼굴에 스치는 작은 미소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바지와 모달 옷을 입으신 아버지께

작은 행복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시골 배추와 무, 열무, 벼, 수수 사진과

정원에 핀 코스모스 흰꽃과 노란 꽃,

달팽이가 파먹은 오이와 상추, 토마토, 콩, 고추 사진도 보여드린다.

배추,열무는 풍년이다.

울타리에 핀 코스모스, 정원에 핀 노란 국화

달팽이가 파먹은 오이와 상추, 토마토, 콩, 고추 사진도 보여드린다.

이 작은 풍경 하나하나가 아버지께 전하고 싶은

마음의 조각이 된다.

우리가 직접 가꾸고 기록한 시골 풍경은

그 어떤 화려한 그림보다도

아버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오늘, 추석날 아버지를 뵙고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사진과 함께 전할 수 있어

마음이 포근하다.


오빠의 귀환과 집안의 작은 잔치

인천으로 고등학교 간 오빠가 집에 올 때면, 엄마는 시루에 떡보를 쪄 인절미를 만들었다.

손수 만든 떡이 사르륵 입안에서 녹으면, 오빠가 오는 날은 집안에 작은 잔치가 되었다.

떡 하나, 한 줌 누룽지, 작은 마음과 손길 속에 가족의 사랑이 가득 담겼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챙기고, 웃고, 때로는 고단함 속에서도 묵묵히 서로를 보듬었다.

가난했지만, 서로의 마음은 늘 부유했다.


원문 준섭오빠의 편지


귀여운 동생 순옥이에게

어두운 날, 별들이 소곤대는 아름다운 밤하늘에

나의 집이 그리워서 이렇게 pen을 들게 되었다.

그동안 잘 있었니?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별일 없이 무고하신 지 궁금하구나.

오빠는 순옥이 덕으로 굉장히 잘 지내고 있단다.

순옥이한테서 여러 번 편지 받아서 답장도 못해주어서 오빠로서 미안하구나.

이제는 오빠가 순옥이한테 자주 기쁜 소식 전해 줄 테니,

순옥이도 오빠한테 집 소식 자주 전해 주기 바란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요즘 추수하시느라 꽤 바쁘실 텐데,

순옥이는 아버님, 어머님 일손 도와드리느라 바쁘겠지.

바쁜 틈에도 순옥이가 공부하길 오빠는 바란다.

집에 가서 순옥이 공부하는 모습 보기 힘들던데

지금은 열심히 하는지 걱정되는구나.

순옥이도 이제는 중2가 되었으니 어느 정도 판단력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1년 후면 고등학교에 갈 텐데,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지 알겠니?

지금부터 틈틈이 열심히 해두면 좋은 고등학교에 충분히 갈 수가 있다.

그리고 책이나 공부하는데 필요한 거 있으면 편지로 연락하면

오빠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게.

순옥이도 이제는 어린 내가 아니니까 알아서 하리라고 믿고

이제 그만 줄일까 한다.

공부 열심히 하길 바라며……

안녕

1984. P. 21

오빠

준섭오빠의 편지
에필로그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마음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눈물과 연기 속에서 함께했던 시간, 달콤하고 구수했던 솥밥 누룽지의 맛,


오빠의 배려와 엄마의 손길, 버스 안 꼬마 김밥, 나이롱 다리에서의 떨림과 두려움, 강에서의 물놀이는

모두 내 마음속에 단단히 남아, 오늘도 나를 지켜주고, 따스하게 감싸준다.


마무리


어린 시절의 부유함과 마음의 등불

가난했지만 부유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

그 소중한 마음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다.

작은 손길과 마음이 모여 만들어낸 하루하루가

오늘의 나를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가끔 그 시절로 돌아가,

솥밥 누룽지의 달콤함과 오빠의 조용한 배려,

엄마의 따스한 손길을 떠올린다.

그 기억들은 마음속 작은 등불이 되어,

내 하루를 밝히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순간순간의 작은 사랑이 모여, 내 삶을 부유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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