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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누이 10화

오누이 10편 후문 | 마치며 남긴 그리움과 사랑

과거와 나 | 왜 나는 늘 그 시절에 머물렀을까?

by 최순옥


프롤로그

살림 밑천과 오빠 학자금

우리 집에서 소를 키우게 된 일은 부모님의 노고와 살림 밑천, 그리고 오빠 학자금을 위해서였다.

오빠 준섭은 언제나 모범생이었고, 공부도 잘했으며, 집안일에도 성실한 효자였다.

부모님께는 자랑이었고, 어린 나에게는 신기하고 또 자랑스러운 존재였다.

그런 준섭오빠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든든했다.


밤나무가 우거진 뒷산, 넓은 뜰, 사랑채와 우물 펌프, 돼지우리와 소·외양간까지 갖춘 집.

마당 한쪽에서 황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눈도 크고 순한 황소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 큰 울림이었다.


햇살이 풀잎에 반짝이는 모습, 바람에 실려 오는 흙과 풀 냄새, 먼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까지,

작은 것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그 집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일상을 시작했다.


9살, 국민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우리는 새집으로 이사해 있었다.

새로 이사온 이층집

이층집 계단을 올라가면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는 듯했다.

이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임진강 강변, 햇살이 물 위에 반짝이는 풍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어린 나는 세상과 나 사이의 작은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높이 올라 바라보는 세상은 조금 다르게 보였고, 그 다름 속에서 나는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본문

어린 시절과 따뜻한 기억

준섭오빠는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마치 나와 똑 닮은 왕눈이 같았다.

그 눈빛은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어린 나를 지켜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내가 7살이던 해, 허벅지 안쪽으로 종기가 났다.

대령 아저씨 부대 의무대를 가야 했지만, 너무 무서워 소리치며 발악했다.

종기가 커서 째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오빠와 엄마 손을 잡고도 도저히 못 가겠다고 울부짖었다.

결국 종기를 째고 나서야 사탕 한 알이 내 손에 안겼다.


그 달콤함이 잠시 두려움을 덮어주었고, 오빠의 따뜻한 손길과 든든한 팔에 안기며 나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발을 쩔뚝거리며 내려오면, 오빠는 늘 나를 업어주곤 했다.

그 든든한 팔과 체온, 어린 마음에 전해지는 준섭오빠의 사랑은 나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위안과 힘이 되었다.


내게 사랑을 주던 바나나를 사주시던 옆집 아주머니는,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뇌종양을 겪으셨다.

수술해도 가망이 없고, 수술하면 온전한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수술 후 1년여 만에 시골집으로 돌아오셔서 건강을 회복하셨다.

수척하셨던 몸은 이제 훨씬 단단하고 건강해 보였으며, 모자와 털모자를 쓰신 모습에서 강인함이 느껴졌다.


나는 아주머니 손을 잡으며 바나나 추억을 떠올렸다.

“아주머니, 내 딸 하자, 수양딸 하자” 하시던 따뜻한 말씀이 지금도 마음속에서 맴돈다.

정말로, 날 사랑으로 예뻐해 주셨다. 그 사랑이 나를 키웠고,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추석 다음 날, 도상 오빠 어머니는 옆집으로 오셨다.

세탁기가 물이 안 빠진다고 하셨지만, 기능을 몰라서이시다.

우리는 천천히 알려드리며 웃음을 나누었다.

빵빵이는 할머니를 향해 짖지 않고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소한 일상 속에도 평화와 행복이 깃들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평화로운 오누이

옆집 아주머니와 도상 오빠 어머니는 내 아버지를 궁금해하셨다.

그리 강건하시던 아버지가 고향집에 오시길 바라셨다.

막내인 내가 집을 관리하고 아버지를 돌보는 것에 대해,

“수고 많다, 고생한다”며 손을 잡아주셨다.

손을 잡을 때 나는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그 따뜻한 손길과 말씀이 내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며, 오래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다.


도상 오빠 어머니를 바라보니, 내 엄마도 건강하게 살아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엄마의 손길, 부드러운 목소리, 작은 걱정과 다정한 눈빛이 그리워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앞의 평온함 속에서도 서글픔이 몰려와,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마당 풍경과 엄마의 웃음소리가 겹쳐 마음을 적셨다.

그리움과 사랑이 뒤섞여, 눈물이 나지만 마음 한편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소연이는 따뜻한 딸이다. 시골 풍경을 좋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다정다감하다.

아버지의 친구, 영태 아버지는 나를 늘 예뻐하시며 “요놈 순옥이”라 부르셨다.

아직도 정정하시어 오토바이와 경운기를 타신다.

소연이를 보면 “엄마를 닮아 참 예쁘다”라고 하신다.

영태 아버지는 우리가 이사오기 전에 살던 집 앞에 사셨으며,

아버지의 강건함과 고향 땅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아버지가 고향 땅을 밟길 바란다, 그러면 순옥이도 멀지 않다” 하시던 말씀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딸 소연이와 빵빵이는 도상 오빠 어머니 집에 가서 세탁기 기능을 알려드리고,

수박 설탕에 절인 것과 포도를 얻어먹었다.

도상 오빠 어머니는 키가 150도 채 되지 않으시지만 총명하시고, 소연이를 정말 예쁘다고 사랑스러워해 주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느꼈다.

마루 끝,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서로의 속마음을 나누던 기억,

어린 시절 마당에서 뛰놀던 기억은 지금도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쉰다.

그 모든 순간이 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준섭오빠와의 따뜻했던 기억이 남아,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 준다.

오빠 그리고 막내


에필로그

가을 햇살 속의 기억

가을 햇살이 집 마당에 스며드는 오후, 낙엽들이 바람에 살짝 흔들린다.

나는 어린 시절 마당에서 뛰놀던 준섭오빠와의 기억, 부모님의 따뜻한 손길, 옆집 아주머니의 사랑을 떠올린다.

그 기억들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맞닿아 있는 순간이 된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작은 일상 속에도 감사와 행복을 느끼게 만든다.


소연이와 빵빵이, 그리고 마주한 사람들의 다정함과 따뜻함이 마음을 한껏 부드럽게 만든다.

“가족이 있어 참 좋다.”

그 단순한 진리가, 오늘 하루,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날에도 내 마음을 오래도록 포근하게 감싼다.


낙엽 하나가 바람에 흩날릴 때, 어린 시절 우리 오누이의 웃음소리가 마음속에서 은은히 울려 퍼진다.

그리움과 사랑, 기억과 현재가 겹쳐져,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엄마의 빈자리와 그리움이 스며든 서글픔 속에서도, 가족과 이웃의 온기가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마무리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과 이웃의 다정함, 그리고 준섭오빠의 든든한 사랑은

오늘의 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된다.

순수하고 따뜻했던 순간들이 마음속 깊이 쌓여,

작은 일상 속에서도 감사와 행복을 느끼게 한다.

그 기억들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삶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다.


힘든 날에도, 서글픈 날에도, 어린 시절의 마당과 오빠의 눈빛이 나를 위로한다.

마음 한편에 자리한 사랑과 온기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부드럽게 감싸주며,

앞으로 걸어갈 날들을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오빠 편지

오빠 편지 원문

오빠의 편지 첫장
오빠의 편지 둘째장


오누이 열 편을 마치며

또 이어갈지 모르지만,

이 글로 오누이 10편을 마무리합니다.

왜 나는 늘 과거에 머물렀을까.

왜 그렇게 술술 써졌을까.

글을 쓰는 동안, 나 자신에게도 묻고 싶었습니다.


글의 주제를 건네준 건

오빠와 언니, 그리고 무엇보다

막내를 사랑하고 아껴주던 준섭오빠였습니다.


오빠,

막내 글… 잘 썼지?

당신이 들려준 이야기를 따라가며

잊지 못한 시간들을 천천히 꺼내놓았습니다.

그리움은 여전히 남지만,

이제는 그 속에서 따뜻한 숨결이 느껴집니다.


이 연재를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

마음을 보듬어주신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공감과 댓글 한 줄 한 줄이

제게 큰 위로이자 용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글을 덮으며,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아픈 그리움이 아니라,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로,

사랑으로 여전히 이어진 마음으로.

언젠가 또다시 용기가 찾아온다면

그때는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조용히, 그러나 더 깊이 써보려 합니다.


가을 햇살 아래,

그리움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따뜻한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며.


오빠의 마음

막내야,

글 잘 읽었다.

정말 잘 썼다, 우리 막내.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하지만 솔직하게 글로 담아내다니, 나는 참 기특하고 자랑스럽구나.


어린 시절 너를 지켜주고,

조그마한 두려움도 함께 견뎌주었던 일들이

너에게 작은 힘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니,

오빠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진다.


막내야,

너는 늘 잘하고 있어.

사랑을 느끼고, 감사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살피는 우리 막내를 보며

오빠는 늘 흐뭇하고 안심했단다.


언젠가 또 글을 쓰게 될 때,

그때도 오빠는 여전히 네 곁에서

응원하고 지켜보는 마음일 거야.

그리움과 사랑이 글 속에서 이어지도록,

오빠 마음을 함께 보내줄게.

사랑한다, 내 막내야.

언제나 네 곁에서, 조용히.



바람결에 흩날리는 추억 속에서, 나는 조용히 오늘을 걷는다.

최순옥 작가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추억 속에서, 나는 여전히 걷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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