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향수
프롤로그
나를 왜, 자꾸 그때로 데려다 놓는 걸까
나는 왜 자꾸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겨우 여섯, 일곱 살쯤 되었을 그 무렵.
겨울이면 입김 서린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눈 내리는 골목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송이를 셌다.
여름이면 땀에 젖은 머리칼을 털어내며 마당을 뛰놀다 밤나무 그늘 아래서 숨을 고르곤 했다.
그 시절은 그저 지나간 시간이었을 텐데, 나는 아직도 마음 한켠에서 그때의 공기와 소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조용히, 자꾸만 그 시절로 돌아가 앉는다.
왜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사랑’이 있었고,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인 것 같다.
나를 감싸주던 따뜻한 손길과, 내가 서툴러도 끝까지 기다려주던 시선들.
그런 기억들이 지금도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간다.
본문
대령이모의 겨울, 그리고 찝차의 떨림
우리 집 옆에는 대령 부부가 살았다. 아이 없이 지내시던 두 분은 우리 삼남매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고, 어린 나에게는 친척보다 더 살가운 존재였다.
특히 대령이모는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
어릴 적부터 고기를 먹지 못했던 나는 생선 특유의 향기에도 속이 울렁거릴 만큼 힘들어했는데, 이모는 언제나 그런 나를 위해 따로 과일을 챙겨주셨다.
그 시절 참 귀했던 바나나와 망고, 김밥에서 고기를 뺀 ‘나만의 주먹밥’.
그 따뜻한 배려는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대령아저씨는 군인이셨다.
한 번은 우리 삼남매를 군부대로 데려가 찝차 태워주셨는데, 아이였던 나는 타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신이 났다.
그렇게 늘 곁을 지켜주시던 두 분은 아저씨의 발령으로 파주 곰시로 떠나게 되었다. 그날따라 마당의 바람은 더 조용했고, 밤나무 그림자는 한층 길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방학이면 이모는 우리를 파주로 초대해 주셨다.
여전히 고기를 못 먹는 나를 위해 과일과 주먹밥을 챙겨주시던 손길은 변함이 없었다.
한겨울, 곰시 저수지에서 스케이트를 탔던 날이 있다.
얼음이 ‘우지직’ 갈라지는 소리에 겁을 먹은 나는, 끝내 얼음 위로 들어가지 못한 채 가장자리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오빠는 저수지를 날쌔게 누비고, 언니도 능숙하게 빙판을 달렸다.
나는 그저 박수만 치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런 나를 오빠는 말없이 썰매에 태워, 조심스럽게 얼음 위를 밀고 끌어주었다.
“안 돼! 무서워!” 소리치던 나에게
“괜찮아. 여긴 단단해.” 하며 다독여주던 오빠.
그 손길, 그 눈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오빠의 편지 (1988년 6월 7일)
그 편지를 다시 꺼내 읽을 때면, 나는 그 시절의 냄새와 소리를 다시 느낀다.
그 속에는 한 가정의 아들이자 오빠로서의 책임감과 따뜻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순옥 동생에게
유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장미꽃이 곱게 피었구나.
장마철이라 비가 잦았는지 모르겠다. 순옥아, 그간 잘 지냈니?
아버님 어머님은 안녕하시고, 모내기는 잘 마치셨으리라 본다.
이 오빠는 오늘도 조국과 가족을 위해 맡은 직무에 충실하고 있다.
햇볕이 많이 더워졌구나. 근무를 서다 보면 등에 땀이 맺히고, 모기들이 달라붙는다.
옥이도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겠지?
하지만 지금의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하지 말아라.
내일의 열매를 맺기 위한 당연한 수고일 뿐이니.
순옥아, 열심히 하거라.
그리고 어머님을 떠올려 보아라.
한 알의 곡식을 거두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얼마나 수고가 많으신가를.
이 오빠도 열심히 해서 멋진 제대날을 맞이할 테니,
너도 포기하지 말고 정진하거라. 옥이의 길에는 오직 전진뿐이다.
기쁜 소식!
이 오빠가 태권도 1단을 획득했다.
열심히 한 덕이지.
그리고 오빠에게 편지를 보낸다던 여학생, 소식은 없구나? 궁금하다.
옥아, 몸 건강히 지내고, 오빠 없는 동안 아버님 어머님께 걱정 끼치지 말도록 하여라.
1988년 6월 7일
— 오빠 뛰움
에필로그
밤나무 아래, 여전히 그 자리
시간이 흘러 대령이모와 아저씨에게도 딸아이가 생겼다.
앙증맞은 볼을 손가락으로 살짝 집으며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쯤이면 그 아이도 마흔이 훌쩍 넘었겠지.
어쩌면 아이 엄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 쉰다섯.
그때의 대령이모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 시절의 따뜻한 기억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대령이모는 안녕하실까.
문득문득, 아니 요즘은 자주… 보고 싶다.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다.
나는 왜 이토록 그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그 어린 날의 장면들을 줄줄이 써 내려가는 걸까.
잊었다고 생각한 풍경들이 펜을 들면 스르르 피어나, 한 편의 습작처럼 나와 함께 앉는다.
이건 단지 ‘기억’일까,
아니면 내 안에 아직도 살아 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조용히 꺼내어 보여주는 ‘삶의 기록’일까.
가끔 나조차도 궁금해진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시절을 떠올리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는 것.
펜을 들면 나는 어느새 그 마당 끝에 앉아 있고,
밤나무 그늘 아래 조그마한 내가, 조용히 웃고 있다.
에필로그 마무리
다시, 그때 그 마음으로
나는 지금 쉰다섯.
하지만 문득문득, 그 시절의 작은 순옥이가 밤나무 아래 앉아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기억은 흐려질 수 있어도
그때 받았던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대령이모를, 그리고 그 시절을 찾고 있다.
그 시절이 너무 그립고,
그 시절의 나를,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오늘도 또 한 줄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한걸음 물러서서,
이 모든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흔적임을 느낀다.
아마도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향해 조용히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그때… 정말 행복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