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빈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을까?
프롤로그 — 어머니의 빈자리, 그리고 가을빛
어머니가 떠나신 지도 오래지만, 그 부재는 여전히 내 하루 곳곳에 머물러 있다.
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사진 앞에 앉는다.
“어머님…” 부르다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럴 때면 창가로 스며드는 가을빛이 유난히 눈부시게 부서진다.
빛 속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손길 같은 온기가 있다.
먼지 하나, 작은 낙엽 하나에도 어머니가 스며 있는 듯 느껴진다.
가을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흔들릴 때마다,
마치 어머니께서 여전히 이 공간을 지켜보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빛과 바람이 내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주는 듯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슬픔이 옅어진다고 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부재는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를 보내드리지 못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그 빈자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어머니를 찾았다.
본문 — 큰아버지의 발걸음과 아버지의 두 번째 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뒤, 집은 늘 정적에 잠겨 있었다.
식탁 위의 찻잔, 부엌의 수건, 화분 옆 작은 의자 하나까지
모든 것이 어머니의 흔적이었다.
그 흔적이 사라질까 두려워 손끝 하나로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질수록 큰아버지의 방문은 잦아졌다.
문턱을 넘으며 늘 하시던 말,
“설득하러 왔다.”
그 말에 담긴 정이 고마우면서도, 어딘가 불편했다.
큰아버지의 손이 문을 잡는 순간, 나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왜 마음이 이리도 요동칠까.’
어느 날, 큰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때 나는 괜히 잠을 자는 척도 했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내 방 침대 옆에 앉아 조용히 혼잣말을 하셨다.
그 말들은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외로움과 그리움이 섞인 음성이 집 안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창밖의 낙엽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어울려,
그 말들은 집 안 구석구석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어느 날 저녁, 큰아버지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씀하셨다.
“순옥아, 네 아버지 외로우시다. 너무 막지 마라.
네가 이제 일도 하고 있으니, 아버지도 마음 붙일 데가 있어야지.”
그 말이 내 귓가에 닿는 순간, 마음이 서늘하게 식었다.
나는 이미 장거리를 출퇴근하며 하루 3시간, 100킬로미터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힘들게 출퇴근하는 내 삶을 아버지께서 모르실 리 없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새로운 삶을 조용히 시작하셨다.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어머니의 방을 바라봤다.
그 안에는 아직도 어머니의 냄새가, 목소리가, 체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방에 누군가 낯선 사람의 그림자가 스며드는 상상만
으로도 가슴이 꽉 막혔다.
아버지는 평생 큰아버지를 부모님처럼 모셨다.
그분이 하신 말씀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의 눈빛이 조금 달라진 걸 나는 알아챘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고,
가끔 외출 준비를 하는 손길이 유난히 조심스러워졌다.
옷을 다림질할 때, 모자를 고쳐 쓸 때,
그 손끝 하나하나가 어머니를 떠올리는 듯 조심스러웠다.
가을 끝 무렵, 아버지는 새 옷을 꺼내 입으셨다.
말끔하게 다림질된 셔츠, 빗질한 머리, 단정히 고쳐 쓴 모자.
“아버지, 어디 가세요?”
“평택 좀 다녀오련다.”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뒷모습만 바라봤다.
마치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그 후로 아버지는 종종 외출을 하셨다.
평택으로, 남대문 시장으로,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그리고 어느 날, 뜻밖의 이름을 들었다.
우정자 님.
아버지의 젊은 시절, 첫사랑이었다는 분.
그 이름이 내 귀에 닿는 순간, 세상이 잠시 멈췄다.
어머니의 사진이 걸린 거실이 낯설게 느껴졌고,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엄마가 아직 이렇게 우리 곁에 있는데, 아버지는 왜 그렇게 쉽게 마음을 옮기셨을까.”
그날 밤, 나는 혼자 울었다.
아버지의 외로움을 이해하면서도, 그 외로움이 나를 밀어내는 듯해 아팠다.
나는 여전히 엄마의 방에 머물러 있었고,
아버지는 이미 다른 계절로 걸어가고 계셨다.
밤마다 어머니의 사진 앞에 앉아 속삭였다.
“엄마, 아버지 미워요. 그런데 또 불쌍해요.”
사진 속 어머니는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 미소가 나를 더 울게 했다.
어머니라면 아마 이렇게 말씀하셨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그 사람도 외롭지 않게 해 드려라.”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건 내게 너무 생생한 상처였다.
아버지는 점점 활기를 되찾았다.
평택에서, 남대문 시장에서 새 옷을 사 오시고
그 옷은 늘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나는 그 옷을 볼 때마다 가슴이 쓰렸다.
‘왜 숨기세요, 아버지. 왜 몰래 하세요.’
묻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버지의 만남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어느 날, 혼잣말처럼 내뱉으셨다.
“괜히 나가면 돈만 쓰지. 이제 됐다.”
그 말은 단순한 절약의 말이 아니었다.
마음을 덮는 듯한, 조용한 이별의 문장이었다.
에필로그 — 사랑의 모양은 모두 다르다
어느 날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니, 의자 위에 낡은 모자가 걸려 있었다.
그 모자는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사주신 것이었다.
한때 아버지가 우정자 님과 나들이를 나갈 때 쓰던 모자이기도 했다.
이제는 다시 그 자리에 조용히 걸려 있다.
그 모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마다 사랑의 모양이 다르고, 그리움의 방식이 다르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를 가슴 깊이 그리워하지만,
아버지는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그리움을 견디고 계셨을 것이다.
사랑은 누군가를 잊는 일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기억하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마무리 — 이해의 자리에서
어머니의 영정 앞에 향을 피우며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아버지가 요즘은 조금 웃어요.”
그 순간 창문이 흔들리고, 부드러운 가을바람이 내 어깨를 스쳤다.
그 바람은 마치 어머니의 손길 같았다.
“이제 됐다. 그 아이도 외로웠지.”
그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한 용서는 아직 멀지만, 이해는 시작되었다.
사랑은 결국, 남은 이들이 다시 살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이름이었다.
다음 편 예고
2010년 이른 봄, 삼성병원의 흰 복도에서 시작된 이야기.
기침 한 번으로 흔들린 계절이,
어머니의 마지막 겨울이 되었던 그날로 — 다시 돌아간다.
이번 편에서는 병원의 흰 복도, 의사의 발걸음,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흐르던 어머니의 숨결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