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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별과 희망

천천히 되살아나는 하루의 온도

by 최순옥
요양원으로의 결정 (2024.8.13) 마음의 무게를 함께 견디다

그날 아버지는 의자에 몸을 맡기고 창밖을 오래 바라보고 계셨다.

방 안 공기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 묵직함은 우리 가족의 마음 위에도 내려앉았다.

요양원으로 가는 길, 아버지는 침묵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개 하나에 담긴 의미는 단순한 동의가 아니었다.

“너희가 믿는 길이라면 나도 믿겠다.”

아버지의 마음이 그 안에 있었다.

나는 그 믿음을 받는 것이 고맙고, 동시에 미안했다.

마음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졌지만, 깊이는 더해졌다.


요양원에서의 작은 시작
낯섦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입실 첫날, 아버지는 방과 침대, 창밖 풍경까지 모든 것이 낯설어 잠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곁에는 홍가 아저씨가 있었다.

“아버지, 천천히 시작해 보아요.”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불안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짧은 산책, 가볍게 손을 움직이는 연습, 창밖 나무를 바라보는 일.

아버지는 큰 변화보다 작은 움직임에서 회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손녀의 영상통화도 매일 이어졌다.

“할아버지, 오늘도 잘하셨어요.”

그 한마디가 하루를 붙드는 힘이 되었다.

할아버지 오늘도 잘 하셨어요


소변줄 제거 (2024.10.13) 몸이 기억하는 첫 자유

소변줄이 제거되는 순간, 숨조차 조심스러웠다.

그 줄 하나가 지난 시간을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 더 편해지실 겁니다.”

의사의 말이 떨어지자 아버지 얼굴에 작은 미소가 스며들었다.

그 미소는 오랜 시간 잃었던 자유를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콧줄 제거 (2024.11.1)
다시 들이쉰 계절의 공기

11월 첫날, 아버지는 오랜만에 스스로 숨을 들이쉬었다.

콧줄 없이 들이마신 공기는 선명했고,

아버지 볼에 오랜만에 혈색이 돌아왔다.


말은 여전히 적었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났고

표정과 몸짓도 천천히 되살아났다.

소원을 빌어봐.


작은 회복의 기적 — 되살아나는 하루의 리듬

줄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아버지는 조금씩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첫 숟가락의 죽, 한 걸음씩 걷는 연습, 짧은 복도 산책.

아버지 발걸음 소리는 작지만 또렷하게 울렸다.

그 소리는 가족 모두에게 희망의 박동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 피로는 회복이 찾아오는 몸의 언어였다.

변화의 속도를 함께 지켜보며 우리는 하루하루를 쌓아갔다.

작지만 단단한 기적들이 하루를 만들었다.


에필로그 — 흔들려도 손을 놓지 않는 마음

2024년, 우리는 마음을 편히 내려놓지 못했다.

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는 시간, 하루는 길고 불안했다.

하지만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여린 미소,

아들의 묵묵한 손길,

손녀의 따뜻한 말,

그리고 텃밭에서 살아남은 상추 몇 포기 같은

작은 생명의 징후들 덕분이었다.

삶은 완벽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흔들리고 넘어져도,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마음이

우리 하루를 지탱했다.


작가의 말

아버지를 돌보는 시간은 ‘지킴’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여정이었다.

줄 하나가 빠질 때마다,

첫걸음, 첫 숟가락, 작은 산책 하나까지

모든 순간이 삶의 기적임을 알았다.

아버지와 나의 희망


사람을 붙잡아 주는 것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이번 해를 지나며 다시 깨달았다.


작은 빛 하나에도 마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오늘의 작은 용기는 내일의 별이 된다.


예고편 — 빛이 스며드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다음 이야기

요양원 생활이 조금씩 자리 잡으며

아버지의 하루에는 새로운 변화가 생기고 있다.


아침 햇살이 발등에 닿는 온도를 느끼며

아버지는 오늘의 몸 상태를 조용히 가늠한다.

한 숟가락 더 먹는 용기,

조금 더 곧게 일어서는 자세,

산책 중 멀리 있는 나무를 한 번 더 바라보는 여유.


다음 편에서는

아버지가 회복이라는 길을 스스로 걷기 시작하는 순간들,

잠시 주저앉지만 다시 일어나는 마음의 온도를

천천히 담아낼 예정이다.


가을빛이 스며든 창가에서 시작된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29편에서 계속될 이야기다.

희망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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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