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과의 강릉 이야기
프롤로그 — 아버지가 허락해 주신 ‘쉼’
병원 침대에 누운 아버지는 내 손을 천천히 잡고 말씀하셨다.
“순옥아, 다녀와라. 너는… 좀 쉬어야 한다.”
그 말은 마음 깊은 곳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내가 얼마나 버티며 살아왔는지, 어느 지점에서 마음이 헤어져 있었는지… 말 한마디 없이도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며칠 전 BYC 수면잠옷을 사다 드렸을 때, 아버지는 천을 손끝으로 오래 만지며
“아주 좋다… 참 부드럽다.” 하고 환하게 웃으셨다. 그 미소가 지금도 선명하다.
그리고 이번엔, 여행비라며 손에 살며시 쥐여주신 그 마음.
단순히 “돈을 써라”가 아니라,
“너도 네 삶을 챙겨라. 너도 숨 좀 쉬어라.”
라는 깊은 허락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고스란히 품고, 조용히 겨울바다로 떠나보기로 했다.
함께 갈 친구들은 늘 내 옆에서 온기를 나누던 사람들.
다정하고 은은한 향기를 지닌 향, 씩씩하고 속 깊은 경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떤 계절도 부드러워진다.
강릉에서 만난 겨울의 온기와 친구들의 마음
본문 — 강릉에서 만난 겨울의 온기와 친구들의 마음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겨울바람이 먼저 얼굴을 스쳤다.
차갑지만 반가웠다. 어딘가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바람 같았다.
“순옥아, 오길 잘했다.” 향의 목소리는 공기부터 따뜻하게 만들었다.
경이는 씩씩하게 가방을 메고
“바다 먼저 보러 가자!” 하며 앞장섰다.
그 단단한 걸음이 늘 나에게 힘이 된다.
겨울바람 속을 걷는 세 사람의 발걸음은
기대와 온기로 느리게, 또 단단하게 이어졌다.
여행 내내 친구들이 준비한 밥상은 정성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국물 한 숟가락, 김치 한 점, “순옥아, 좀 먹어라.” 그 한마디가 마음을 살렸다.
겅이는 감추지 않는다.
“이번 여행은 네가 쉬는 여행이야. 마음 좀 놔.”
그 말은 내 어깨 위에 오래 얹혀 있던 무거운 것들을 조용히,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했다.
향은 늘 그렇듯, 말보다 손길이 먼저였다.
내 손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큰지 알겠지?” 하고 속삭였을 때,
참아왔던 마음 한 겹이 그 자리에서 스르르 녹아내렸다.
첫날 저녁 — 겅 솜씨 주꾸미볶음
강릉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식탁에 올라온 뜨끈한 주꾸미볶음.
불향과 매콤함이 딱 나를 깨우는 맛이었다.
“순옥아, 얼른 먹어. 힘내자.” 경의 씩씩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둘째 날 아침 — 향 배추된장국
오래 끓여 고소함이 깊게 배인 국물.
말은 없지만, 국물 한 숟가락에 담긴 ‘괜찮아, 네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둘째 날 저녁 — 우리들의 솜씨 해물·문어 샤브샤브
바다 마을의 싱싱함이 그대로 담긴 저녁.
끓는 육수에 문어를 넣는 순간 셋이 동시에 웃었다.
하루 종일 걸은 다리가 그 자리에서 바로 풀리는 듯,
샤브샤브 국물처럼 깊고 따뜻한 여행의 밤이었다.
셋째날 아침ㅡ향이의 솜씨 경이의 연천 아버지 쌀과 콩으로 지은밥과 황태뭇국 깊은 맛의 행복 너무 좋다.
바다를 보면서 아침을 먹는다.
정동진의 파도는 우리를 보자마자 말하는 듯했다.
“여기 있으면 괜찮아.”
우리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말없이 바다를 오래 바라보았다.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과의 시간, 그런 사람을 곁에 둔다는 건 참 큰 복이었다.
짐을 챙기며 아버지의 수면잠옷을 떠올렸다.
부드럽다며 손끝으로 쓰다듬던 그 모습, 작은 천 하나에도 감사해하시던 마음.
아버지는 현금을 들고 계시지 않지만
늘 내 삶을 살뜰히 챙기며 조금 돌아서, 그러나 진하게
“너도 너를 써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마음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힘이었다.
돌아가는 길 오후, 나는 속으로 조용히 말할 것이다.
“아버지, 잘 쉬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여행 기록 — 우리가 함께 걸어간 일정
첫째 날
강릉 도착
점심: 초당순두부
경포호수 자전거
숙소 휴식
저녁: 해동횟집, 숙소에서 경 솜씨 주꾸미볶음
둘째 날
정동진 해변 산책, 레일바이크
하슬라아트월드, 인생사진 남기기
카페에서 긴 수다
저녁: 해물·문어 샤브샤브
숙소에서 조용한 밤
셋째 날 (예정 · 오후 늦게 귀가)
숙소 아침
경포해변 또는 오죽헌 산책
점심
중앙시장 들러 장보기
의정부로 출발, 여행 마무리
고마운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
향 에게 은은한 향의 수분크림, 은은한 색 립밤
경 에게 은은한 향의 수분크림, 은은한 색 립밤
“이게 뭐야, 순옥아?” 웃으면서도 두 사람의 눈빛은 따뜻했다.
작지만 내 마음을 담은 표현이었다.
여행 마지막 밤 — 고요하게 자리 잡는 마음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며 겨울바다를 떠올렸다.
고요하게 내려앉은 바다, 차분히 자리 잡는 내 마음.
“괜찮다, 내가 다시 숨 쉬고 있다.”
그 사실을 조용히 깨닫는 밤이었다.
에필로그 — 다시 나의 자리로
차창 밖으로 강릉 바다가 멀어지는데,
허전함보다 ‘채워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동안 고단했던 마음 사이사이에 친구들의 온기, 아버지의 마음, 겨울바다의 숨이 스며들어
내 안에 조용히 빛을 켜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도망의 끝이 아니라,
내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작가의 말
이번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쉴 수 있게 만든 건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나의 뿌리,
향과 경은 내 삶을 떠받쳐주는 가지.
그 위에서 나는 다시 바람을 맞으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글을 쓴다.
조금 덜 무겁고, 조금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다음 편 예고 — 〈일상으로의 복귀, 아버지의 회복〉
강릉에서 돌아온 뒤, 아버지는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실까.
아주 작은 변화들, 숨결처럼 스치는 회복의 징후,
그리고 하루를 살아내며 보여주신 또 하나의 ‘작은 기적’을
다음 편에서 조용히 기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