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지트, 자몽 맥주

입 짧은 인간의 먹는 인생 이야기 ep.13

by 정담

혼술이 힘든 하루를 끝내기 위함이라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즐거운 하루를 간직하기 위해서 같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친구들과 만나는 아지트가 있었습니다. 꼬치류를 주로 하는 호프집으로, 친구가 알바를 하고 친구의 이모님이 사장님으로 계신 곳이었습니다.


친구가 알바를 하는 곳이니 만큼 편한 장소이기도 했고, 이모님께서 종종 안주도 더 얹어 주시니 자동으로 모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와 친구들은 스무 살부터 거의 5년을 드나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인 동네 친구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서로 학교가 달라진 만큼 거리도 멀어졌고, 때문에 만날 수 있는 건 서로 방학을 맞이한 한여름 혹은 한겨울. 그때마다 제가 계절에 상관없이 시켰던 첫 잔은 자몽 맥주였습니다.


일 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하는 만큼 자리는 길어졌고, 술이 약한 제가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약한 술로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물론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다 보면 제 앞에도 두세 잔이 쌓이긴 했지만.


그렇게 시간을 잊은 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달이 하늘 가운데를 벗어날 때 즈음 집에서 전화가 오곤 했습니다. 이른 저녁부터 이어진 자리임에도 더 많은 말을 하지 못해 아쉬워하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방학이 몇 번쯤 지났을 때,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 덕에 아지트로 모이는 횟수는 점점 줄어갔습니다. 어쩌다 한 번 만나도 줄어버린 체력과 다음 날에 대한 걱정으로 늦게까지 마시는 일 또한 드물어졌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는 모두 사회로 독립을 하게 되고 자신의 살 곳을 찾아가며 아지트는 과거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아지트가 아닌 곳에서 만난 저희는 종종 그곳에 대해 회상하곤 합니다. 그때도 그때 나름의 고민과 고충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저 웃고 떠들었던 시간들을.


그리고 다시 생각합니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힘들어하는 지금도, 결국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저 즐겁게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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