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로로 Sep 25. 2024

<소설> 사지 2

●          


  남자는 잠에서 깨어날 때면 늘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감싸 쥐고 일어났다. 그러고선 고개를 쳐들고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봤다. 입에서는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스트레칭으로 풀어보려 해도 통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통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통증에 익숙해지길 기다리는 방법 외에 그가 할 일은 없었다. 주변 자리를 더듬어 안경을 찾았다. 안경이 뿌옇게 보여서 잠옷 소매로 안경을 닦고 다시 썼다. 육 년을 넘게 쓴 안경이라 닦을 때 잠깐 맑아질 뿐이었지만 익숙함은 그것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남자는 충전시켜둔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봤다. 4시 44분.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기분이 상했다. 모든 시간과 동일하게 하루 두 번은 반드시 지나치는 4시 44분이었지만 유독 다른 시간보다 자주 눈에 띄는 것 같았다. 더욱이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요즘엔 더 자주 눈에 띄었다. 다시 잠들기도 깨어 있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남자는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만 만질 뿐이었다. 마치 처녀귀신이 하이힐을 신고 외발로 어깨 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고 많은 귀신 중에 처녀귀신이라 생각한 이유는 기왕 고통스러울 것이라면 처녀귀신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남자의 아내는 딸과 함께 잠을 잤다. 아내가 분리불안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이유에 붙이며 딸과 함께 잠을 자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남자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제는 함께 잠을 잔다는 것이 낯설고 어색해졌다는 점이었다.

  남자가 왼손으로 아무리 오른쪽 어깨를 주물러도 통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통증이 블랙홀처럼 온몸의 힘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남자는 힘겹게 자기 어깨를 주무르다가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내가 뒤에서 어깨 위에 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으로 남자의 날개 뼈를 훑으며 촘촘하게 눌렀다.


  “갑자기 왜 이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자는 아내의 손길이 싫지 않았다.     


  아내의 손에 남자의 뭉친 근육이 눈 녹듯이 녹았다. 아내의 손은 남자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어깨를 시작으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강아지를 품에 안듯 온몸을 감싸 안으며 남자의 잠옷을 벗겼다. 그러기와 동시에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한동안 아내의 맨살을 보지 못해서인지 실제 체감하는 아내의 몸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남자는 아랫도리에 피가 몰리는 느낌을 받았다. 온몸이 달아올랐다. 언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 관리를 한 건지 배신감이 들만큼 아내의 굴곡진 몸이 남자에게서 아내의 나이를 잊게 만들었다. 서로의 머리가 교차하며 아내는 뱀처럼 그의 몸을 타고 내려왔다. 아내는 그의 속옷 위를 쓰다듬었다. 마치 요술처럼 불룩하게 튀어 올랐다. 소중한 선물의 포장을 벗기듯 조심스럽게 속옷을 내리고 따뜻한 손으로 그의 고환을 감쌌다. 촉촉한 혀로 기둥을 타다가 탐스러운 맥주 거품을 빨아들이듯이 단숨에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아내의 다리를 힘주어 꽉 끌어안았다. 이렇게 환상적인 아침은 신혼에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간의 서운했던 감정은 치즈가 녹아내린 것처럼 형태를 잃어버렸다. 그는 허리를 흔들며 아내의 이름을 연신 내뱉었다.     


  “왜 그러는데?”     


  남자는 오른쪽 어깨에서 통증이 느껴졌고 속옷 안쪽이 축축한 것도 느껴졌다.     


  “왜 불러? 회사 안 가?”     


  침대 옆에서 남편의 상태를 살펴보던 그녀는 순간 인상을 팍 구겼다.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듯한 아내의 표정을 남자는 차마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오줌이야?”     


  아내의 질문에 남자는 몽정이 좋을지 배뇨장애가 좋을지 잠시 고민하다 아무 말 않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어느 쪽이든 설명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남자는 화장실 문을 닫고 하의를 완전히 탈의한 채로 변기에 앉았다. 부끄러움과 수치심, 허망함이 버무려져 몸과 마음이 몹시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치즈처럼 녹아내렸었던 아내에 대한 서운함이 마음에 지저분하게 눌어붙었다. 자신에게 욕망이란 것이 살아서 꿈틀대는 자체가 끔찍스러울 만큼 징그러웠다. 남자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밖에서 들을 것이 염려되어 그럴 수 없었다.

  남자는 옷을 벗고 샤워 부스 안에 들어가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온몸에 물을 적시고 사위가 물소리로 가득해지자 혼잣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양의 바디워시를 샤워 타월에 짜냈다. 남자는 잠에서 깨어나 마주친 아내의 표정이 떠올랐다. 남자는 샤워타월로 자기 몸을 문지르고 아플 정도로 세게 사타구니를 문질렀다.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니가 해주지도 안잖아. 안 해주잖아. 어쩌라고.’     


  남자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낮은 소리로 욕하고 울먹였다. 하지만 남자가 말로써 정의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욕을 했고 결국에는 짜증이 났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화장실 안에서 남자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를 테니까. 중얼거리던 혼잣말은 남자의 몸에서 비누거품이 가시기 전까지 계속 됐다.

  남자는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차분하게 몸을 닦았다. 그리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다녀올게 라는 말을 거실에 던져두고 출근했다. 평소의 출근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긴 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몽정으로 더럽혀진 속옷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남자가 검은 비닐을 챙길 때부터 아내는 거의 모든 상황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사실은 당연히 몰랐다.

  아무도 못 듣는 줄 알고 험한 혼잣말을 하는 남편. 씻고 나와서는 무표정의 멍한 얼굴을 한 남편. 불만도 만족도 아무것도 없는 눈빛. 아내는 남편의 이상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아는 척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싫어졌다. 오늘 아침을 기점으로 아내는 남편이 조금 더 싫어졌다.     


  남자는 출근길 지하철 화장실 쓰레기통에 속옷을 버렸다. 남자는 공중 화장실에 정액이 묻은 팬티를 버리고 나오면서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어쩔까 잠깐 불안에 떨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