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은 죄 -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침묵하는 자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메시지

by 아테나

1992년, 더블린 소재의 '사랑의 성모님 수녀회 (Sister of Our Lady of Charity)'는 재정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블린 북쪽에 있던 막달레나 세탁소 부지를 팔기로 한다. 막달레나 세탁소에 딸린 묘지가 포함되어 있던 그 땅은 개발업자에게 팔리고, 1993년 매장된 시신을 옮기는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막상 파보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시신이 매장되어 있었다.


묘비는커녕 팻말하나 없이 매장된 155구의 시신. 그중 사망기록이 남은 죽음은 겨우 75명. 나머지는 사망기록조차 누락된, 언젠가 그 시설에서 살았거나 일했을 사람들의 시신들이다.



18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아일랜드 곳곳에는 막달레나 세탁소(Magdalene Laundry)가 있었다. 겉보기엔 그저 성당에서 운영하는 세탁대행업체였고, 세탁으로 창출한 수익은 그 시설에 살고 있는 불우한 여자들의 교화에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아일랜드 천주교 교단에 의해 (그리고 이를 묵인한 정부에 의해) 운영된 막달레나 세탁소는 버려진 여자아이들의 강제수용소였다.



미혼모, 거리의 여성들, 가족에게 버림받은 여자아이들, 강간피해자들, 가난한 집의 딸들, 장애를 가진 여자아이들, 등등. 1996년 마지막 막달레나 수용소가 문을 닫기까지 수많은 여자아이들이 그곳에 갇혀 이름을 잃고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학대받았다. 반항하는 아이는 며칠을 굶거나, 한겨울의 추위 속에 방치되거나, 체벌을 받았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은 1985년 막달레나 수용소한 여자아이를 보게 된 지극히 평범한 아저씨 의 이야기다.


강 건너 언덕 위 고고히 서있는 수녀원 - 동네 사람들은 수녀원의 깔끔한 정원을 칭송한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세탁소 또한 평판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세탁소와 함께 운영하는 "교육시설"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그저 이런저런 소문이 떠돌 뿐이다.


... 사실은 교육시설이 아니라 몸가짐이 나쁜 여자아이들이 가는 곳 이라더라... 그 아이들이 종일 몸이 부서져라 세탁소 빨래를 한대... 간호사 아무개가 거기 어떤 애 치료를 하러 갔는데 빨래통에 얼마나 서있었는지, 다리가 말도 아니었대... 애들 밥도 제대로 안 준다며? 빵조가리 조금 먹고 저녁 한 끼 겨우 먹는다던대... 미혼모들이 낳은 아기들은 미국이나 호주에 팔려간다더라...


크리스마스 즈음 난방용 석탄과 장작을 배달하러 수녀원에 간 빌은 꽁꽁 언 석탄창고에 갇힌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아이는 이제 4주쯤 되었을 자신의 아기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봐 달라고 부탁한다.


아이를 다시 수녀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빌. 그의 아내는 우리 딸들은 그런 곳에 갈 일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안도하고, 그의 이웃은 웬만하면 수녀원을 심기를 건드리는 짓은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한다.


빌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책을 읽고 나니 떠오르는 시가 있. "Sin of Omission/하지 않은 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또한 죄이니, 나는 오늘 어떤 죄를 지었는가.


하지 않은 죄 - 마거릿 생스터


당신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것이 문제다
해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잊어버린 부드러운 말
쓰지 않은 편지
보내지 않은 꽃
밤에 당신을 따라다니는 환영들이 그것이다

당신이 치워 줄 수도 있었던
형제의 길에 놓인 돌
너무 바빠서 해 주지 못한
힘을 북돋아 주는 몇 마디 조언
당신 자신의 문제를 걱정하느라
시간이 없었거나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사랑이 담긴 손길
마음을 끄는 다정한 말투

인생은 너무 짧고
슬픔은 모두 너무 크다
너무 늦게까지 미루는
우리의 느린 연민을 눈감아 주기에는

당신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것이 문제다
해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 마가렛 생스터, <하지 않은 죄> (류시화 옮김)


* 이 책은 원서로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상을 수상한 클레어 키건의 소설답게 짧지만 꽉 차있다. 얇은 책이지만 충분히 느껴지고 충분히 그려내는 그녀만의 특출한 능력 있다. Ireland 특유의 표현과 단어가 있어 필자도 군데군데 사전을 찾아야 했으나 책 자체의 난이도가 높지는 않 편.


#SmallThingsLikeThese #이처럼사소한것들 #클레어키건 #ClaireKee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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