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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Nov 21. 2022

깐깐한 세제 변호사 알렉스 2

어쩌다 보니 Tax Lawyer

미드 속 변호사와 현실 속 변호사의 차이


캐나다의 변호사는 보통 한두 분야에 집중한다. (다른 곳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다른 나라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특히나 가정법, 형법, 상해, 이민, 상속분쟁 전문 변호사들은 다른 분야를 손도 대지 않는다. 손을 대고 싶어도 (어느 정도 자기 분야에서 경력이 쌓이면) 다른 분야는 아는 것이 없으니 할 수가 없다.  


한 변호사가 여러 분야를 하는 경우는 회사법, 상법, 부동산법 정도가 아닐까 한다. 워낙 교차점이 많기 때문에 상법을 하면서 부동산법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회사법을 모르고 상법 관련 일을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평생 밥벌이가 될 전문분야를 정하는 과정이 어이없기 짝이 없다.  대형 로펌에서 수습직을 하는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수습기간 동안 여러 분야를 로테이션으로 돌고 나서, '그래도 저 사람 밑에 가면 자살충동까지는 가지 않겠다', 싶은 변호사 밑으로 간다.  소형 로펌은 그 마저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단 수습으로 들어간 로펌에서 주로 하는 일이 그냥 내 분야가 되는 것이다.  


간혹 법대에서부터 '나는 형법 변호사가 되겠어' 내지는 '나는 증권 변호사가 될 거야'라고 본인이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 확신을 가진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극소수다.  수습 1년을 합쳐서 겨우 2-3년을 일했다고 해도 경력은 경력이고, 그동안 배우는 양도 어마어마하기에, 로펌을 옮길 때 완전히 다른 분야로 갈 수가 없다. 다른 분야로 가면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뽑아주는 로펌도 원하지 않고, 한 푼이라도 높은 연봉을 받으려는 변호사도 원하지 않는다. 3년 차 변호사가 1년 차 또는 수습 수준의 연봉을 감내 할리가 만무하다.



어쩌다 보니 Tax Lawyer


알렉스는 좀 다른 경우다. 상위 1%의 성적으로 법대를 졸업했고 (본인 말에 따르면 - 물론 나도 믿지만), 졸업과 동시에 대형 로펌에 들어가게 된다.  처음 들어간 로펌에 스타 변호사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 알렉스가 가장 존경했던 (무지하게 똑똑하고 유능한) 파트너 변호사가 세제 변호사였고 그 사람이 멋있고 좋아서 세법 관련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선배 변호사를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다. 내 주위에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알렉스 밖에 없다. 내 동기들은 수습기간 동안 모두 미친 X, 더 미친 X,  아니면 진짜 미친 X 들과 일한 기억밖에 없다는...)  


처음 들어간 로펌에서 7년간 많은 것을 배웠고, 파트너 자리도 얻게 된다. 알렉스는 그 당시를 매우 신나는 시절로 묘사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그때가 그가 가장 신나게 일했던 때인가 보다.  그들이 세운 교묘한 절세전략 덕에 재무부 장관이 의회에서 자기가 일하던 로펌을 딱 집어 악의 무리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그 시절을 회상하는 알렉스의 눈에 개구쟁이 악동 같은 웃음이 맺힌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많은 스타 변호사들이 은퇴하거나 로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즈음 그도 다른 펌으로 옮겼으나 그에게 맞지 않는 곳이었고, 1년 후 또 다른 펌으로 옮기게 된다.  그렇게 들어간 세 번째 펌에서 두 해쯤 더 있다가, 10년 차 즈음에 개업을 했다. 겨우 40명의 고객을 데리고 나와 홀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몇 명의 어소시어트 변호사들과 함께 몇십 배로 불어난 고객을 관리한다.




지금은 좋은 동네의 비싼 집에 살고 있지만


알렉스에 물었다. 열 살 때쯤, 가장 행복한 기억이 무엇인지.  그는 식구들과 함께 레이크에 놀러 가서 수영하고 놀았던 날이 기억난다고 했다.  동생들과, 엄마와, 아빠와 눈 부시는 햇살 속에서 물놀이하고 놀았던 것. 특별한 일을 한 건 아니었는데, 그냥 그렇게 놀았던 기억이 제일 행복한 기억이라고.  동생들과 그다지 가까워 보이지 않았기에 좀 놀라웠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리운 것이리라.  


아직도 고향에 돌아가서 살고 싶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제 부모님들은 돌아가셨고, 친구들도 지인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떴거나, 고향을 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이제 정말 몇 안 되는 친구들이 고향에 남았다고.  언제나 좋은 음식과, 고급 와인과, 격조 있는 서비스를 즐기는 알렉스에게서 눈 속을 신나게 걸어 학교에 가던 시골아이의 모습을 찾아본다. 언뜻 보면 딱딱해 보이는 얼굴, 그 아래 어딘가에 여덟 살 개구쟁이 알렉스가 숨어있겠지. 경력 3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출근이 즐겁다는 그가 신기하다. 평생 해온 일이 아직까지 즐거울 수 있다니.  


나와 만나면 가끔은 실없는 수다를 떨고 가끔은 세법 동향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다.  나와 이야기할 , 더할 나위 없이 친근한 알렉스이지만, 나는 안다. 일터에서 그는 여전히 깐깐 대마왕이고, 그의 주니어들은 여전히 그를 피해 다니고 있을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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