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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Nov 27. 2022

눈물 많고 효심 많고 치맛바람까지 센 수잔 2

그녀가 깨버린 내 선입견

백인들은 자녀교육에 우리만큼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다.  수잔은 자녀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대단하다. 솔직히 나보다 자녀교육에 더 신경 쓴다. 그렇다고 해서 사교육에 전념한다는 것은 아니고, 아이의 학교 선생님들과 늘 소통한다. 집에서는 아이가 숙제를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하고, 내야 하는 과제가 있으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언제 내야 하는지, 어느 과목에 어떤 시험이 있는지 등등을 체크한다. 웬만해서는 흥분하는 법이 없는 수잔이 흥분하는 순간은, 어김없이 두 아들의 교육에 관련된 일들이다.  


수잔의 아이들이 워낙 순둥이들이라 문제가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아이가 너무 순해도 당하는 것이 캐나다 학교의 현실인지라. 어쨌든 수잔이 화내는 걸 본 것은 학교에서 아이가 다른 아이와 사건에 휘말렸는데 그녀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을 때였다.  그녀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생각할 정도였다.  문제가 발생하면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학교 측에 쉬지 않고 연락한다.


한국사람들은 그런 말을 자주 한다. 캐내디언들은 애들을 방목한다고.  물론 자녀에게 많은 자유를 주는 부모들도 있겠지만, 수잔처럼 아이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매의 눈으로 관리하는 부모들도 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큰 아들조차 예외는 아니다. 


그뿐인가.  수잔네 가족은 지난 십여 년 동안 주말마다 자녀들의 스포츠 행사에 따라다녔다. 가을에서 봄까지는 하키, 봄과 여름은 라크로스. 말이 쉽지 보통일이 아니다.  주 중 연습은 둘째 치고, 경기 스케줄 따라다니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타 지역으로 장거리 운전은 기본이고 터나먼트라도 출전하면 성적에 따라 다음 스케줄이 정해지기 때문에 주말에 약속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수잔보다 하키나 라크로스에 더 진심인 사람은 사실 수잔의 남편이다.  "와.. 너네는 정말 주말이 없구나..."라고 내가 말하면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웃는 수잔.  



캐다나에서 하키란 


곧 삶이다.  아마도 캐나다의 하키는 남미의 축구와 비슷하지 않을까?  동네마다 하키팀이 있고 남자든 여자든 코찔찔이 시절부터 스케이트를 배운다.  아이스에서 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싶으면 하키를 시작한다.  하키는 스케이트와 하키 스틱 외에도 보호장비, 헬멧 등등 갖춰야 할 장비가 많다.  그러나 동네마다 한 두 군데의 중고 스포츠 용품을 사고파는 가게들이 있어 최소한의 비용을 들이고 싶다면 그것도 가능하다.  클럽도 마찬가지다.  그냥 지역팀에 드는 것은 큰 비용이 들지 않지만, 일 년짜리 멤버십 비용 3천 불에 매달 4백 불 넘는 월회비를 내야 하는 사설 클럽들도 있다.   


지역 팀에서는 Tryout (일종의 예심?)을 거쳐 실력에 따라 알맞은 레벨의 팀에 배정된다.  "rep team" (지역 팀 중에서 대표팀 레벨)은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안다.  


나는 아들에게 하키를 시키지 않았다. 스케이트는 가르쳤지만, 일부러 하키 쪽으로는 아이가 관심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나는 혹시라도 아이가 하키를 하고 싶다고 할까 봐 두려웠다.  하키를 시키게 되면 일단 주중 새벽 연습이 정말 고역이다.  초등학교생들이 주중에 아침 6시 반 하키 연습을 가려고 5시 반에 일어나 밥을 먹고, 옷을 입고, 기어를 챙기고, 하키 백을 챙기고..., 연습 끝나면 또 학교 가고.  그걸 다 챙겨주는 아빠, 또는 엄마.  정말 못할 짓이다.  그뿐인가.  주말마다 있는 홈경기와 원정경기는 또 어쩔 것인가. 그럼 부모는 도대체 언제 쉬나. 


그 모든 걸 15년 가까이 해온 집이 수잔네 가족이다. 남편이 하키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들들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하키를 해왔다. 부모가 주말이 없는 생활을 한지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주말 휴식시간을 목숨처럼 지킨다. 주말근무를 아예 하지 않는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고 아이가 NHL에 갈 거라고 믿는 것도 아니다. 물론 뛰어나게 잘하면 그것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팀 스포츠를 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녀가 깨어버린 나의 선입견은 또 하나 있다.


캐내디언들은 효심이 덜하다?


아니다. 수잔은 지극한 효녀다. 부끄럽지만 나보다 훨씬 더.  수잔의 부모님은 두 분 다 90세가 넘도록 정정하셨으나, 90세 이후에 건강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4남매가 의논 끝에 동향 사람들이 많이 있는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안전하지만 두 분이 독립성을 완전히 잃지 않을 수 있는 환경에 모시기 위해 자녀들이 많이 고민을 했다. 부모님이 요양원에서 살기 시작한 뒤 넷 중 셋은 쉬지 않고 요양원에 방문했다.  (한 명은 미국으로 이주해서 거리가 많이 멀었다).


사실 챙기려 하면 챙길 날들이 좀 많은가.  부모님 생신, 부모님 결혼기념일, 부활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신년, 등등.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매주 가지 못하면 격주로 찾아뵈는 것을 4남매 중 셋이 했다는 건 그 집 부모님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명의 자식을 봤다는 얘기가 된다.  늘 찾아뵈고 엄마나 아버지가 어디 불편한 곳을 하나라도 말하면 남매들이 난리가 난다. 새로운 변기커버가 필요하다는데 어디서 사야 하는지, 모양이 맞는지, 누가 가서 사 올 건지를 정하고, 혹시라도 식사를 잘 못하신다는 얘기를 들으면 요양원으로 불티나게 전화한다.  오늘은 좀 어떠신지. 약은 드셨는지. 아침은 드셨는지. 점심은 드셨는지. 식사는 뭘로 대체했는지.


"효"라고 하면 왠지 동방예의지국의 전유물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S를 보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두 해쯤 지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힘들어하던 그녀의 모습이 기억난다.  특히 어머니는 코시국 중 잘 계시다가 갑자기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가족들의 면회도 심하게 차단하던 시절이라 면회 한 번 하려면 거쳐야 할 절차도 많았고, 횟수도 제한되어 가까이 사는 삼 남매가 서로 차례를 정해서 봐야한다는 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 이번 주에 큰오빠가 면회를 가면 수잔은 다음 주까지 기다려야 하는 식이었다. 어머니를 황망하게 보내고 눈물을 참던 그녀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


수잔에게도 물었다. 10살 때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뭐냐고. 그녀는 친구들과 놀던 기억을 말했다. 그 당시 살던 밴쿠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의 집은 Backyard (뒷마당)이 아주 넓었는데 그곳에 있던 큰 나무에 그네와 밧줄(rope swing)이 매달려 있었다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마당에서 해가 질 때까지 그네를 타고, 줄을 타고, 나무를 타고 놀았다며, 그때는 그게 제일 행복했다고 한다.  덧붙여 요즘 애들은 나무를 타며 놀지 못하니 슬픈 일이라고. 지금보다 더 활발하고 환했을 그녀가, 깔깔거리며 노는 어린 수잔이 눈이 선하다.  


지금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하키 스케줄에서 약간은 해방된 지금 (성인이 된 큰아들은 대학생이 된 후 하키팀을 그만뒀다.) 가족들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가고, 가끔 지인들과 안 가본 식당을 가보기도 한다.  가족의 생일,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신년, 부활절, 등등, 철마다 가족과 함께 할 만찬을 준비하고 (요리는 남편 담당이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수잔의 요리 솜씨는 많이 아쉽다고...) 투닥거릴 때도 있지만 똘똘 뭉쳐 사는 그녀의 가족들이 사실 부럽다.  (우리는 해외에 살고 있다는 핑계로 추석을 건너뛰고 우리 명절이 아니라는 핑계로 추수감사절도 건너뛴다. 크리스마스와 신정에는 늘 여행 중이라 집이 아닌 호텔에 있고, 구정은 캐나다에선 휴일이 아니니 또 그냥 넘어간다. 결국 아무 명절도 지키지 않는 가족이 되었다.)    


수잔과, 수잔에게 결혼기념일마다 꽃을 보내는 남편, 그리고 두 아들.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그녀의 가족이 늘 지금처럼 행복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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