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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Nov 22. 2022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 - 제프 다이어

영원히 청춘일 것 같은 날들의 기록

유럽에 다시 가고 싶었다.  20대에 보았던 그 풍경들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런 날이 언제 다시 올까, 생각하며 2017년에 제프 다이어의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원제: Paris Trance - Geoff Dyer)를 읽었다.


작가를 꿈꾸는 루크, 아름다운 니콜, 그 들의 이야기에 그저 조연이 될 수밖에 없는 알렉스, 그의 연인 사라.  그 네 사람의 20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과 텐션이 있고, 술과 약에 젖은 날들이 있다.  영원히 청춘일 것 같은 날들의 기록이다.  20대에만 느낄 수 있는 어떤 당돌함과 무계획 같은 것.  좀 막 산다 해도 어때. 우리에겐 젊음이 있어.  (그렇다고 경쾌하고 활기차지는 않고, 약간 다운된 톤의 소설이다.)


제프 다이어는 1958년 영국에서 출생한 작가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  비평가로도 유명하다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하는 작가로 더 유명한 것도 같다.  소설 속에서 그렇게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아주 신난 일도, 아주 슬픈 일도, 그다지 없다.  어찌 보면 소설의 마지막 - 알렉스와 루크의 재회가 가장 극적인 순간일 수도 있겠다.   


People were embarrassed by her loneliness because it so frankly mirrored their own.

사람들은 그녀의 외로움을 민망해했다. 자신들의 외로움과 너무 똑같이 닮았기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루크가 공원에서 어떤 중년의 여자를 보는데, 그녀는 "내게 말을 걸어주세요"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혼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그녀의 외로움을 보고 자신의 외로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느꼈다는. 그래서 다들 외면하고 지나갔다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것들에 우리가 감추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If orgasm was a petite mort, then this was petite suicide.
오르가즘이 작은 죽음이라면, 자위는 작은 자살이다.
 

내 기준에서 이 소설은 좀 야한 소설에 속한다.  루크와 니콜은 서로 깊이 탐닉하는 사이고, 에로틱한 묘사가 있는 편이라 청소년이 읽기엔 부적합한 듯하다. 저 표현이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불어를 모르지만 petit (little, 작은)과 mort (death, 죽음)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글을 쓴 제프 다이어의 표현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실제로 오르가즘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인다고 나온다. 성적인 표현 외에도, 정줄을 살짝 놓을만큼의 어떤 정신적인, 또는 영적인 경험을 뜻하기도 한다고. 작은 죽음작은 자살이라니. 그 비유가 너무나 적합하면서도 재미있다.



이 책을 읽고 정확히 2년 후 파리에 갔다. 그 때즈음 슬슬 어린이티를 벗어가던 아들과 함께.  정말 큰맘 먹고 아들의 봄방학에 맞춰 휴가를 냈다. 그래봤자 고작 열흘 남짓의 시간이라 런던에서의 1박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파리에서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내년에 가야지, 하고 미뤘으면 2020년이 되었을 테고 (2020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다들 알 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정말 안도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던 것 중 하나.  그때 다녀와서 정말 다행이다.  



프랑스 알자스산 도메인 진트 훔브레이트 게뷔르츠마이너

애정하는 와인을 하나 풀어볼까 한다. 처음 이 와인을 만나고 흥분해서 동네 와인가게 재고를 다 털어왔다. 아주 싼 와인은 아니지만, 비싸지도 않은, 중간대 와인이다. ($40불 초반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4만원대에 판매된다고 나온다.)  알자스 지방 와인답게 향이 어마무시하다. 꽃향기도 아닌것이, 열대과일 라이치향도 아닌것이, 아름다운 향과 맛이 내 입맛에는 너무나 좋았던 내가 애정하는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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