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테나 Oct 21. 2023

어쩌면 이건, 소통의 문제

나는 당신과 ...

다시는 꺼내지 않을 이야기 하나 더
그저 묻어버린 다툼 하나 더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는 질문 하나 더
우리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 하나 더

Another thing we will never talk about
Another argument swept under the rug
Another question waiting to be answered
One more reason we cannot be together


친구가 열띤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나서 폭발했다며. 결혼한 지 7년쯤 된 친구의 남편은 말이 적고 내성적이다.  극 I 랄까? 그녀가 폭발한 이유는 남편이 속에 있는 것들을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남편의 기분이 계속 나빠 보여서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남편과 스무고개를 하다 결국엔 "제말 무슨 일인지 말 좀 하라고!!!  내가 남도 아니고 마누란데, 형사처럼 꼬치꼬치 캐물어야겠냐고!!!!"라며 폭발했다는 이야기였다.  


(친구가 공감을 원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기에) "저런 저런, 속 상했겠다"라고 맞장구는 쳤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나도 그런 남자랑 산다. 그거 안 고쳐지더라. 그냥 냅둬라."였다.  


나는 남편에게 시댁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한다. 물론 시시한 이야기는 자주 하지만, 결정적인 내용은 안 알려주더라 (제일 마지막에 알게 되는 사람이 나다).  시어머니가 갑자기 몸이 편찮아지셨는데 나만 그 내막을 몰랐다거나, 집안 어른이 큰 병으로 입원하셨는데 나만 몰랐다거나, 형님네가 이사 한 걸 몰랐다거나.  기분 나쁘자고 들면 끝도 없어서 이 부분도 나는 포기했다.  본인이 말하고 싶으면 하겠지. 그래야 내가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으니까.  (내가 상처받는 이유는 남편이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수없는 물음표의 주어가 되기 때문이다. 는 식구가 아닌가? 를 못 믿어서 비밀로 한 건가? 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건가? 이런 질문들...)  


우리가 대화가 없는 건 아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오늘 애가 어디서 뭘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강아지가 어땠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나눈다.  그러나 일 년 내내 수박 겉핥는 이야기만 나눌 거면, 사이좋은 룸메이트 둘이 사는 것과 뭐가 다른가.  


나는 가끔 그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친정 부모님도, 시부모님들도 더 나이 드시고 혼자되시면 어떻게 하지? 자식인데 우리도 모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일해야 할까? 한 번씩 번아웃이 너무 세게 오는데 이러다 어느 날 미쳐버리지 않을까? 공황도 좀 오는 것 같고...

한국에 가서 좀 살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할까? 몇 살쯤?

얼마를 모아야 은퇴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바로 OFF가 되는 사람이다.  일단 내 말을 듣는 걸 거부하고, "응, 그래.." (뭐가 그래???) 내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로 일관한다. 아니, 미리 좀 생각해 보면 안 되나? 아무 소용없는 일이래도?  부부 사이에 깊은 이야기를 전혀 나누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결핍이다.  소통이 관계를 깊어지게 한다는 말 - 요즘 아무 의미 없이 굴러다니는 말 같지만 이렇게 풀어볼 수도 있겠다:  우리끼리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도저히 남이 끼어들 수 없는 유대관계를 형성한다고.  너한테만 할 수 있는 이야기.  우리끼리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으니, 이런 곳에 글도 쓰는 거다.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닌가.  나는 당신과 나누고 싶은데.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건 분노가 아니다.  채워지지 못한 욕구에 대한 갈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