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몸이 아파서 학교를 못 갔다. 다 큰 아이 학교 하루 쉰다고 큰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두통과 약간의 메슥거림 외에는 특별한 증상도 없으니 집에서 쉬게 두고 출근했다. 퇴근하고 와보니 아이는 거의 멀쩡한 상태였다.
부랴부랴 옷만 갈아입고 고기를 볶고 야채를 다듬고 평소보다 신경 써서 저녁을 차렸다. 호박과 표고버섯을 따로따로 볶고, 고기도 볶아서 떡국에 올렸다. 남은 호박을 채쳐서 호박전 비슷한 것도 만들었다. 아이와 남편이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같이 앉아서 호박전을 깨작거리다 어지럽혀진 부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남편이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강아지를 불렀다. "멍멍아, 산책 가자." 같이 가자고 하지 않은 건 바빠 보이는 나를 위한 나름의 배려란 걸 안다. 그렇지만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 없는 남편도 아들도 오늘따라 밉다. 맛이 있든 없든 저를 위해 밥상을 차려준 사람에게 잘 먹었다 말 한마디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저를 위해 요리를 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예전에 나는 그들에게 감사를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요리실력은 들쑥날쑥이다. 맛있는 먹을만한 결과물이 나올 때도 있지만 나조차 먹기 힘든 요리가 나올 때도 있다. 전에는 맛이 있건 없건, 불평 않고 묵묵히 먹는 남편이 고마웠다. 형편없는 요리실력에 대한 나의 자격지심도 한몫했지만, 자주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컸다. 식사시간을 훌쩍 넘어 퇴근하는 날이 대부분이라, 저녁식사를 주로 포장음식으로 때우는 아들과 남편이 불쌍해서. 식사를 준비해 주면 말없이 먹어주는 것만도 고마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맛이 없어도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준 밥상은 귀하다. 친정에 갈 때가 아니면 나는 남이 손수 차려준 집밥을 먹어볼 일이 없으니. (엄마들이 늘 하는 말 있지 않나. 남이 차려준 밥이 제일 맛있다고.)
내 아들은 내가 잘못 가르친 탓이라 치자. 다 커서 데려온 남의 아들에게 이것까지 가르쳐야 하나, 맥이 탁 빠진다. 기본적인 예의까지 가르치면서 어떻게 사나. 남편에게 말해본다. 잘 먹었다, 또는 고맙다, 한마디만 하고 일어나면 좋겠다고. 그게 식사를 차려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남편은 대답이 없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민망한가? 내가 자기를 가르치려 드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쁜가? 언제나처럼 수많은 물음표가 머리를 채운다.) 한참 후 그가 대꾸한다. "그럼 내가 멍멍이 산책 시킨 것도 고맙다고 해야지. 애 픽업하고 레슨 데려다주는 것도 고맙다고 해야지"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발끈했다가도 그냥 포기한다. "알았어. 나도 고맙다고 할게. 당신도 잘 먹었다고 말해."
하지만 소용없는 대화다. 다음 날 밥을 차려주면 또다시 묵묵히 처묵처묵하고 일어나는 두 남자다. "잘 먹었어" 그 한마디 안 한다고 갈라설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많은 치유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