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해서 나도 털어놓을 때가 됐다. 나도 문제다.
도피성 일중독: 얼마 전 #워커홀릭 #일중독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중독치료의 첫걸음은 중독을 인정하는 거라고 하던데, 나도 그렇게 시작해 본다. 나는 집보다 일터에서 월등히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 집 식구들은 평일 저녁에 내가 집에 있는 것보다 없는 것에 익숙하고, 엄마가 차려준 밥보다 포장음식에 익숙하다.
아이나 남편과 트러블이 발생하면 일터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낸다. 일터에선 일만 생각하면 되니까, 가정의 문제 따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몸은 힘들어도 열일모드로 있으면 마음은 편하니까. (솔직히 일 하기 싫은데 집에 가기도 싫어서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빈둥거리기도 한다.) 핑계를 늘어놓자면 집에는 나만의 공간이 없다. 안방도 거실도 서재도, 내 공간이 아니다. 반대로 일터에서는 적어도 나만의 방이 있다. 그뿐인가. 집에 가면 눈을 돌리는 곳마다 해야 할 일 투성이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매우 엄청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 집안 곳곳에 할 일들이 널려있는 건 사실이다.
혼자 하는 여행 또는 친구들과 가는 여행: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이 가끔씩 필요하다. 일 년에 한 번은 필요하다. 친구들과 하는 여행도 좋아한다 (4-5년에 한 번 정도? 다들 바빠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남편에게는 이해불가한 점이다. 왜 혼자서 여행이 가고 싶은가? 왜 친구들과 여행이 가고 싶은가? 왜 우리와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도대체 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저 가고 싶으니까. 여러 이유를 들어보지만 그는 납득하기 어려운 눈치다.) 당신도 혼자 여행 좀 가보라고 해보지만 그에게는 나와 같은 욕구가 없단다.
과음: 한번 마시면 과음하는 경향이 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다음날 위를 싹 비우고 위액까지 비울 정도로 마신다. 그 정도의 과음이 아니더라도 한 번씩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게 문제다. 집에서 혼자 마시기도 하고 친구들과 마시기도 한다. 두세 달에 한번일 때도 있고, 한 달에 한번일 때도 있고, 아예 안 마시기도 하다가, 매일 맥주 한 캔 씩 삼사일 연속으로 마시기도 한다. 과음을 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자기반성의 순간이 찾아온다..
인내심이 없고 쉽게 흥분한다: 며칠 전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태어나서 제일 끈기 있게 한 게 바로 당신과의 결혼이라고.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끈기라고는 없는 내가 제일 오래 유지한 것이 결혼이라니. 나는 화도 많다. 남편에게 화를 내는 건 아니고 어떤 상황이나 대상에 자주 화가 나있다. 쉽게 흥분하고 금방 가라앉는 편이다. 기뻐하다가 열받아하다가, 또 금세 미안해한다. 곁에 있으면 감정소모가 많이 되는 타입이랄까?
내가 봐도 내가 참 별로다. (이쯤 되면 남편이 보살인 듯.) 이 정도의 자기 객관성은 갖춰줘야 한다. 완전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에게만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나는 불완전하고 고장 나있다. 나도 나를 고쳐 쓰지 못하는데 남편이 바뀌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