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테나 Oct 21. 2023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다.

공공의 적

월요일 아침, 출근도 하기 전 이미 녹초다.


아들이 원했던 주말 스키여행이 발단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들과 같이 가고 싶어 했지만 엄마아빠가 동행한 스키여행).  아들과 남편은 목요일에 먼저 출발했고, 나는 금요일 오전 근무까지 마친 뒤 합류했다. 친구 여섯과 함께 금요일 온종일 스키를 타고 저녁에 호텔로 온 아들은 이미 심기가 뒤틀릴 대로 뒤틀린 상태였다.  


(중2병이 심각한) 고딩 아들은 엄마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싫단다. (아니, 이런 말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할 일이 있나?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이런 말을 도대체 어떻게 하냐고, 아들아.) 돈과 시간을 들여서 가고 싶다는 스키장에 데려다주고, 아침부터 밤까지 친구들이랑 리조트를 누비며 놀라고 엄마 아빠는 호텔에 박혀있고, 엄카 지원까지 해줬는데, 세상에서 제일 미운 사람이 엄마 아빠라는데 할 말이 없다.  


친구들과 자고 싶다는 걸 안된다고 했더니 벌어진 일이다.  왜 안 되냐, 다른 애들 부모들은 다 오케이 했는데 왜 엄마아빠만 그러냐, 등등.  그렇게 따지고 드는 아들과 밤늦도록 입씨름을 했다. 그 여파로 아들은 주말 내내 화가 나 있었다. 상욕을 퍼붓고 싶었으나 초인의 힘으로 꾹 참았다.


결혼 첫 5년은 남편이 (대체로) 죽도록 미웠고, 그 다음 5년은 미워하면서 포기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 5년은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이런 ... 이때쯤 더 센 놈이 나타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중2병. 사춘기 자녀.


제발 말 좀 들어라, 어르고 타이르고 겁을 주고 화를 내도 이 녀석은 끄떡없다. 논리도, 이유도 없다. 열번 말을 걸면 대답다운 대답을 듣는 게 한번이나 될까?


고등교육을 저보다 훨씬 많이 받은 엄마도, 아빠도,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들이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줘도 그저 미움만을 받다보니, 한번씩 "왜?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든다.  울화통이 터지는데 하소연할 곳이라고는 딱 한 군데 뿐이다.  나와 같은 취급을 받는 남편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란 말도 있지않은가.  둘이 똘똘 뭉칠 수 밖에 없다. (호적이란게 있지도 않지만) 호적에서 자식을 파내고 싶을 때, 그나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같이 아이를 낳고 키운 남편밖에 없다.  역시 우리는 육아공동체였다.

 

얼마전 친구가 매우 늦은 나이에 쌍둥이를 낳았다. 아기들 사진을 보고 너무 귀엽다고 했더니, 진화론적으로생존을 위해 아기들은 귀엽게 만들어졌다기에 빵 터졌다.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부모의 보살핌이 가장 필요한 영유아 시기에는 귀여워야 생존에 유리하다.  부모의 보살핌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청소년기에는 아무리 밉상이 되어도 생존에 큰 영향이 없다. (막상 자기 손으로 무엇하나 할 줄 아는 것 없지만, 지들은 다 안다고 생각한다.)


새끼가 말을 안 듣는다며 불평하면 시댁 어른들도, 친정 부모님들도,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  다 지나간다. 한창 그럴 때다. 너는 안 그랬는 줄 아냐.


그 어느때보다 남편의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때다.  부부사이는 미우면 이혼이라도 하지, 자식과의 관계는 끊을 방법이 없다.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생판 남이었던 사람과도 참으면서 15년을 살았는데, 자식을 못 기다려줄까. (그래도 힘들긴 하다.)  언젠가 저 녀석의 전두엽이 다 발달해서 '인간'이 되면 그때는 앉혀놓고 얘기해 보련다.  너 그때 이런 말 했던 거 기억나? 엄마 그때 되게 상처받았었어.  나도 사람이다, 이 놈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