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루틴: 소설 쓰는 하루", 김중혁 외

by 아나스

작가의 루틴: 소설 쓰는 하루

김중혁 , 박솔뫼 , 범유진 , 조예은 , 조해진 , 천선란 , 최진영 지음 · &(앤드) · 2023년 1월 15일 발행

2025년 1월에 읽음


소설을 쓰는 현업 작가분들의 루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에세이 모음집이다.

일곱 명의 작가들이 '루틴'과 관련한 썰을 푸는데, 꼭 소설 쓰기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꾸준히, 스스로 컨트롤하며 해내는 사람들의 루틴이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하다.


여러 작가분들의 루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건 '산책'과 '커피'. 산책을 하며 잠시 작업에서 벗어나 세상과 나의 연결을 발견하고,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이야기를 환기하기도 한단다. 집중을 위한 커피 역시 여러 작가분들의 하루 루틴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인상적이었던 건 최진영 작가, 조해진 작가, 천선란 작가님의 루틴.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에 가까운 루틴이다. 그야말로 규칙적인 루틴.

조예은 작가님의 여행으로서의 일탈과 그 자체가 루틴일 수도 있는 상황도 인상적이었다. 제주의 바다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호텔방에서 글을 쓰는 작가의 시간이 소중하게 그려졌다.


김중혁 작가님의 '메모'와 '일기와 쓰기'에 대한 생각도 와닿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좀 더 추상적이고 복잡했는데 문자로 정리해 보면, 압축해서 메모로 남기면, 앙상한 뼈대만 남은 기분입니다. 생각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메모란 원래 그런 것이죠. 뼈대를 정리해 두는 것입니다. 핵심적인 것들, 중요한 부분을 인지 않도록 정리하는 것입니다. 뼈대만 남겨 두어도 될 것들이 있습니다. 뼈대만 있으면 모든 걸 복구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생각들은 뼈대보다 거품이 중요합니다."


"세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문자를 읽습니다. 내 마음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문자를 사용해 글을 씁니다."


박솔뫼 작가님은 집중을 위해 커피 외에 각종 오일을 책상에 두고 있다고 한다.


"책상에 앉아 나란히 늘어선 오일 기타 등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오, 이거 좀 안간힘인데' 싶기도 하다."


조해진 작가님의 스스로와의 불화를 해소하게 된 과정과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한 독백도 인상적이었다.


"오로지 상상만으로 빚어낸 누군가의 차가운 시선과 아픈 말들을 내가 먼저 스스로에게 부여함으로써 철갑처럼 단단한 보호막을 만든 것일 테니까. 내 마음의 법정은 결국 내가 타인에게 애틋한 마음을 상실할 때 세워지곤 한다는 점에서 나를 부끄럽게 각성시키기도 한다.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실 타인을 향한 애틋함을 잃지 않기 위함인데, 문장으로만 그것을 가장하고 현실에서는 망각한다면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큰 불행이 된다는 것, 나는 이제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소설가의 '독서', 즉 '적극적인 독서'에 대한 이야기도 새겨두고 싶다.


"내가 이야기하는 적극적인 독서란 좋은 문장, 인상적인 장면, 뜻밖의 사건, 놀라운 주제의식과 결말, 이 모든 것을 '만약 내가 쓴다면'으로 가정해서 읽는 것이다. 이 문장과 장면, 사건과 주제와 결말을 나라면 어떻게 쓸 것인가 상상하며 읽는 것, 그러니까 팀 오브라이언이라는 미국 소설가가 썼듯, '질투심을 갖고, 야심을 갖고, 이의를 각고, 경쟁심을 갖고, 동료 의식을 갖고, (......) 절망을 갖고, 분노를 갖고, 방어 본능을 갖고, 연민을 갖고, 다음 먹이를 노리는 늑대의 진득한 눈길을 갖고 읽는 것'......."


조해진 작가님의 루틴이 잠시 멈춰 설 때의 이야기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맞닿아 내 일처럼 느껴졌다.


"어딘가로 가고 싶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 길 위에 멍하게 서 있는 사람, 내가 스스로에 내리는 또 다른 정의....... (중략) 내가 무얼 쓰고 싶어 작가가 되려 했고 되고야 말았는지 골똘히 생각하기도 한다."


천선란 작가님의 글은 단호했다. 글에서 느껴지는 작가님의 캐릭터는 단호하고, 명료하고, 본인이 왜 그것을 하고 무엇을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느낌. 그리고,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또 꽤나 규칙적인 본인의 '철칙'(루틴)을 지켜는 이유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나를 갉아먹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야금야금 먹히다 보면 언젠가 나 자신이 너덜너덜해질 것 같았고, 그럼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을 잃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 철칙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한 보호벽이었을지도 모른다."


늘 '쓸 수 있는 상태'에 본인을 매어 두고 있는데, 실제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지 묘사된 부분을 읽고는 이 작가님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25분 동안 책을 읽고, 서치를 하고, 바깥을 바라보다가 5분을 쓴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 (중략) 나는 끊임없이 무의미한 행동들 속에서 다음 장면과 문장을 떠올리는 편이다. 이 행위가 직관적으로 어떤 뜻인지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책을 읽을 읽으면서도, 이메일을 확인하고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이야기에 얽매여 있다. 어떤 문장이 적절한지, 인물의 행동은 괜찮은지, 다음에 이 이야기가 자연스러운지 따위가 머릿속 한편에 자리 잡아 떠나지도, 멈추지도 않고 쳇바퀴처럼 계속 돌아가고 있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돌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해결점이 찾아지고, 다음 문장이 떠오른다. 그럼 하고 있던 모든 걸 멈추고 다시 쓴다."


마지막으로 최진영 작가님의 루틴. 목차 맨 마지막에 있지만 가장 궁금해서 가장 처음에 읽었다. 처음 책을 펼쳐내기까지 용기 있게(?) 글을 써낸 일화와 그때의 마음가짐이 부럽고 멋졌다.


"글쓰기가 좋아서 밤마다 썼다기보다는 글을 쓰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썼을 것이다. 글 속에서 나는 분노하고 폭로하고 처벌했다. 만나고 믿고 사랑했다. (중략) 일단 집을 떠나자, 모아 둔 돈을 아껴 쓰면서 장편소설을 완성하자, 그것을 응모해 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나는 정말 그렇게 했다. 3년 동안 세 편의 장편소설을 써서 응모했고 2010년에 한겨레문학상을 받아 첫 책을 냈다. (앞의 세 문장을 쓰고 나자 대뜸 용기가 난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청소, 샤워, 손톱깎이, 커피 마신 후 컵 씻기, 세탁, 설거지 등등 일상의 사소한 일들은 해내는 것의 의미에 대한 서술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내 앞에 펼쳐진 (거의) 무한의 자유 앞에서 루틴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여서인지.

"그러니까 청소하고 씻을 때 나의 목표는 '청결'보다는 '정해진 시간에 그 일을 하는 나를 확인하는 것'에 가깝고, 그런 확인은 나에게 안도감을 준다. 내가 정한 일을 빠뜨리지 않고 매일 하는 나에게서 얻는 힘이 있다.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이 계단을 밟아야 저 계단에 오를 수 있고,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야 집에 닿는 과정처럼. (중략) 그런 사소한 행동을 지속하는 힘으로 일상은 굴러가고, 그것들을 미루지 않고 제대로 해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지킬 수 있다."


나도 해봐야겠다 싶은 루틴은 이 것. 흰 바탕에 깜빡이는 커서 앞에 무력해지므로.


"한글 창을 열기 전에 시 서너 편이나 에세이 한 꼭지 또는 단편소설 한 편을 읽는다. 타인의 글을 읽으며 감탄하고, 배우고, 부러워하다 보면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에도 서서히 불이 들어온다.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한글 창을 연다. 나의 글을 시작한다."


산책에 관한 이야기도 좋았다. 나도 저녁 산책을 해봐야겠다.


"세상은 나의 일에 관심이 없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한다고 큰일이 날 리가 없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하면, 내가 글을 쓰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우선 나에게 다행한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 품었던 착각과 과대망상을 오려 내는 것. 부풀어 오른 부담감의 바람을 빼고 글쓰기를 원래의 자리에 내려놓는 것. 글 쓰는 나와 일상의 나를 분리하는 것. 저녁 산책을 할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더 이상 일정한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회사원이 아닌 자유인(?)으로 시작하는 새해의 초입에서,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가고 싶어 이런저런 실험을 하는 중이다. 작가님들의 루틴에서 몇 가지를 훔쳐와 실험해 보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밀리에서 우연히 발견했지만, 새해에 읽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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