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7일
하이가 요즘 트램펄린에서 뛰기를 좋아한다. 23개월이라서 아직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 크게 다칠까 봐 주변에 가서 손을 잡아주면 더 신나게 높이 뛰어오르며 꺄르륵 거린다. 하이는 웃음소리가 백만 불 짜리라서 누구나 더 듣고 싶어 할 그런 웃음이다. 영화 속 음향효과에나 나올 법한 그런 아이의 웃음소리. 팔이 아프지만 운동 삼아 잡아주곤 한다.
여느 때처럼 저녁 식사 시간이라서 나와 남편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준형이가 트램펄린에 같이 서서 하이를 잡아주며 자기도 뛰어노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가온이도 무리에 끼려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들어간다. 트램펄린 아래로.
방방 뛰어야 하는 트램펄린 아래 사람이 들어가니 준형이랑 하이는 뛰지 못하고 비켜달라고 얘기한다. 가온이는 되려 자기 손을 앞으로 쭉 뻗어서 장애물 경기로 만든다. 하이랑 준형이는 그게 불편했나 보다.
"비키라고!"
하고 두 번을 외치더니 준형이가 발로 가온이 얼굴 쪽을 밟아버리고 만다. 가온이 울음이 터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즐겁게 놀 수 없다.
자, 누구의 잘못일까. 한 명만 잘못해서는 분쟁이 생기지 않는다. 한 명만 양보하면 갈등은 없어지고 양보한 아이의 마음만 헤아려주면 되는 일이다.
둘을 불러 앉힌다.
"둘 다 이리 와!"
아이들이 앞에 앉아 고개를 들지 못한다.
"가온이 왜 울어? 둘 다 자기가 뭘 잘못했나 얘기해 보자."
가온이는 우느라 아직 말을 못 한다. 준형이는
"가온이가 아래 있는 줄 알면서도 트램펄린 위에서 뛰었어요."
"그게 왜 잘못일까? 트램펄린은 원래 뛰라고 있는 기구인데. "
"가온이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잘 알고 있는데도 그렇게 했네. 한 번 말을 했는데도 안 비켜줬으니 내가 응징을 해도 난 괜찮아. 하고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너에겐 다른 선택지도 있었어. 가온이를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봐. 잘 생각해 봐. 다른 방법은 뭐가 있었는지."
준형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가온이에게 묻기 시작한다. 가온이는 울음이 좀 가라앉고 뻘게진 눈으로 우물쭈물 나를 쳐다본다.
"가온이 이제 준비 됐어? 말해봐."
"형아랑 하이가 트램펄린에서 뛸 수 없게 제가 아래에 들어갔어요."
"그래, 잘 알고 있네. 왜 그랬어?"
"모르겠어요."
"다시 잘 생각해 봐. 네가 네 행동의 이유를 모르면 아무도 몰라."
"...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 엄마생각에도 형아랑 하이가 즐겁게 웃으면서 뛰니까 재미있어 보였어. 가온이도 즐거움 속에 뛰어들고 싶은데 위에는 너무 좁은 것 같아서 아래로 갔어. 그런데 아래로 들어가니까 위에 있는 두 사람이 뛰지 못해.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하고 손바닥으로 밀었어.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괴롭힘이야. 네가 들어가서 손바닥으로 미는 순간 너는 꺄르륵 거리며 킥킥대는 소리가 났지만 형아랑 하이의 웃음소리는 사라지고 비키라고 소리 지르는 비명만 들린 것 같아.
엄마는 가온이가 같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었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먼저 말해주는 거야. 내가 들어가서 이리저리 구를 테니까 나를 피해서 점프해 봐.라고 말했다면? 셋이서 같이 어울려 놀 수도 있고 모두가 즐거워하면서 더 박진감이 넘쳤을지도 모르잖아. 물론 그게 너무 빠르고 어려워서 거절할 수도 있어. 그럴 땐 뭐 손바닥으로 느리게 밀게 하고 다른 방법을 또 제안할 수도 있지. 가온이도 언제라도 이용해도 되는 놀이기구가 맞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하고 있으면 나도 같이 해도 되냐고 나는 이런 방식으로 해볼게 하고 허락을 구하는 거야. 알겠니?"
"네, 알겠어요.
형아, 내가 밑에 들어가서 트램펄린에서 못 놀게 해서 미안해."
"나도 너 아래에 있는 줄 알면서 밟아서 미안해."
"그래. 다음부터는 형아가 비키라고 하면 비킬게."
먼저 이어진 가온이의 사과에 준형이도 따라서 자기가 잘못한 점을 정확하게 사과한다. 나는 준형이에게 다시 한번 얘기해 준다.
"준형아, 가온이가 껴들었다고 생각하면 네가 방해받았다고 생각하잖아. 그럼 사과를 안 할 수도 있는데 잘했어. 누군가를 다치거나 아프게 하는 건 나쁜 거니까. 아까 가온이가 트램펄린 아래로 들어온 것은 너를 믿었던 부분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형아는 내가 있으니까 내가 다칠 행동은 하지 않을 거야 하는 믿음. 음.. 가끔은 그런 행동을 하는 동생이 귀찮고 방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로 형아가 좋아서 같이 놀고 싶어서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가온이가 아래로 들어왔을 때 그럼 우리는 왼쪽으로 간다! 하면서 하이를 반대로 이끌고 가온이도 이 말을 듣고 피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비키라고 한 내 말을 안 들어? 하고 가온이에게 화를 내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까. 가온이가 둔 수에 너는 그다음을 보고 한 수를 둬보는 거야. 모두가 즐거울 수 있도록. 일단 상대의 제안에 화를 내기 시작하면 싸움은 시작되거든. 싸움보다는 같이 즐거운 쪽이 더 좋겠지?"
"네.."
나는 언제나 두 아이가 모두 할 수 있었을 법한 그런 사과를 서로에게 종용한다. 싸움은 한 아이만 잘못해서 벌어지지 않고 두 아이 모두 싸움 대신 현명한 방법을 구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서다. 두 아이가 성향이 달라서 놓이게 되는 상황이나 처지도 다르지만 언제나 자기반성은 필요하다. 그래서 사과는 쌍방이 되도록 유도하는 편인데 이것을 반복했더니 어느 날 훈육하는 아빠에게 가온이가 대들었다.
"왜 아빠는 저에게만 사과하라고 하세요? 형도 저한테 잘못한 게 있잖아요. 저도 사과 안 해요!!!"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가온이가 준형이를 때린 상황이었는데 그 내용만 알고 가온이에게 사과를 시키니 가온이는 자신이 때린 가해자임에도 억울해하고 맞은 준형이는 당당한 가온이에게 더 서운함, 서러움을 느껴 거세게 운다. 상황이 정리되지 않고 애꿎은 아빠까지 원망을 듣는 처지가 됐다. 아이들 싸움이라도 개입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땐 상황파악을 정확히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 하나 억울함이나 서운함 없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내 생각대로 판결을 내려버리고 이리저리 하다 보면 언제나 의문이 든다. 내가 바르게 지도한 걸까? 준형이에게 싸움보다는 가온이를 품어달라고 요구했는데 아이가 그게 버겁지 않을까? 맏이라고 동생들을 모두 돌봐야 한다는 부담을 주기는 싫은데. 하는 걱정. 내 의도가 왜곡이 되지는 않았으면 싶다.
이제는 하이가 제법 자라서 오빠 둘을 앉혀두고 한마디 하자니 엄마~! 하고 단호하게 뭐라 한다. 표정만 봐도 알겠다. 오빠들이 울고 무서워하니 그만하라는 표현이다. 요 녀석 너무 귀여워서 그만 껴안고 뽀뽀세례를 퍼부울 뻔했다.
이 세 아이가 필연적으로 어울려 자라면서 서로에게 좋은 교훈을 주기를 바란다. 이런 다툼과 화해의 과정에서 상대방의 마음은 어떤지 더 잘 이해하는 폭넓은 사고와 공감능력을 키웠으면 한다. 사회인이 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