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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스무살, 나의 진로는

강사와 상담사 그 어디쯤

by 세상의 주인공님

24.5.18


아이 셋을 키우고 싶었고, 하나에 온전히 집중해서 양육하고 싶었다. 그렇게 세돌이 넘게 차이나는 세 아이를 가정보육으로 모두 키워낼 때 쯤. 이제 다시 나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로서 10년을 보냈다. 이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 중의 하나라서 이 시간이 아깝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엄마로만 살았다. 이제는 좀 다시 나를 찾고싶다. 20살의 나와는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그때처럼 일단 해보자!는 패기는 조금 수그러들고 대출,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 내 명예, 내가 가진 재능, 욕구 등을 고려해서 제 2의 직업을 찾아야 한다.

나에게는 공학사와 심리학사가 있고, 교원자격증이 있다. 학교로 가야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글쎄.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정말 내가 하고싶은가?를 생각하면 조금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한때 소아정신과 의사를 준비해보면서 봉사활동 시간이 필요해서 꾸준히 했던 정신병동 방문을 시작으로 어떤 사회활동을 하던 늘 봉사활동을 해왔다. 남들보다 수학을 재미있어 해서 또 아이들이 좋아서 했던 푸른 공부방에서의 기억이 남는다. 사실 그때의 그 아이들이 궁금하다. 서너명쯤 나오던 그 공부방에서 긴머리 여학생은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늘 단정하게 하고 다녀서 고집도 있어보이고, 또 하라는 것을 곧잘 챙겨서 순할 것 같기도 했는데, 그 아이가 가진 결핍은 '가난'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너는 맨날 같은 옷을 입냐 라는 옆에 앉은 아이의 말에 얼굴이 빨개지고 고개를 돌려 문제만 풀다가 눈물을 머리카락에 감춰 조용히 울던 그 아이. 내가 좀 채워주고 싶었지만 일회성으로는 제대로 뭔가를 안겨줄 수 없었다.

또다른 왜소하고 안경을 썼던 명석해 보이는 남자아이는 정말로 머리쓰기를 좋아해서 개념을 가르쳐주면 그 문제를 곧잘 풀어냈고,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더 많이 풀고싶어했다. 더 어려운 문제를 자기에게 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 얼마든지. 몇번을 꼬아서 문제를 내주면 풀어내다가도 막히게 되면 돌연 삐져서 연필심을 책상위에 찍어누르던 녀석이다. 스스로가 참을수 없다고 했다. 이 아이에게 보였던 결핍은 '폭력가정'에서 자라고 있어서 나오는 습관적인 행동들에서 보였다.

아주 작지만 얼굴에 장난끼가 가득했던 단발머리 여자아이는 시종일관 종알대고 내가 낸 문제를 제대로 푼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내가 해주는 이야기에는 가장 눈을 빛내던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도무지 숙제를 제대로 해 온 적도 없고 하는 말은 또 어찌나 신랄하기도 하고 직설적이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한지 가끔 이 아이들이 알아야 할 영역인가 싶게 만드는 씁쓸하기도 놀랍기도 한 대화를 종종하던 아이였다.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조금 강압적으로 들어가면 진지한 표정으로 짜증을 부리고 있는 그 아이는 참을성이 없고, 재미만 쫒지만 또 마주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느낀 그 아이가 가진 결핍의 원천은'방치'에서 비롯됐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수업을 거듭하면서 이 아이들이 가진 여러 종류의 결핍을 채워주는 공통적인 요소는 칭찬이었다.

정말 이해를 잘하는구나? 계산이 엄청 빠른데? 글씨를 단정하게 잘 써서 알아보기가 쉽다! 한번도 빠짐없이 숙제를 해오다니 정말 성실하다.

아이들이 지금 자신이 얼마나 반짝 반짝 빛나는지 알기는 할까. 싶게 예뻐서 내가 그 반짝 거림을 유지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물었던 장래희망에서 아이들은 모두 가슴에 무언가 멋진 미래를 그리고 있어서 놀랍고 반가웠다. 다음 수업에서는 제빵사/아나운서/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고, 연봉은 어느정도인지, 해당 학과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대학은 어떤 곳들이 있는지를 각자에게 가져다 줬다.

단발머리 여자아이에게서 집중하는 눈빛과 진실로 나와 대화하고 싶다- 라는 표정? 그리고 나에 대해서 정말로 신경쓰고 있군요? 하는 듯한 분위기를 읽었다. 긴머리 여자아이는 이런 고급정보를 어디서 볼수 있느냐고 자기는 더 알아보고 싶다고 해서 사이트를 알려줬다.


그래, 나는 그 아이들에게 수학 개념을 가르치고 문제풀이를 시키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이 개념과 문제를 풀줄 아는 능력도 맞지만, 자기만의 미래를 꿈꾸고, 지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교원 자격증으로 학교에 가면 별로 기대하기 힘든 모습일 것 같았나 보다.


이왕에 사업을 하려면 큰 돈을 벌고 싶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내 본성은 지식을 주고 싶기도 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이 어둠속에 있을 때 거울을 보여주고 싶은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은 수업노트를 만들어야 겠다. 초등학교 고학년 부터 가르쳐 보다가 중학생도 좀 손대보자. 고등학생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밤에는 심리학 대학원을 다녀서 석사로 바꿔야 겠다. 내가 자격을 갖추고 제대로 아이들을 만나보고 나도 성장하고 아이들도 성장시키고 싶다.


최근에 '삽자루'라는 수학 인강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인터넷 추모 공간에 많은 수포자 였던 학생들의 추모 물결을 봤다. 선생님 덕에 대학을 가고, 직장을 얻고, 결혼도 하게 됐다는 댓글에서 '아 나도 저런 선생님 하고 싶다.' 굳이 학교로 가지 않아도 되고, 많은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쳐서 언젠가 나도 저런 말을 듣는 참 스승이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삽자루 선생님 강의를 듣고 강의노트를 만들어 볼까? 고등학생 가르치셨던가?


아마도 공부방을 해야할까보다. 밥을 못먹고 오는 아이들은 간식도 좀 해주고 고민이 있어 보이는 아이들은 인생 선배로서 조언도 해주고. 그러면서 내 아이들도 챙기고. 좋은 아이들을 만나서 내가 내민 손을 꼭 잡아주는 그런 아이들과 인연을 맺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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