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지고 우는 아이
토요일 아침, 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는 두 아이만 일찍 일어나 아직 자는 사람들을 깨우지 않고 하나둘 첫째 아이 방으로 모여든다. 그 방에 가장 많은 보드게임이 있어서인 것 같다. 나는 어제 보다 만 웹툰을 보려고 책 읽는 준형이 옆에 가서 누웠는데, 엄마가 나가는 소리를 들었는지 가온이도 따라서 안방에서 나와 형아 방으로 들어온다. 셋이 모였으니 셈셈피자가 시작된다.
아직 덧셈을 모르는 가온이를 위해서 3장으로 카드 중 각각을 고르면 어느 칸으로 이동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것은 내 몫이다. 아무래도 셈이 준형이보다는 내가 빠르니까.
주방장 카드를 써서 도움을 받아도 운이 좋은지 주사위가 준형이 좋을 대로 굴러가 결국 준형이가 우승하고 나와 가온이 둘이서 마지막 승부를 겨루다가 웬일인지 내가 집중을 할 수 없어 결국 꼴찌를 한다. 이 결과에 모두들 만족하는 모양이다. 우승을 한 준형이도 엄마를 이긴 가온이도.
이제 다른 게임으로 자기가 우승자가 되겠다고 이번에는 가온이가 다른 보드게임을 골라온다.
일요일 오후에도 어제 그 맛이 기억에 남았는지 셈셈피자를 들고 온다. 하이는 아빠랑 놀고 우리 셋은 셈셈피자를 다시 시작하는데, 이번엔 웬일인지 가온이에게 운이 가 있고, 준형이는 잘 풀리지 않는다. 결국 가온이가 우승을 하고 준형이가 운다.
원래는 피자를 3판만 구우면 끝나는 게임인데, 4판을 굽는 것으로 바꿔서 가온이는 제외하고 준형이랑 나머지 게임을 이어나갔다. 4판을 굽는 것은 내가 이겼다. 이때 져줬어야 했나? 나는 보통 아이들과의 시합에서도 일부러 져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게 어떤 방식이든 대결을 하기로 한 것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상대를 기만한 행위라고 생각이 돼서, 최선을 다하고 점점 내 아이가 실력이 늘어가고 승률이 올라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같이 관찰하고 싶기 때문이다.
기분이 나쁜 준형이는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고 가온이는 내가 진 걸로 할게.라는 발언을 하지만 그건 더 자존심이 상해 아니라고 하는 준형이. 옆에서 준형이에게 속삭여 본다.
"어제 아침에는 준형이가 이겼잖아. 그때는 괜찮고, 지금은 속상하다는 것은 항상 네가 이겨야 한다는 거야? 그 승부욕은 아주 좋은 마음이야. 너를 성장시키는 마음이니까. 이기고 싶으면 다음에는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되니까 너는 연습도 할 것이고, 머리를 더 써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겠지. 그러니 괜찮아."
"아니야. 내가 항상 이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온이가 이겼는데, 그건 가온이 실력이 아니잖아. 엄마가 다 가르쳐 줬잖아."
"애초에 덧셈도 못하는 가온이가, 이제 겨우 숫자를 20까지 셀 줄 아는 6살 녀석이 셈셈피자를 하고 싶다고 할 때는 내가 당연히 셈은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너도 전에는 도와줬고, 어제 엄마가 도와줄 때는 아무런 말도 없었잖아."
"하지만 가온이가 주방장으로 간다고 했을 때도 엄마가 냉장고로 가서 필요한 토핑을 가져오면 된다고 알려주기도 했잖아. "
"맞아, 딱 한번 그러기도 했어. 보통은 가온이가 엄마가 준 선택지에서 아주 잘 선택했는데, 그때 한 번은 당장 이길 수 있는 고지를 눈앞에 두고 다른 선택을 해서 3가지 카드에 대한 설명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거나, 게임을 할 때 알고 있어야 하는 전략이나 전술 같은걸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알려줬어. 엄마는 가온이가 어디 가서도 잘하도록 지도해야 하는 부모잖아.
엄마 생각에 이 게임은 단순히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머리를 잘 쓴다고 해서 체스처럼 그냥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주사위 던지기나, 카드를 매번 새로 뽑기, 메뉴판을 잘 뽑기 등등 운이 따라야 해. 오늘은 그냥 가온이 운이 좋았고, 준형이 운이 좀 따르지 않은 것뿐이야. "
"가온이가 이긴 것은 가온이 스스로 해낸 실력이 아니야. 엄마가 도와줘서야. 가온이가 우승한 게 아니라고."
"흠.. 그럼 엄마가 어떻게 했어야 옳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준형이는 가온이에게 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것 같네?"
"엄마가 도와주지 말았어야 해."
"하지만 이 게임은 애초에 가온이가 하자고 했던 것이고, 다리가 아파서 너도 앉아 있기만 해야 하니 예의상 너에게도 할 거냐고 물어본 것인데 같이 하게 된 거잖아. 엄마는 가온이가 같이 하자고 할 때부터 누가 말하지 않아도 엄마가 가온이가 게임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셈을 해주는 게 약속된 거잖아. 그걸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럼 엄마가 아예 너한테 게임을 같이 하자고 말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네?"
"그건 아니야. 나도 같이 하고 싶었어. 하지만 엄마가 도와줘서 가온이가 이긴 거잖아. 가온이 실력이 아니라고."
"준형아, 지금 많이 화가 난 것처럼 보여. 잘 생각해 봐. 지금 준형이는 엄마에게 화가 났어? 가온이를 도와줬다고? 아니야? 그래. 그럼 가온이에게 화가 났어? 가온이가 무슨 잘못을 했지? 엄마 생각에는 준형이는 이기고 싶었고, 그게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이길 수 없었어. 그래서 준형이 마음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아서 화가 나는 거야. 그런 건 분하다고 하지. 누구 잘 못한 사람이 있는지 잘 생각해 보고, 네 마음에 뭐가 들어있는지 생각해 봐."
하고 마무리했다. 쉽게 승부욕이 네 마음속에 있고, 그것이 너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준형이가 지적한 점은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으로 겨루지 않고, 조력자가 있었다는데 더 초점을 두고 있었다. 아무래도 동생에게 덧셈 뺄셈 문제로 졌다는 데서 분한 감정이 살 사그라들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엄마가 동생 편만 든다고 생각이 들었던 걸까. 몸이 아파서 괜한 짜증이 난 걸까. 조금 고민을 하고 다시 얘기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일은 다른 데서 풀렸다.
다시 월요일 저녁이 되고 주말 내내 셈셈피자에서 좋은 기억을 갖게 된 가온이가 일요일 오후에 형아에게 받아낸 셈셈피자 두판하기 약속을 모두 잊고 있다가 저녁에서야 하게 됐다. 남편과 나는 하이 이를 닦고, 설거지를 하느라 함께 할 수 없었는데, 덕분에 녀석이 둘이서 맞대결을 하게 됐다.
숫자만 아는 가온이를 준형이가 도와준다.
"1번 카드를 쓰면 8번으로 가고, 2번 카드를 쓰면 6번, 3번 카드를 쓰면 냉장고로 가."
...
"아니야. 그렇게 하면 너는 토핑을 못 얻잖아. 이럴 땐 2번 카드를 쓰는 거야."
내가 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가온이의 게임 진행을 도와주는 준형이. 그래. 엄마가 동생 편을 든다는 그 분위기기 싫었던 것이구나. 때로는 부모의 개입이 적을수록 아이들이 더 잘 어울려 노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