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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라 Nov 18. 2024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봐!

제9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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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친구와, 가족과 다툴 때 당신은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하나요?


저는, 늘 마음속으로 이 말을 외칩니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봐!















아빠를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아빠의 관점에서 글 써보기'이다. 여태껏 가장 오래도록 미뤄왔던 부분이었다.


아빠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의 행동 때문에 내가 받은 상처가 얼마나 많은데 내가 왜 아빠를 이해해야 하지?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래서 굳이 애쓰진 않았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내가 다시 복학을 하면서 본가를 떴다. 부보님과 한참을 떨어져 살다 지난 추석 연휴에 나는 다시 본가에 가게 되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집에 가보니 여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자연스레 보였다. 굳이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아빠의 관점이 어떨지 마음이 어떨지 저절로 보였다.










아빠와 엄마의 다툼에서 각자만의 입장이 있을 것이고, 각자만의 이유가 있어 생겨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툼은 시작될 것이다.


주로 엄마와 다툴 때 아빠는 지쳐 보였다.

그 지친 마음속에 한 번씩 욱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지치는 순간이 온다. 아빠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고, 늘 엄마 말을 잘 들어주고 져주어서 가정의 화목에 이바지하지만 그게 지치는 날도 있는 듯 보였다.


그럴 때, 아빠는 평상시와 다르게 엄마의 잔소리에 크게 반응하고 그렇게 되면서 엄마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그렇게 큰 다툼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여태 있었던 사건 4가지를 예로 들어보겠다.

추석 연휴 어느 날 밤에 이런 일이 있었다.


1.

아빠 : 여보, 나 잠깐 바람 쐬고 오려고. 산책도 좀 하고.

엄마 :  더운데 밤이라서 샤워 다 해놓고 왜 나가? 또 나가면 또 땀만 흘리고 오지. 그게 뭔 산책이야? 안돼 나가지 마. 


엄마는 많은 걸 통제한다. 주도권을 쥐고 있고, 그 주도권이 우리 가족을 바른 길로 이끌기에 충분한 리더십이 될 때가 많지만 때론 그 주도권이 사사로운 것까지 통제하고 잔소리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이런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기에 그저 주입되었고, 어렸을 적부터 그냥 엄마 말을 잘 들었다. 크게 반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다르다. 아빠는 엄마의 자식이 아니다. 아빠는 35년을 자신만의 패턴대로 살아오다 결혼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다. 그러니 아빠의 패턴을 없애고 자신의 방식대로 주입하는 엄마를 온전히 받아들일 순 없는 것이다. 엄마는 현명하고, 항상 정답을 말한다. 그런 엄마의 의견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아빠는 여태 맞춰 살았지만, 때때로 너무 과한 통제와 주입은 아빠도 지쳐 보였다.








2.

밤 8시 넘어 마트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빠 : 여보, 집 가서 방금 산 짜장라면 좀 끓여줘.

엄마 :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집 가면 9시야. 이 시간에 먹으면 살쪄. 이제 나이 들어서 죄다 살로 가는데 내일 먹으면 되지 무슨 짜장라면이야?


엄마는 건강을 걱정해서 한 말이었다. 워딩이 세고 잔소리가 가미될 뿐. 하지만, 아빠 입장에선 집에서 짜장라면 하나조차 자기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내가 들어도 답답했던 엄마의 말들에 아빠는 지쳤을 것이다.


아빠는 엄마의 잔소리를 끝으로 잡고 있던 운전대를 휘청이며 화를 냈다. 그게 비로소 이해가 좀 된다.






3.

내가 아파서 집에 앓아누워 있던 어떤 날이었다. 가 뭘 잘 먹지 못하자 아빠는 밖에 나가 만두와 핫도그를 사 오셨다. 내가 대단히 즐겨 먹는 메뉴는 아니었지만, 그 당시엔 단짠단짠 맛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따뜻한 마음과 수고는 엄마의 핀잔이 되어 돌아왔다.


엄마 : 집에 먹을 거 다 있구먼 그걸 왜 사와? 얘 아프다는데 만두는 무슨 만두야. 맛도 없게 생겼는데. 얼마 주고 샀어?


나는 그때 사실 아빠에게 고마웠다. 그 말을 하고 싶었으나, 엄마의 차가운 핀잔에 아빠 편을 들 수가 없었다. 대외적으로 엄마 편이니 표현하지 못했던 어리석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딸 생각해서 사다 준 그 따뜻한 마음을 엄마가 높이사면 좋겠지만, 엄마는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대부분 핀잔과 잔소리로 이어진다.






4.

아빠가 쉬는 날, 볼 일을 보러 나갈 때의 상황이다.

엄마 : 차 끌고 가지 말고 버스 타거나 자전거 타고 다녀와. 그리 멀지도 않은데 뭐 하러 기름 써가면서 차 타고 다녀와? 요즘 기름 값이 금값인데.


차를 몰래 타고 다녀올 수도 없다. 아빠가 출차하면 뻔히 집 인터폰 화면에 출차 메시지가 뜬다. 아빠는 엄마에게 이런 얘길 들으면 꼼짝없이 자가용을 두고 나가야 한다.












아빠의 입장이 되어 가정을 들여다보면, 때론 지치고 화가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제대로 된 감정 표현 한번 못해본 집안에서 커왔으니 말로 잘 풀어낼 수 없었던 거였다. 그래서 늘 날카로운 말들이 나왔다.






내가 남자친구에게서 이런 얘길 들은 적 있다.

남자친구는 술과 담배를 좋아했다.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나는 남자친구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을 때, 한 번씩 술잔을 물로 바꿔치기해줬다.


"술물 잔과 바꿔 마시면 가오가 안 산다."

이 모습을 본 남자친구의 친구에게선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남자친구는 20살부터 연초를 많이 펴오다 전자담배로 바꾸었고, 술을 마실 때는 연초를 폈다. 하지만, 개코 소유자인 나에게 여러 번 걸렸고  후론 술을 마셔도 연초를 피지 않는다.


이렇게 사랑꾼으로 바뀌어가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그의 친구들은 " 참 줏대 없다"라는 엉뚱한 말로 남자친구를 자꾸만 흔들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다른 남자들과는 달랐다. 술도 담배도 결혼 전에 모조리 끊었고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쳐다도 보지 않는다. 아빠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지 않는 남자였다. 아빠는 옛날 사람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절대 엄마에게 그런 면모를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내가 성인이 되고 남자친구를 만나며 깨달았다.









내가 모른 체하고 지나갔던 말들 중에 아빠는 이런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왜 이 집에 내 편은 없는 거야?


아빠에게도 편이 필요했다. 네 편 내 편을 나누고 누군가를 배척시키자는 게 아니고, 가족이면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되어줘야 했는데 나는 딸이라고 엄마 편만 들어왔다. 그게 참 미안했다. 아빠는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이 집에선 '나 혼자야'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지 감히 그 외로움과 답답함을 짐작해 본다.


그래서 지난 추석 연휴에는 처음으로 아빠 편을 들었다. 엄마가 아빠에게 잔소리하거나 핀잔을 주면, 나는 무조건 아빠 편을 들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 내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산책 한번 마음대로 못하는 아빠에게 나는 엄마 몰래 다가가 접선했다.

"엄마가 너무 한 거야. 엄마 씻을 동안 몰래 나가. 그 정돈해도 돼. 아빠"


이 말을 건넸다. 아빠는 오히려 내게 이리 말했다.

"아냐, 나가더라도 엄마한테 말은 하고 갔다 올 거야. 엄마가 평소엔 아빠 하고 싶은 거 다 시켜줘 걱정 마."


오히려 아빠는 엄마를 감싸 안아줬다. 내가 아빠 편을 들어주니 아빠는 엄마 편을 들어줬고, 아빠의 말과 행동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내가 원했던 아빠의 모습이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편 들어줄걸.

조금만 더 빨리 아빠 입장을 알아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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