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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라 Nov 04. 2024

이혼하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아빠의 어린 시절보기

제7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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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기를 한다.

연기를 하거나 예술분야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어 사는 게 상당히 피곤하다. 이런 예민미가 예술적 감각을 살려 일을 할 때는 엄청난 장점이 되지만, 평상시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무던하지 못하고 예민해서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래서 예술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천재적인 화가 빈센트 반고흐를 예로 들어보겠다. 그는 우울증과 정신적 불안 증세를 앓았으며 자해와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했던 사건도 있었다.


또 절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에드바르 뭉크 또한 불안과 우울증, 환각 증세로 고통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절규라는 작품에는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다.


예술은 정말 모 아니면 도이다.

나는 예술은 대박 아니면 쪽박이고 100% 천재 아니면 100% 노력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엄청난 예민미를 갖고 있으며, 그게 일상생활의 나를 힘들게 할 때가 많아 정말 이러다 정신질환을 앓을 수도 있겠다 싶어 어느 순간부터 심리학에 대해 알음알음 공부해 왔다.


그러다 보니 심리학에서는 현재 나의 어떤 면이 이해가 안 되거나, 상대의 어떤 면이 이해가 안 될 경우 '과거(어릴 적)를 들여다보라'는 조언을 아주 많이 보아왔다.


그렇게 나의 과거를 들여다보며 나 스스로도 이해 안 되는 면, 또는 내가 갖고 있는 현재의 성격들이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부터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를 나와의 마음속 간격이 많이 벌어져 있는 아빠에게 적용시켜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빠의 과거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열어서 봤을 때 좋은 기억 하나 없는 어두운 과거였다는 걸 나는 뻔히 안다. 그래서 더 피해왔다. 늘 아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이고 먹먹해지기 때문이다. 그 감정을 외면하고 싶었다.







우리 아빠는 가난했다. 그리고 자식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다. 11남매였지만 그중에서 살아남은 자식은 아빠를 포함해서 딱 세명뿐이었다. 큰아빠, 아빠 그리고 삼촌...


아빠는 태어나자마자 홍역에 걸렸다고 했다. 늘 어딘가에 쏘다니던 할머니는 그 어린 아빠에게 젖을 주지 않았다. 배가 고파 목놓아 울던 아빠에게 이웃집 아주머니가 젖을 주었고, 그 후 아빠는 태어나자마자 홍역에 걸렸다. 홍역에 걸려 그러다 죽겠지라고 생각했던 할머니는 아빠를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집에서 방치했다.


한마디로 없는 자식 취급한 거다. 워낙 자식이 많으니 한 명쯤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새엄마, 계모 그런 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아무도 치료해주지 않았지만 마치 영화처럼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래서 그 덕분에 아빠는 출생신고가 1년이나 늦게 되어 있다.


아빠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가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홀로 발버둥 쳤다. 이것저것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취직해서 스무 살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많은 일을 해왔다. 그리고, 가족들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돈을 차곡차곡 모아 왔고 그렇게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시원찮은 형제들과 내겐 그저 악덕 같은 할머니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아빠는 할머니에게도 자식의 도리를 다해 열심히 부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빠는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다.

그래서 그런 아빠의 자식인 나는 감히 가난이라는 걸 느껴보지 못한 채 자랐다. 무언가 부족했던 적이 없었다. 배를 곯아본 적도, 추운 집에서 자라본 적도, 조금이라도 힘든 일을 해본 적도 없었다.


아빠는 자식들에게 절대 가난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빠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나를 대했던 할머니의 태도를 보았을 때 아빠는...


1.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다.
2. 부모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아보지 못했다.
3. 사랑받지 못했던 아빠는 딸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나는 아빠가 처음부터 아빠였다고 착각했다.

아빠도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엄마와 결혼하기 이전의 삶이 있었을 텐데...


아빠는 늘 투박했다. 그게 불만이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고 무식하게 행동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게 당연했다. 아빠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주는 방법을 잘 모르셨을 테다. 딸에게 주고 싶은 사랑의 크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넘쳤을 텐데 그걸 감히 담아내어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감정을 잘 어루만져 주지 못했을 것이고, 딸이 원하는 대화를 해주기가 어려웠을 것이 뻔하다.








이혼이라는 단어의 속뜻

엄마와 다툴 때면 늘 끝장 볼 듯 이야기하는 아빠 말의 속뜻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럴 거면 이혼해!"

부모님의 다툼은 잦지 않고, 아빠는 평상시에 엄마 말에 다 져주지만 어쩌다 가끔 큰 싸움이 날 때 내뱉는 저 한 마디 말이 어린 나를 괴롭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왜 아빠는 이혼이라는 말을 쉽게 할까?

정작 하라고 하면 못할 거면서...

이렇게 생각했었다.


아빠는 속상하고, 서운한 감정을 표현해 본 적이 살면서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매번 참고 넘기고 엄마와 결혼하기 이전까지 모든 걸 꾹꾹 누르면서 살아왔을게 뻔하다.

가족이라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 아빠의 마음을 들어주는 이가 없었을 테니까.


결국 이혼하자는 그 극단적인 말을 풀어서 보면,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좀 알아줘. 내 마음 좀 들여다봐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 아빠를 이해해주지 못했다.

화를 내고 극단적인 단어를 선택하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몰랐을 아빠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기에..


다툴 때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도,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알지 못했던 아빠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아빠는 나를 그 어떤 누구보다 귀하게 키우셨다. 그게 정답은 결코 아니었을 테지만. 항상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은 못하게 해서 나의 경험을 제한시켰고, 너무 귀하디 귀하게 키우느라 학교 다니는 12년 내내 자가용으로 아침마다 나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셨고 고생 한 번을 안 시켰다. 하지만 그건 아빠가 경험해 온 세상에서 본인은 받아보지 못했을 것들을 내게 최선을 다해했던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걸 알기에 불만은 없다. 장단점은 어떤 방법에도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부모가 처음인 세상의 모든 부모 중에 완벽한 부모는 없는 게 당연할 테니까.


자신과 다른 삶을 살게 해 주기 위한 아빠의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니까..







가정에서 봐왔던 부모의 모습은 내 연애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나는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몇 없었다. 내가 남자친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다툴 때 아빠가 했던 이혼이라는 단어처럼 '이별'이라는 날카로운 가시 같은 말이 나올까 봐. 그런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 어쩌면 얕은 관계만 맺어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늘 내가 먼저 이별을 선고했다. 조금만 가까워지면 우선 뒤로 물러났다. 내 안의 방어기제 같은 거였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그 다툼을 마주할 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남자친구와 다투며 화도 내보고, 조곤조곤 앉아서 서로의 이야기를 봇물 쏟듯 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의 밑바닥을 다 본 것처럼 다퉈도 보았지만 내가 그토록 다짐했던 딱 하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하지 않았다.


'홧김에 이별을 선고하기'


턱 끝까지 차오른 적이 몇 번 있었다.

너무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아서 화가 폭발하려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도 꾹꾹 눌러 참았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아빠의 단점을 절대 따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은 그 다짐을 잘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가 그런 스탠스를 취한 적도 있었다. 한마디로 정말 개같이 싸워서 둘 중 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 집에서 다투었고, 남자친구는 집을 나가려고 가방들고일어났다.


내 자존심이 도저히 그를 막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너도 결국 내가 가장 싫어하는 우리 아빠의 모습을 갖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동시에 실망도 컸다.


그래 나가. 너 필요 없어.

라고 말하기에 충분했지만, 내 다리를 움직였다.

그냥 나가려는 그 앞을 막고 섰다.


아무 말도 못 했다.

적당한 말을 도저히 고르지 못했다.


한참이 흐른 정적 끝에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였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택했다. 극단적인 행동과 말속엔 결국 '내 마음을 알아줘. 내 마음을 들어줘.'라는 의미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나도 화가 났지만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파국으로 가려던 결말은 바뀌었다.


그렇게 매번 아빠의 말과 행동에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내가 그 모습을 통해 또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았고, 그렇게 나조차도 서툴지만 하나씩 배우고 성장하며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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