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의 불편한 마음이 생길 때 그 마음은 당사자와의 관계 회복보다는 우선, 내 마음의 평안함을 위해서라도 덮어두지 않고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나는 그 마음을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를 실행했다.(자세한 설명은 지난 회차인 5화에서...)
1. 언제부터, 왜 아빠를 미워하게 되었는가? (나의 어린 시절 바라보기)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오랜 상처를 남긴다
아빠는 나에게 항상 야단을 치고, 무서운 엄마와는 완전히 달랐다. 늘 '우리 공주!'라는 말로 나를 불렀고, 어릴 적 목욕하고 나오면 늘 내 머리를 빗으로 한참 동안이나 빗겨주었는다정한 사람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가족 다 같이 딸기를 먹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장이 좋지 않았던 나에게 엄마는 딸기를 조금만 주었다. 너무 아쉬워하는 나를 아빠는 몰래 안방으로 불렀고, 아빠가 등 뒤 숨긴 손에는 실한 딸기가 나왔다. 아빠와 나는 엄마 몰래 숨죽여 딸기를 나눠 먹으며 실컷 웃었다.
아빠는 내게 표현은 투박하지만 참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다정하고 좋은 기억은 금세 잊어버린다. 나는 어릴 적 아빠에게 받았던 날카로운 말들만을 꽤 오랜 시간 마음속에 간직해 왔다.그러고 싶지 않지만, 저절로 마음속에 그 날카로웠던 아빠와의 순간은 생채기를 남기고 말았다.
첫 번째 사건,
아빠에게 혼났던 최초의 기억은 5살 즈음이었다. 무엇 때문에 혼이 났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거실 벽을 보며 벌을 받는다고 서있었고 엉엉 울었다. 아빠는 내 엉덩이를 회초리로 때렸던 것 같다. 한 번도 회초리를 들지 않던 아빠에게 맞은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이다. 아빠는 내게 강하게 다그쳤고 내 숨은 꺽꺽 넘어갔다. 언니와 다투었던 기억이 나고, 언니는 혼이 나지 않았지만 오직 나에게만 아빠는 혼을 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억울하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는 그 감정만은 오랜 시간이지난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정확히 정황도 기억나지 않는 그 사건이 딱히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지 않았지만 저절로 마음속 깊은 곳에 저장되어 왔다.
그 후로,
"아빠는 항상 언니 편만 들어!"
이 생각을 저절로 갖게 되었다.
실제로도 아빠는 어릴 적에 언니와 내가 둘이 다투게 되면 나에게 먼저 언니에게 사과하라고 했었다. 그게 늘 억울했다. 같이 다퉜는데 내 이야길 들어주지 않고 무작정 사과하라는 아빠가 미웠다.
두 번째 사건,
초등학생 때 언니는 비교적 나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컴퓨터를 꾸준히 배워왔다. 그래서 전자 기기를 나보다 잘 다루었다. 그걸로 가족들을 도와주며 특히 나를 도와주며 대단히 생색을 많이 내서 얄미웠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우리 집에서전자기기 다루기에 가장서툴렀던 아빠는 늘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니에게 물었다. 하지만, 언니가 귀찮아할 때면 나는 아빠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아빠 이거 나도 할 수 있어! 이거 어떻게 하는 거냐면...."
아빠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너는 이거 잘 모르잖아. 언니한테 물어볼 거야"
그 말이 그렇게 상처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빠가 나를 무시하는 기분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속이 상했다. 늘 언니만 대우받는 것 같고 아빠는 공평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여기까지는 형제자매가 있는 집안의 어릴 적 흔한 질투심에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 번째 사건,
2012년늘 화목했던 집안에 평화를 깨는 사건이 터졌다. 그때가 내가 열 살 무렵이었다. 항상 학교에 다녀오면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기다렸던 엄마는 이제 더는 없었다. 정확히 어떤 일들이 우리 가족에게 덮쳤는지 모두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 가족에게 위기가 찾아왔다는 건 그 어린 나였어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집에 오면 가족들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찾아온 그 순간에 오는 그 공허함의 크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집에 오면 투닥거려도 함께 놀 언니가 없었고, 엄마와 아빠도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을 지키는 게 익숙해질 즈음, 아빠가 어느 날 오후 3시에 도어록을 누르고 집에 들어왔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나는 현관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하지만, 아빠는 나를 그냥 지나쳤다.
나는 아빠를 따라가 말을 걸었다.
아빠는 대뜸 나에게 화를 냈다.
영문도 모른 채 아빠의 화가 내게 왔다.
그게 전부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싱크대 앞에서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고, 아빠는 그 화를 끝으로 집을 다시 나갔다. 그 차가운 냉기가 가득한 집에 나 혼자만 남겨두고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빠는 나에게 화가 나서 화를 낸 게 아니었다. 최악인 자신과 우리 가족의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덜컥 참아왔던 화가 터졌을지도 모른다. 아빠도 가장이라는 무게로 버텨온 그 힘에 한계가 왔을 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알 턱이 없었던 나는 그저 아빠의 사랑이 고픈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빠에게서 은근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아빠에게자유롭게 내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나의 막내다운 애교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또.'아빠는나에게이유 없이 화내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가득했다. 2012년부터우리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버텼던 4년이라는 긴 시간속에서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이번 편 글을 쓰는데 참 긴 시간이 걸렸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돌아보는데, 이미 다 지나버린 일인데도 눈물이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우리는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이해받고 싶은 가족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빠에게 이런 못된 마음을 가졌다는 게 스스로에게 너무 창피했고, 아빠에겐 미안했다.
마냥 착한 딸이 아니었다는 것이 나를 참 못난 딸로 만드는 것 같아나 스스로를오랜 시간 괴롭혀왔다.
하지만, 오랜 시간 다시는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꺼내어오는 것만으로도 아빠에 대한 내 마음의파도는 잔잔해지고 있었다.
이건 내가 어릴 적 밤늦은 시간에 아빠가 퇴근할 때마다 자기 전에 아빠에게 편지를 남겨놓고 잠들었고, 늦은 시간에 퇴근하고도 나에게 답장을 남겼던 우리만의 러브레터 공책이었다. 아빠는 그 늦은 밤 가족들이 깰까 봐 화장실 불 하나를 켜두고 다음날 아침 공책을 펼쳐보고 미소 지을 딸을 떠올리며 수십 개의 하트를 투박한 손으로 그렸을게 이제야 눈에 훤히 보인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았지만,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애틋하고 사랑하는 사이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