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산사태(산에서 발발한 아빠와의 다툼을 산사태라고 칭하겠다...)가 있고 난 후, 나는 한동안 정말 괴로웠다.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아빠를 싫어했다.
근데, 사실 저 사건 하나로 그런 마음을 먹은 것 같지는 않다.
전조 증상이 그전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어느 순간 아빠와 함께 둘이서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게 미치도록 불편했고,
출퇴근을 하는 아빠에게 인사를 건네는게 불편했고,
아빠와 한 집에 둘만 있는 상황이 불편했다.
점점 아빠와 쌓여온 감정의 골이 깊어질수록 단 둘이서의 대화와 소통은 서서히 줄어갔다.
그냥 아빠와 안 친해서 생기는 문제 하고는 달랐다.
분명 아빠에 대한 나의 감정에 앙금이 단단히 있었지만, 나는 외면하면 살았고 그게 산사태가 발발했던 나의스무 살, 가을에 터진 것뿐이었다.
엄마는이 사건 이후, 나와 아빠의 사이를 컨트롤하려 애썼지만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더욱이 악화되었다.엄마는 한마디로 아빠를 계속해서 쌩까는 나를 하루 이틀은 이해하다 그 태도가 지속되니 대단히 혼을 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가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아빠와 멀어져 갔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의 다툼 이후, 긴 시간 동안 자기 연민에 빠져 살았었다.집안에서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 오로지 나만 불쌍했고, 이런 아빠가 내 아빠라는 게 참 싫었다.
그래서 저 사건 이후에는 정말 아빠와 연을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빠를 미워했고, 가족을 미워하는 그 마음은 나 스스로를 미치도록 괴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너무 괴로워서 이 사건을 털어놓기 위해 내가 중학생 때부터 믿고 잘 따르던 선생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정년퇴직 후, 상담사 생활을 이어오고 계셨던 터라 더 내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을 수 있었다. 조금도 거리낌 없이 다 털어놓았다.
'타인이 나를 안 좋게 보면 어떡하지?'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고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날 것 그대로의 거침없는 단어들로 아빠에 대한 내 생각을 털어놓으며 펑펑 울었다.
몇 주에 걸쳐 선생님을 만나면서 내내 울었다.
선생님께 털어놓아서 마음이 편해지거나 해결되는 건 딱히 없었다.하지만,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조언했다.
1. 언제부터, 왜 아빠를 미워하게 되었는가? (나의 어린 시절 바라보기)
2. 아빠의 어린 시절 바라보기(아빠가 어떤 집안 환경에서 살았는가?)
3. 아빠의 관점에서 다툼을 바라보기
"이 세 가지를 잘 생각해 보거라. 너는 글을 잘 쓰는 아이니까 글로 정리해 봐"
저 당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는 습관을 길렀던 나는 저 조언을 들은 다음날부터 실천해 보려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하지만, 아무것도 써내려 갈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고, 피하고 싶었다.영원히 모르고 싶었다. 내가 어릴 적 아빠에게 받았던 상처가 있음에도 외면하고 싶었고, 아빠의 가난하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다 알면서도 굳이 열어보고 싶지 않았다. 또 그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눈물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올 것 같았고, 그런 알량한 감정에 휩쓸려 아빠를 이번만큼은 쉽게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 조언을 듣고도 그저 묻어둔 채로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내 마음은 나도 모르는 새에 열렸고 글을 써 내려가는 나의 손끝은 거침없다. 그래서 이제야 나는 저 세 가지 조언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실행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가족 간의 다툼은 결국 내 마음의 문제였다. 내 마음이 스스로 정리되어야 비로소 해결되는 문제였다. 아무리 엄마가 노력을 해도, 아무리 주위에서 조언을 해줘도 그 당시에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었다.
아무리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라고 할지언정, 어찌 가족끼리 마음 상한 부분 하나 없이 편하고 사랑만이 가득할 수 있을까? 가족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서로 무수한 상처를 주고받는다. 가족이기 때문에 그 관계는 상처를 주고받았다고 끝내지 않고, 가족이라는 연으로 묶여있기에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무작정 안을 수는 없기에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는 마음속에 번져 흉터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