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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나라 Oct 21. 2024

아빠랑 연 끊으며 살 결심을 하다.

제5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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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aab3b14f945e488/35

우리 집 산사태(산에서 발발한 아빠와의 다툼을 산사태라고 칭하겠다...)가 있고 난 후, 나는 한동안 정말 괴로웠다.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아빠를 싫어했다.

근데, 사실 저 사건 하나로 그런 마음을 먹은 것 같지는 않다.


전조 증상이 그전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어느 순간 아빠와 함께 둘이서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게 미치도록 불편했고,

출퇴근을 하는 아빠에게 인사를 건네는게 불편했고,

아빠와 한 집에 둘만 있는 상황이 불편했다.


점점 아빠와 쌓여온 감정의 골이 깊어질수록 단 둘이서의 대화와 소통은 서서히 줄어갔다.

그냥 아빠와 안 친해서 생기는 문제 하고는 달랐다.

분명 아빠에 대한 나의 감정에 앙금이 단단히 있었지만, 나는 외면하면 살았고 그게 산사태가 발발했던 나의 스무 살, 가을에 터진 것뿐이었다.


엄마는 이 사건 이후, 나와 아빠의 사이를 컨트롤하려 애썼지만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더욱이 악화되었다. 엄마는 한마디로 아빠를 계속해서 쌩까는 나를 하루 이틀은 이해하다 그 태도가 지속되니 대단히 혼을 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가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아빠와 멀어져 갔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의 다툼 이후, 긴 시간 동안 자기 연민에 빠져 살았었다. 집안에서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 오로지 나만 불쌍했고, 이런 아빠가 내 아빠라는 게 참 싫었다.


그래서 저 사건 이후에는 정말 아빠와 연을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빠를 미워했고, 가족을 미워하는 그 마음은 나 스스로를 미치도록 괴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너무 괴로워서 이 사건을 털어놓기 위해 내가 중학생 때부터 믿고 잘 따르던 선생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정년퇴직 후, 상담사 생활을 이어오고 계셨던 터라 더 내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을 수 있었다. 조금도 거리낌 없이 다 털어놓았다.


'타인이 나를 안 좋게 보면 어떡하지?'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고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날 것 그대로의 거침없는 단어들로 아빠에 대한 내 생각을 털어놓으며 펑펑 울었다.


몇 주에 걸쳐 선생님을 만나면서 내내 울었다.

선생님께 털어놓아서 마음이 편해지거나 해결되는 건 딱히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조언했다.


1. 언제부터, 왜 아빠를 미워하게 되었는가? (나의 어린 시절 바라보기)

2. 아빠의 어린 시절 바라보기(아빠가 어떤 집안 환경에서 살았는가?)

3. 아빠의 관점에서 다툼을 바라보기

"이 세 가지를 잘 생각해 보거라.
너는 글을 잘 쓰는 아이니까 글로 정리해 봐"


저 당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는 습관을 길렀던 나는 저 조언을 들은 다음날부터 실천해 보려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하지만, 아무것도 써내려 갈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고, 피하고 싶었다. 영원히 모르고 싶었다. 내가 어릴 적 아빠에게 받았던 상처가 있음에도 외면하고 싶었고, 아빠의 가난하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다 알면서도 굳이 열어보고 싶지 않았다. 또 그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눈물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올 것 같았고, 그런 알량한 감정에 휩쓸려 아빠를 이번만큼은 쉽게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 조언을 듣고도 그저 묻어둔 채로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내 마음은 나도 모르는 새에 열렸고 글을 써 내려가는 나의 손끝은 거침없다. 그래서 이제야 나는 저 세 가지 조언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실행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가족 간의 다툼은 결국 내 마음의 문제였다. 내 마음이 스스로 정리되어야 비로소 해결되는 문제였다. 아무리 엄마가 노력을 해도, 아무리 주위에서 조언을 해줘도 그 당시에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었다.


아무리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라고 할지언정, 어찌 가족끼리 마음 상한 부분 하나 없이 편하고 사랑만이 가득할 수 있을까? 가족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서로 무수한 상처를 주고받는다. 가족이기 때문에 그 관계는 상처를 주고받았다고 끝내지 않고, 가족이라는 연으로 묶여있기에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무작정 안을 수는 없기에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는 마음속에 번져 흉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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